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주말농장 사전답사 / 4년차 도시농부가 주말농장을 선택하는 법
내 주말농장의 자리가 정해졌다. 13번이다. 여기는 밭 중간라인에서 오른편 끝자리에 아주 약간의 기울기가 있고 농수로에 가까운 자리였다. 초보 도시농부는 뭐가 좋은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맨 땅 자체를 처음 봤는데 여기에 뭘 심는다는 게 상상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냥 좋기만 했다. 여기에서 내 로망이 실현되는 것이란 말인가?
이번에 하게 된 주민센터 주말농장은 정식 주말농장 인가를 받은 곳이 아니었다. 주말농장 운영하는 분과위원 중 한 사람의 개인토지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주말농장의 부지는 1/4 정도이고 3/4는 다른 임차농이 경작한다.
위치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매일 등하교시켜 주는 큰아이의 학교 근처였다. 학교에서 밭까지 차로 약 5분 거리다. 매일 가는 수영장 까지는 밭에서 약 20분 거리다.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가 있을까? 이로써 '집-큰애 학교-주말농장-수영장-집'으로 연결되는 모닝 루틴이 완성되었다. 아침에 나와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밭으로 와서 일을 한 다음 수영장으로 가서 운동하고 깨끗이 씻고 집에 오는 꿈같은 루틴이었다. 마침 그 해에 밭에서 5분 거리에 구립 수영장이 생긴다 하니 수영장을 옮기면 동선이 더 짧아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야호!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구나
또 신나게 뇌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밭 구경을 했다. 넓은 밭 한편에 컨테이너 한 동, 밭 한가운데 사람 일곱여덞이 들어갈만한 커다란 고무로 된 저수통, 펌프에서 저수통까지 기다랗게 늘어선 굵은 호스. 주민센터 관계자 말로는 컨테이너에 각종 농기구와 복합비료, 유기질비료등을 놓을 것이라고 했다. 물은 각자의 물조리개를 준비해서 물통에서 받아서 자기 밭으로 길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내 두리번거리고 무언가를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없다. 화장실이 없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긴, 그렇게 모두 갖춰놓고 있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지' 살짝 어이없는 웃음을 허공에 날려 보냈다.
당시에는 당첨이 된 거라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해결이 안 될 테니까. 그러나 만약 돈을 내고 주말농장을 선택한다면 이런 곳을 선택할지는 물음표였다. 4년이 지나고 여러 곳의 주말농장을 경작해 본 지금은 이번 농장 같은 곳은 선택하지 않겠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4년차 도시농부로서 주말농장을 고르는 기준은 이렇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최고의 텃밭은 문전옥답이다. 가까워야 한 번이라도 더 갈 수 있고, 비상시에 빨리 가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도보로 갈 수 있는 곳도 좋겠지만 경험상 차로 20~30분 이내가 가장 좋았다. 주말농장이 너무 멀면 정말로 주말에나 가게 되는데 주말에 가족모임 등의 행사가 생기면 부득이 한 주를 건너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작물을 키우는지 잡초를 키우는지 모르는 텃밭상태를 확인하게 된다. 아주 딱 가기 싫어지게 말이다.
작물을 키우는 바탕인 흙이 좋아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텃밭을 이제 시작하는 사람이 흙이 좋은지 안 좋은지 알 길이 없다. 일반적으로 흙이 색깔이 진하면 대체로 양분이 많다. 흙을 한 줌 손에 쥐어봤을 때 살짝 뭉쳐졌다가 주르르 떨어뜨렸을 때 부스스하게 떨어지는 게 좋다. 이렇게 말해도 텃밭이 처음이라면 무슨 말인지 모르기 십상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작물이 심겨 있을 무렵, 봄이나 초가을 정도에 주말농장을 방문해서 작물이 자라는 상태를 보는 것이다. 혹시라도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있다면 작물이 잘 자라는지, 어떤 작물이 잘 되는지, 물은 잘 빠지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다.
작물을 재배하는데 물은 필수다. 오이나 호박, 상추는 물이 많이 필요한 작물이다. 그래서 물 사용여부는 흙의 질만큼이나 중요하다. 물 사용이 얼마나 편한가에 따라 텃밭생활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수도시설이 잘 되어있는 주말농장은 밭 군데군데에 수도꼭지를 설치해 놓아서 물 사용이 편리하다. 내 첫 텃밭은 큰 저수통이 밭 중간에 있어서 물조리개로 길어 날라야 했다. 내 밭은 저수통에서 거리가 있어서 꽤나 힘들었었다. 다른 밭에서는 수도펌프가 고장 나서 가까운 개울에서 물을 길어 나른 적도 있는데 정말 못할 짓이었다. 날이 덥기라도 하면 머릿속에 육두문자가 팝콘처럼 불꽃놀이를 할 정도로 힘들었다.
취미로 주말농장을 경작한다는 것은 분명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주말농장에서 수확하는 작물은 마트에서 파는 농산물들과 생긴 것부터가 다르다. 대부분 훨씬 못생겼다. 가끔 볼품도 없을 때가 있다. 게다가 내 작물의 수확시기는 그 작물이 많이 나오는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값도 싸다. 그러나 작물을 재배하는데 드는 모종값, 퇴비, 비료등 농자재, 거기에 내 품삯까지 치면 완전히 밑지는 장사다. 작물 재배를 실패라도 하면 농약방 돈만 벌어주는 꼴이 된다. 그러기에 주말농장을 경작하는 도시농부는 이러한 비용을 시중의 채소값과 비교하면 곤란하다. 사먹는게 훨씬 싸고 좋으니까. 고로, 내 취미생활을 영위하는 값이라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 내가 취미생활을 1년 하는 데에 어느 정도까지 비용을 쓸 수 있는가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모종값 오백원, 지주대 천원이라도 모이면 몇만원은 우습게 들고, 작물에 병해가 왔다손 치면 약값은 더욱 더 비싸다. 주말농장 임대료가 다가 아니다. 주변에 여러 주말농장을 다녀보고 시세파악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고, 임대료 안에 어떤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차가 필수품인 시대를 살고 있다. 주말농장을 하다 보면 농기구나 부자재 등을 어느정도는 가지고 다녀야 하고, 수확물을 가져가야 할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주말농장에 따라 이들을 밭에 두고 다닐 곳이 마땅치 않아서, 혹은 분실이나 훼손 걱정으로 차에 싣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그러기에 주말농장을 선택할 때 주차환경을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중에 텃밭을 가는 사람이라면 크게 관계 없지만 주말에는 텃밭에 가는 사람이 많으므로 주차 자리가 최소 예닐곱 자리는 있어야 편하다. 주차장이 농장과 너무 멀지 않은가도 확인하면 좋다.
호미나 가위, 물조리개 같은 농기구는 내 것을 쓰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러나 괭이나 레기, 삽 같은 큰 농기구는 가지고 다니기가 어렵기에 주말농장에 갖춰져 있는 것이 좋다. 주말농장에 따라 물조리개, 장화, 멀칭비닐, 고추끈 같은 것도 준비되어 있기도 하다. 갖추었다고 다가 아니다. 상태가 쓸만한지, 여러 개가 있는지, 수리는 잘 되는지도 중요하다. 농작업용 수레가 있는지도 살펴보자. 퇴비를 나를 때, 수확한 작물을 옮길 때, 작물을 갈무리할 때 매우 유용하다.
경험상 주말농장에 오랜 시간을 머무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없어도 크게 관계는 없다. 그러나 더운 날 잠시 더위를 식혀줄 그늘이나, 대자연의 부르심을 거역하기 힘든 경우에는 이것만큼 절실한 게 없다. 이를테면 쉼터가 있는 경우,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텃밭에서 다듬어서 부산물을 밭에다 처리하고 알맹이만 집으로 가져올 수가 있는 것이다. 내 첫 텃밭은 화장실이 없어서 텃밭에서 물 종류를 거의 마시지 않았고 주변에 갈만한 화장실을 검색해서 그 곳에서 해결했다. 그래서인지 텃밭에서 길어봐야 두어 시간 머물렀고, 오랜 작업이 예상되는 경우 미리 해결하고 텃밭으로 갔다.
농작업은 하고 나면 흙투성이가 되기 십상이다. 특히 비 온 뒤의 텃밭은 진흙탕이다. 이럴 땐 장화라도 닦을 수 있는 수돗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물을 사용할 수 있는 텃밭이면 어찌어찌 해결되기는 한다. 그러나 편의시설은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다.
사람마다 가치의 기준이 다르니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 규정할 수는 없다. 공짜로 흐르는 시간은 없다고 4년간 총 세 곳의 주말농장을 경험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나만의 기준이 이렇다는 것이다. 어떤 곳이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여 만족할만한 그런 주말농장은 없다. 만약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있다면 엄청 비쌀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직접 땅을 마련해서 본인이 완벽하게 만들던가 해야지 뭐.
나의 첫 텃밭은 7번조건을 제외하고는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모든 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정도였다. 여기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할까 이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서는 순간이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