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Open Run)

주민센터 주말농장에 등록하다

by 라뮈씨

오픈런: Open[(문 등이) 열려있는]+ Run [달리다]의 합성어.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물건을 사는 행위.


주민센터에 도시농부 모집 입간판이 섰다. '선착순'이란 단어가 이렇게 가슴 졸이는 말이었던가

우리 동네 주민센터 신규사업으로 주말농장을 운영한다는 현수막이 붙었다. 언제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접수일은 내가 현수막을 본 다음날이었다. 분명 듣기로는 추첨이라고 했는데 현수막을 보니 '선착순'이라고 분명하게 쓰여 있었다.


잠시 생각했다. '우리 집은 주민센터까지 도보로 1분 컷이다. 이것은 하늘이 내게 주말농장을 하라고 주시는 기회다. 기회는 잡는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잡고야 말겠어!'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희망의 끈을 힘껏 붙잡아보았다. 다음날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온 후 바로 주민센터에 가서 기다려야겠다 다짐했다.


다음날 아침, 예상 동선을 그대로 실행했다. 평소 사고 싶은 물건을 살 때도 하지 않던 이른바 '오픈런'을 한 것이다.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8시 30분. '내가 1등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분들이 계셨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 처음 하는 사업이어서 그런지 인기가 대단했다. 먼저 온 사람들끼리 이렇게 인기가 있을 일이냐며 소소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드디어 등록을 마쳤다.

30분이나 일찍 갔어도 4번이라니! 세상에 부지런한 사람들 참 많다.

"살다 살다 이런 것으로 오픈런을 하다니!"


주말농장이 꽤나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최근에 이렇게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 있었던가.


이제 '산지직송 쿠팡프레쉬'를 내 손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머릿속은 벌써 후배와 같은 밀짚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흙이 군데군데 묻은 바지를 입고 텃밭에서 오이를 잔뜩 수확하고 있었다. 텃밭표 상추와 깻잎을 따와서 삼겹살 구워 한 쌈 하기도 하고. 햇볕 보고 빨갛게 익은 '완숙된' 토마토를 따서 흙이 덜 묻은 쪽 옷에 슥슥 문지르고 한 입 베어 먹는 삶. 그야말로 세상 여유로운 표정으로 '텃밭 하길 잘했어' 하는 모습이 마구 상상되었다.


아차차! 갑자기 머리에 종이 울린다.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걱정이 드리워진다.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떤 작물을 먼저 심어야 하지?


작물은 어떻게 심는 걸까?


씨앗을 심을까, 모종을 심을까?


물은 어떻게 줘야 하지?




직전의 행복한 상상은 이미 산너머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고 걱정 섞인 질문이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똬리를 튼다. 그러고 보니 재배에 관해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작물 재배에 관한 한 나는 완전한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생애 처음 초보 도시농부**라는 스위치를 켰다. 선인장도 기어이 죽이고야 말았던 과거의 내가 아니다.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기로 하자.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책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작물을 길러 먹으려면 텃밭신생아 수준은 벗어나 텃밭어린이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까.



**도시농부 : 주말농장이나 도시 텃밭, 집 베란다, 옥상 따위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도시 사람.



<다음에 계속>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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