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타이밍
“왜 나지?”
그날, 권고사직 명단을 봤을 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용 과장이 하는 일도, 실력도…
솔직히, 나보다 못했다.
연봉도 내가 더 낮았고.
나는 어필했다.
“BLUE LAKE는 매출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JBL사가 매출이 떨어진 거죠… 그런데 왜 저인가요? JBL 디자이너는요?”
나는 JBL사 용 과장과 비교를 했다.
“저는 신사업부도 경험했고, 제안서도 많이 써봤습니다. 신사업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용 과장과 비교가 안 됩니다. 생산성과 실적으로 보셔야죠.”
하지만 돌아온 답은 단순했다.
“한 회사라고 말은 하지만 다릅니다. 인력 운영 권한은 JBL사가 가지고 있고
결국 일본 측은 자기 사람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일본에서는 우리 인원을 줄이려고 하는 의지가 강합니다.”
회사에서는 굳이 디자이너 두 명이나 필요 없었다.
그쪽은 일본 법인 소속이고, 나는 BLUK LAKE 한국 법인 소속이니까.
결국, 구조조정 대상은 ‘내 쪽’이었다.
그래서 나는 ‘법’으로 말했다.
“육아휴직을 하면 어떨까요?
당장 퇴직은 억울합니다. 준비도 못했는데.”
회사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1년 육아휴직으로 유외 기간을 가지고
복귀 시점에 제가 진짜 쓸모가 없다면,
그때 스스로 나가겠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회사는 계속 굴러갔다. 가끔은 나를 찾는 목소리도 들렸다.
“오쌤 있어야 기획이라도 되지...”
“저 이미지, 예전에 오쌤이 만든 거 써야겠네.”
“용 과장에게 맡기긴 좀 그래…”
하지만 이상하게도, 필요한 사람은 ‘나’였지만, 원하는 사람은 ‘그’였다.
필요한 순간엔 ‘거론’됐지만, 진짜로 ‘찾는’ 사람은 없었다.
1년 뒤, 나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첫 면담에서 인사 총무 부장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여전히 디자이너 포지션은 유효하지 않아요.
JBL 쪽은 용 과장을 남기겠다고 확실히 말했고,
우리는 이미 인력 구조조정을 끝냈습니다.
하지만 오쌤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에 속했느냐’의 문제였다.
그들은 조직 개편도 하고, 새 사업도 하고, 브로슈어도 만들고, 기획도 했다.
필요하지만 원하지는 않는 존재. 그게 나였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퇴직 인사를 돌릴 땐, 생각보다 담담했다.
지난 15년.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회사의 커피와 점심으로 내 인생을 채웠던 시간.
그 모든 걸 놓고, 조용히 회사를 나왔다.
기분이 나빴냐고? 솔직히? 그랬다. 하지만 홀가분했다. 왜냐고?
그 누구도 더 이상 내 쓸모를 논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쉬움도 열정도 다 챙겨서 나왔다.
함께 일하던 지사원이 떠나는 나에게 편지를 건넸다.
이 편지 한 장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줬다.
아 … 그래도 내가 잘해왔구나. 실패는 아니구나
이제는, 나 스스로 내 쓸모를 정의할 차례였다.
“회사에서는 내가 필요 없지만,
세상에는 아직 모르잖아?”
나는 그렇게 퇴직 후 6개월 실업 급여를 받으며 돈을 아끼고 아끼면서 사업 준비를 해야만 했다.
1개월 2개월... 6개월은 예상보다 빨랐다.
실업급여 수급, 마지막 6개월 되는 날, 오늘을 기념하며 가족과 함께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코로나 시국에 다음 달부터는 정말 막막하다.
식사를 하는 중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여보세요?”
전화 한 사람은 BLUE LAKE 임원이었다.
“오쌤… 뭐해요?. 놀아요?. 놀지 말고 일해야지?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요 다시 연락한다 했죠?”
포지션이 생겼어요. 언제부터 일 할 수 있어요??
일단 귀를 의심했고, 잠깐 심장이 울컥했다.
내가 그 회사에서 퇴사할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은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그 전화를 받았을 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전화를 끊고 혼잣말을 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었구나… 이제야?”
그날 저녁 가족에게 복직 소식을 알렸고 우리는 기분 좋게 식사를 이어 갔다.
그리고 다음날, 복직된 상황을 지인에게 들었다.
복직이 확정되기까지, 몇 사람의 손이 오갔다고 말이다
BLUE LAKE의 오너는 JBL에 회사를 매각하려 했지만, JBL 측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그는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 회사를 넘겼고, 그렇게 경영권이 바뀌었다.
새로운 오너와 경영진은 회사를 재편했고, 그 과정에서 신사업을 위한 디자이너 포지션이 생겨났다.
놀랍게도 복직 제안을 받은 건, 내가 아니라 여러 명의 추천 덕분이었다.
다들 나를, 오샘을, 다시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JBL은 BLUE LAKE에서 우수 인력을 데려갔지만, 지금은 매출이 전혀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JBL 신사업은 예상과 달리 순조롭지 않았다.
성과가 안 나자 사장은 날이 서기 시작했고, 그 기세에 눌려 결국 몇몇은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고 한다.
심지어 용 과장도 신규법인 일본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고
주인이 바뀐 BLUE LAKE의 디자이너 후보에 올랐지만,
회사 내부 여론, 특히
“그 친구는 좀…”
이라는 기묘한 평판 탓에 결국 내가 선택됐다고 한다.
나는 다시, 쓸모 있는 사람으로 회사의 현관문을 들어섰다.
사무실 분위기는 꽤 달라져 있었다. 기술연구소는 이름만 화려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프로젝트는 시작됐고,
‘디자인’이 필요해졌으며,
그 디자인은 ‘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다들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쓸모 있다는 건, 결국 타이밍이구나.”
하지만 경영진이 바뀌어도 회사 상황은 여전히 난장판이었다.
경영권 분쟁, 상장 폐지 위기,
CFO가 전 직원에게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메일까지 보내는 판.
그 와중에도 사람은 필요하고,
일은 돌아가야 하니까,
사람을 다시 끌어오고, 나 같은 사람을 다시 부른 것이다.
나는 회사의 선택이 고맙기도 했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그 감정이 정확히 반반이었던 걸, 지금도 기억한다.
복직 후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쌤이, 네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딱 하나야.
이 사람들이 널 필요로 한다는 증거.
그게 언젠가는 또 사라지겠지만,
오늘만큼은, 쓸모 있다."
그건 비참한 자기 위로가 아니었다.
그건, 그날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쓸모없던 사람이 다시 필요해졌을 때
웃는 건 어렵지만, 웃어야 한다.”
왜냐면,
그게 어른이니까.
(다음 편 : 16화 나는 떠나기 위해 돌아왔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