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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나는 떠나기 위해 돌아왔다

패배가 아닌 거절

by 마음을 잇는 오쌤



Osam Life Journey Map



새로운 등장인물



진 사업총괄 (LEVEL 5)

진 총괄은 느릿했고, 고요했다.

말수도 적고, 표정도 잘 바뀌지 않았다.

겉으론 잔잔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은 늘 분주했다.

말은 없었고, 움직임은 예고가 없었다.

어느 날, 회장은 사라졌고

딸이 대표가 됐다.

회사는 그의 판이었다.



섭 부장 (LEVEL 1)

섭 부장은 키 큰 부산 사나이였다.

정치는 서툴렀지만, 사람 마음은 기가 막히게 챙겼다.

술 한 잔이면 누구와도 친구가 됐고,

어쩌면, 그게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 증명을 위한 복직



복직은 늘 똑같은 사무실로 돌아가는 일이지만,

난 달랐다. 6개월 전, 미련 없이 등을 돌렸던 그 회사를 다시 찾은 건…

그들이 저지른 실언 하나를, 내 존재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너희, 날 버린 거 진짜 큰 실수였어.”


그래서였을까.

나는 떠나기 위해 돌아왔던 거다.

이번엔 그들이 아닌, 내가 문을 닫고 싶었다.
‘내가 선언하는 퇴사’를 꿈꿨다.









둘, 예상하지 못한 흐름




그런데 문제는 시작부터 꼬였다.

새로 만들어진 기술연구소의 수장이 바로 연 부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속에서 뭔가 끓었다.

(”14화 네 번째 위기“ 등장인물)


플래시 프로젝트에 목숨 걸고,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미래를 깡그리 무시한 채

화려함만 좇던 그 사람. 결과는? 10년 동안 플래시에 집착하다 수많은 인재들을 정리한 장본인.


“그런 사람이 연구소장이라니. 이게 리셋이야? 리사이클이야?”


회사는 그 사이 여러 번 변신을 거쳤다.

BLUE LAKE 회사를 인수한 회장은 사기로 구속되고, 사촌이 회장이 되었지만

그 틈을 타 진 총괄이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1대 주주가 되었다.


사실 이것 까진 회사의 권력 재편 시나리오일 뿐,

진짜 미쳐 돌아가는 건 그 안의 ‘작은 왕국’들이다.








셋. 기술연구소의 전쟁




기술연구소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연 소장 vs 섭 부장.

유치한 싸움의 정점.


서로 따로 불러내 뒷담화, 자기편 만들기, 권력 줄다리기를 했다.

내가 업무상 가까운 섭 부장과 친하게 지내자 연 소장(연 부장-이하 연 소장)은 나까지 견제했다.

누가 회사에서 싸움 보는 거 좋아할까?...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연 소장은 모 부장 들과 손잡고 섭 부장을 견제했다.

결국 섭 부장과 모 부장의 갈등은 결국 인사총무까지 번졌다.
회사는 소문과 편 가르기로 휘청였다.


그러던 어느 날, 더 큰일이 터졌다.





연 소장이 진 사업총괄과 외주업체와의 담합 의혹을 제기하며 연구소 직원들에게 말했다.

“내 직을 걸고 회장에게 보고하겠습니다”


곧 회장에게 보고가 되고, 회장은 업체로부터의 담합 금지령이 담긴 윤리강령까지 발표했고, 회사는 일촉즉발 분위기였다.


그 결과?

진 총괄이 연 소장 불러 한참 얘기하더니, 연 소장, 얼굴 새빨개져서 연구소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진 총괄에게 연 소장은 완전히 찍혀 버려서 눈치 보는 신세가 되었다.


진짜 무서운 건 진 총괄이었다.

겉으론 아무 일 없는 듯, 속으론 칼을 갈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현재 회장을 내려오게 하고 그의 딸을 대표로 앉히고 자긴 그림자 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BLUE LAKE의 실세였던 종 이사까지 정리했다.

그의 직책을 없애고, 방 하나 주고, 혼자만의 ‘유배지’로 보내버렸다.








셋, 독립된 디자인실

그들과 함께여서는 안 됐다. 나는 힘을 길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략기획실 본부장의 호출로 전략기획실에 방문을 했다.


“오쌤 연구소 소장에 대해 소문이 많던데

디자인 실을 만들어서 연구소에서 나오는 게 어때요?

제가 도울게요, 디자인 실 운영에 대한 기획서 하나만 써요 “





그리고 나는 문제가 많았던 연구소에서 나와 다른 본부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BLUE LAKE 디자인 실 실장으로 회사 사업에 동참했다.


독립된 부서에… 독립된 사무실 직장생활 15년 만에 얻은 첫 결실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커피 한잔을 내려고 지사원과 나눠마셨다.

업무 중에 음악을 듣기도 하고, 타 부서 본부장이 종종 방문해 내려진 커피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가기도 했다. 디자인 실장인 만큼 어깨가 무거웠다. 야근도 많았다.


디자인실 벽에는 각종 디자인안과 포스트잇 그리고 디자인 모형들이 가득했다.

지사원은 그런 나를 지지했고 함께 했다. 고마운 동료였다.


회사 신사업의 첫 제품은 ”우수디자인“으로 선정되었고,

영업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드디어 나를 증명했다, 다시 돌아온 나를…”


싸움 많고, 분쟁이 끊이지 않던 곳에서 벗어나니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다시 찾아온 황금기 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넷, 칼바람

잠깐의 평화였다.
그러나 그 고요는 폭풍 전의 정적이었다.




얼마 후 종 이사는 유배지에서 스스로 나가게 되었고, 곧 연 소장도 같이...


정말 그랬다. 진 총괄과 그의 측근들의 조치였다.

지금 이 생태계는, 실력이 아닌 줄 서기가 통하는 곳이었다.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실력자였고, 가장 오래 남는 건 진 총괄의 측근들이었다.


회사는 상장폐지의 위기에 처했고, 매출증대와 유지비용을 줄이려고 본사 이전을 감행했다.

그곳이 어디냐면…


“경기도 어디냐 면 무지 멀 리”


이번에는 진짜였다.

회사 주식은 거래 정지가 되고, 회사 복지는 줄어들고 …

또다시 들려오는 회사 매각의 소문


진 총괄의 측근들의 비리가 밝혀지고,

한 두 명씩 사라지는 진 총괄의 측근.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나를 증명하려 했고,


하나씩 이루어가고 있었지만…


믿었던 경영

진조차, 빌런들뿐이었다.



다섯, 결심 - 때가 왔다.

나는 이 세계에 맞지 않았다. 아니, 맞지 않기로 했다.


떠날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이곳을 떠나기로.


”나는 나를 증명했다. 그건 패배가 아니었다. 난 그 판을 거절한 거였다..

그들의 방식에, 그들의 언어에, 그들의 판에. “


그리고 나는 배웠다.

정치는 실력보다 빠르지만,

진짜 실력은 결국 돌아온다는 걸.


나는 더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 기구설계를 배우기 시작했고,

내 방식대로, 내 디자인데로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나의 일, 나의 경력, 그리고 나의 세계를.



(다음 편 : 17화 그는 나를 설계 하혀 했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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