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스승님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 테라 저녁, 회식 자리를 향하던 길이었다.
문득,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연재 중인 에세이 〈당신의 자리는, 안녕하십니까?〉 1화.
그 면접에서 날 뽑아준, 그 '원 팀장' 같았다.
처음엔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검정 롱코트 자락이 골목을 스치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메트릭스의 ‘모피어스’처럼,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회식이 끝난 뒤에도, 그의 실루엣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스마트폰 연락처를 뒤져보니, 아직도 번호가 있었다.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굵직한 목소리.
“팀장님! 저, 오쌤입니다.”
“어, 오쌤? 이 자식 오랜만이네! 잘 지냈냐?”
그렇게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어제 팀장님 뵌 것 같아서요. 혹시 가산디지털단지에서 근무하세요?”
“그래, 형은 ZEI프라자에 있어. 너는?”
“저는... 요즘 디자인 안 하고, 기구설계 쪽 하고 있어요.”
“그래? 디자이너가 설계도 하면 좋지.
근처에 네 선배들도 많아. 한번 보자.”
그 후로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2023년 말, 그의 전화가 왔다.
“오쌤, 올해 넘기기 전에 한번 보자.
이번 주 금요일, ZEI 프라자 지하 1층 수육집.
12시쯤이면 좋겠다.”
약속 장소.
낮 12시 정각.
변함없는 모습의 원 팀장.
수육에 소주 한 잔 따라 마시며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쌤... 내가 너한테 미안한 게 많아.
그때 너를 그렇게 보낸 게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했다.”
맞다.
회사가 어렵던 시절, 권고사직 명단이 돌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가정이 없잖아. 책임질 식구도 없고…
그러니까... 너가 나가 줬으면 좋겠다.”
그때는 서운했지만, 지금은 담담하다.
멋지고 트렌디한 모바일 디자인은 아니지만,
‘베리어프리’라는 진중한 길로 흐르게 되었고,
나는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오쌤, 너는 이 시대 마지막 제품 디자이너야.
자부심 가져야 돼.
요즘 애들 중에, 제대로 된 제품 디자이너 정말 드물어.”
맞는 말이다.
디스플레이는 커지고, 인터페이스는 터치로 바뀌었다.
UX/UI, 서비스 디자인에 몰리고,
제품 디자인은 점점 외면받고 있다.
그날 원 팀장은 또 한 번,
내게 가르침을 남겼다.
“그리고 버텨.
너 같은 A급 인재가
기구설계자 밑에서 배우는 건 지금은 손해 같겠지만,
다 때가 와.
그때까지, 존버해.”
…아, 쓰벌.
진짜 이 형…
왜 이렇게 좋냐.
그날 우린 비전과 인생,
디자인과 기술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그는 이제 디자인사업부를 따로 떼어
법인을 새로 세울 거라 했고,
나는
디자인과 기구설계를 모두 아우르는
전문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 말했다.
밤이 깊어 헤어지며,
우린 다음을 기약했다.
2024년 어느 날.
평소처럼 일하고 있을 때,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오쌤... 원 팀장, 돌아가셨다.”
얼마 전 점심에
수육 먹으며 웃고 떠든 그가
이제 없다고?
믿기지 않았다.
선배 말로는
회사 스트레스가 많았고,
집에서 자던 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단다.
가슴이 무너졌다.
기구설계 일을 하며
힘들던 내 마음을 기대게 해주던
단 한 사람이었는데,
그 형님이… 이제는 없다.
그날, 마지막 만남.
그 모든 말이
한 편의 꿈 같았다.
정말, 일장춘몽이었다.
이 형을 위해,
글을 남긴다.
내 디자인의 스승님,
그 가르침은 지금도 내 손끝에 살아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