brunch

매거진 무제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기록자 Sep 30. 2017

타이완, 생각의 조각들_5

실시간 대만 여행기

악! 소리를내며 잠에서 깼다. 꿈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지 뭐야:( 그러고 보면 너무너무 좋은 대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점이 바로 바퀴벌레가 아닌가 싶다. 아침에 시먼역 주변을 걸어다니면 바닥에 찌부되어 터진 ㅂㅋ들이 아주 그냥... 밤엔 곳곳에서 보이고. 그래서 혹시나 밟게 될까봐 늘 바닥을 신경쓰고 다녔더니 이런 꿈까지 꿨나보다. 하긴 호텔에서도 벌레가 나온다는 후기를 봐서 처음엔(아직도 완전히 안심은 못하고 있지만)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좋은날 좋은 곳에서 ㅂㅋ얘기로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무튼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일어나져서 바로 목욕물을 받아달라고 했다. 창밖으로는 계속 강물이 흘러 물소리가 졸졸졸(보단 좀 더 크게) 나고. 어제에 이어 너무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이다.


개운하고 출출한 몸으로 아침을 먹었다. 편안하고 맛있었던 중국식 식사. 아니 양배추가 이렇게 맛있을 일이냐. 밍밍할 것 같앗던 밀크티도 보기 보다는 맛있었다.



오늘은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날'! 마사지를 11시에 예약해 둬서 방에 와서 책 좀 읽다가 공중 목욕탕으로 갔다. 좀 당황스러웠던 게 여기는 정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마사지를 받는다. 수건으로 덮어주긴 하지만 왠지 부끄럽다구. 바이오리듬 상 몸이 땡땡 부어있는 시기라 잔뜩 겁을 먹었는데 역시나 너무 아팠다ㅠㅠ 물론 너무 시원한 부위가 더 많았지만. 안마해주시는 분이 고수처럼 느껴졌던 게, 열심히 마사지를 하다가 아주 잠깐 멈칫, 하는 게 느껴지는데 마치 혈자리 같은 걸 살짝 눌러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내 몸이 진단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 따라 양쪽의 압을 달리 하거나 한쪽을 더 많이 주무르거나 하는 식으로 처방(?)을 내리는 것 같아서 좋았다. 시먼역 근처에서 본 금액대보다는 당연히 높았지만, 돈이 아깝지 않은 앚주 알찬 60분이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다시 책 좀 읽다가 아주 살짝 눈 좀 붙이고 외출준비를 했다. 다녀보니 햇살이 너무 뜨거운 정오에는 안 돌아다니는 게 답인 것 같아서 2시 이후로 슬렁슬렁 돌아보기로 했기 때문! 마음 같아서는 더 폭 자고 온천도 한 번 더 하고 나가고 싶었지만, 관광지 운영시간이 대부분 5시까지라 서두르지 않으면 허탕을 칠 것만 같았다. 사실 큰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올드타운에서 점심이랑 죽통밥 사먹고, 아타얄 박물관 가고, 우라이 트롤리 타는 것. 운셴낙원조차 내키지 않으면 올라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근데 어찌어찌 다 하고 와서 뿌듯하다!



우선 아타얄 박물관으로 갔다. 우라이 지역 원주민인 아타얄족에 대해 알 수 있는 곳. 기대 없이 갔는데 생각보다 잘 꾸며져 있었고, 재미있었다. 무료고, 안에 의자도 잘 되어있어서 우라이 폭포까지 보고 내려와서 힘들 때 들러도 좋을 것 같은 곳(벌써 우라이 또 올 생각하고 있음^_^)!



그리고 니팅 체험을 할 수 있다길래 기념품 가게에 갔는데, 정작 그건 시간이 안 맞아서(언제 하는지도 모르겟음. 지금 안 된다는 것만 알아들음ㅠㅠ) 못하고, 갑자기 우라이 전통주를 맛보게 해줘서 뜻밖에 샤오미죠우를 맛봤다. 쌀술이면 쌀술이지 왜 작은 쌀인가, 해서 찾아봤더니 좁쌀이었음. 우라이에 좁쌀주가 유명하다고 한다. 기념품으로 사면 좋을 것 같아서 살까 하다가 내려오는 길에 사기로 하고 나왔다. 그 뒤로는 거리에서 좁쌀주밖에 안 보임. 더 저렴이가 있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는데 왠지 내가 마셔본 상표는 안 보여서 황망했다. 내일 다시 가서 물어봐야지.


그리고 구글맵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간판을 보고도 긴가민가 해서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가 거기 맞냐고 물어봄. 볶음밥이랑 뭔가 식용작물이 맞나?싶은 야채볶음을 먹었다. 돼지고기가 좀 뻣뻣했지만 맛있었음!


 

그리고 진한 아메리카노가 땡겨서 카페를 찾았다. 내가 가면 직원이 기본 2~3명이 붙어버린다. 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자꾸 나한테 중국어로 말하는 걸까. 무튼. 대만스럽게 얼음이 째째하게 들어간 아아메를 받아들고 트롤리를 타러 올라갔다.


표를 사고 타려고 하니 직원분이 제일 앞자리로 안내한다. 무서워서 싫다고 했더니 여기 말고는 다 2인용이란다. 와 서럽다!싶은 것도 잠시, 맨앞자리의 특권을 누리고자 카메라를 꺼내려는데, 지갑이 안 보인다. 허둥지둥 가방을 뒤지는 사이 내 옆엔 기사님이 탑승했고, 금방이라도 차가 출발할 것 같았다.

내리려 해도 이미 쇠사슬(!)이 걸려있는 상황. 순간 중국어도 돈이 뭐지? 하다가 지갑을 치앤빠오라고 부르는 게 생각났다. 치앤빠오 치앤빠오 하면서 매표소 쪽을 가리키니 한 직원이 대신 달려가주었다. 나때문에 출발이 지연되면 어쩌지..걱정하고 있는데 매표소에 없단다ㅠㅠ 그럼 내리고 다음 거 타도 되냐고 물어보고는 일어서는데 나와 기사님 사이에 떨어져 있던 치앤빠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는 뚜에이부치 쎼쎼 연발. 기차가 출발하고 굉음을 내며 달리는데 나는 만약 치앤빠오를 몰랐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3개월 배운 중국어가 도움이 되긴 하는구나.


신기하게도 안 쓰다보니 다 까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시간을 보낼수록, 중국어로 떠듬떠듬 말하려고 할수록 단어와 문법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역시 언어는 환경이 중요한 듯. 내년엔 다시 중국어를 시작해야겠다. 대화가 되니까 재밌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자 암기가 절실하다. 더이상 까막눈은 노노해~


위로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탈까 말까 하다가 고민 끝에 타기로 했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고소공포즈이 생겨서 높이 올라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별로 높아보이지가 않아서 도전!했지만 막상 타니까 아찔해서 셀카에만 집중했다는 후문이.


아, 케이블카 타러 올라가는데 한 부부가 내려오고 있었다. 근데 나와 스치기 바로 전에 남자분이 "아고 더버라~" 하시는 거였다. 한국분이구나! 싶어서 냉큼 물어봤다.


케이블카 많이 높아요??


근데 그 부부, 갑작스런 한국말에 깜짝 놀라셔서 서로 민망했다. 그분들은 케이블카 타러 올라가는 길이 기냐고 묻는 줄 알고,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원했던 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리고 그분들은 나보고 혼자 왔냐며, 놀란 표정으로 유유히 내려갔다.


한국인 하니까 또 생각난 건데, 어제도 좀 웃긴 일이 있었다. 타이페이 기차역에서 시간을 때우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한 여자분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대뜸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저쪽에 관광안내소 있으니까 그쪽에서 물어보시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날랜 걸음으로 사라지셨다. 어떻게 내가 한국인이라고 확신했을까. 보통 긴가민가하면 "한국분이세요?"로 시작하지 않나 ㅎㅎㅎ


무튼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또 슬렁슬렁 올라갔다. 가다가 너무 높으면 그냥 내려올 작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늘 일정이 편안했던 건 이렇게 '아님 말고' 마인드를 갖고 움직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만난 운셴낙원... 딱 보는 순간 왜 낙원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더라. 아직 태풍피해 복구가 안 되어 공사의 흔적이 남아있고,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는 곳이었다. 호텔 앞쪽도 나름 아기자기하게 해놔서 해 쨍쨍할 때 사진찍기 좋을듯. 물가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비가왔다. 비 오니까 더 좋아! 그리고 무지개도 봤다! 너무 신났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아쉬웠다. 원래 저런 건 다같이 우와-하면서 봐야 더 좋은데.



그리고 좀 더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을 줄 알고 올라갔더니 운영을 안 한지 오래되어 보이는 놀이기구들이 있고, 양궁코너가 있었는데 그나마도 폐점 준비중이었다. 그래서 훌훌 내려오기 시작함. 케이블카를 혼자 타게될까 걱정했는데 그게 마지막 타임이라 위에서 일하던 직원분들까지 기다려서 다같이 타고 옴. 그리고 트롤리 표 끊고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 양쪽 발목에 모기 물림. 너무 빨라서 무섭다, 모기야. 원래는 내려갈 때는 구경도 좀 하고 걸어가려 했는데 비가 와서 그냥 빨리 숙소 가서 온천할 생각밖에 없었다. 기차가 오고, 이번엔 자리가 많이 남아서 뒷자리로 안내받았다. 혼자 타고 내려가나 싶었는데 뒤에서 여자 두 분이 나타났다. 표를 안 사고 왔는지 지갑을 뒤져 돈을 건네는듯 하더니, 탑승을 거부당했다. 그렇게 벙찐 그들을 내버려두고 진짜 나만 타고 내려왔다. 처음엔 '아, 매표소에서 안 사도 마지막 열차니까 걍 여기서 계산해주는구나' 싶었는데, 결국 표가 없어서 못 탄 것 같았다. 돈이 모자랐다고 하기엔 이미 100달러를 들고 있었음. 거슬러 줄 수 없어서 안 된다고 한 건 아니겠지. 아무튼 대만 사람들(이라고 하기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이 얼마나 FM인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이러니 저러니해도 웬만하면 태워주지 않았을까.


호텔로 와서 대중탕에서 목욕과 사우나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더니 옆테이블에 아까 그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열차 시간을 체크하지 않는 바람에 표를 못 샀던 거였다. 그래서 돈을 주고 기사님한테 사려고 했지만 안 된다고 해서 걸어내려왔다고.  


아무튼 저녁도 맛있게 먹고 방으로 와서 정리 좀 하고 또 목욕을 했다. 이번에는 탕 안에서 책 읽기를 시전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진짜 좋은 욕조를 집에 들여놓고 싶다. 난 목욕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아까 사온 대통밥 먹고 나니 지금이다. 내일은 일찍부터 움직여야 해서 일찍 자야하는데 큰일이군. 그래서 결국 우라이에서는 지루할 틈 없이 열심히 목욕하고 잘 놀았다. 늘어지게 쉴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타이완, 생각의 조각들_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