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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Nov 15. 2019

일단 재미있고 봐야 합니다.

백만장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어렸을 때는 몰랐던 것을 나이가 들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은 꽤 가난했었다. 우리 집은 옥탑방이었으니까.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한지 전혀 몰랐다. 옥상 앞마당을 두고 엄마는 마당 있는 집에 산다며 좋아하셨다. 엄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이렇게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게 꿈이었어."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물어봐.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친구가 누가 있는지.” 

 엄마는 그 마당에서 화분을 키웠고, 빨래가 잘 마른다며 좋아했다. 오후가 되면 널어놓은 빨래 밑에서 강아지 서너 마리가 햇볕을 쬐며 드러누워 낮잠을 잤다.


 옥탑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여름이 되면 낮에는 마당에서 물놀이를 했고, 저녁에는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보며 잠을 잤다. 그때 아빠는 말했다. 

“우리는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거야.”


 겨울이 되면 에스키모 놀이를 한다며 방에서 내복을 입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양말을 두 겹, 세 겹 씩 신고, 장갑 낀 손에 하얀 입김을 호호 불며 놀았다. 이불을 겹쳐 쌓아 3개의 이글루를 만들고 엄마, 아빠, 나는 각자의 이글루에 들어가 잠을 잤다.


 서른이 넘어서야 우리 집이 가난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한 달에 한두 번 아빠랑 긴 대화를 했는데, 아마 월세 낼 때, 공과금 낼 때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신기하게도 나는 우리의 가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이건 전적으로 우리 부모님 덕분이다. 우리 집은 재밌었고, 그래서 집에 있는 게 좋았다. 달력에 ‘삼겹살 먹는 날’을 표시해놓고 기다리는 게 설렜고, 가끔씩 엄마가 몽쉘통통을 사주면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엄마가 사줬다고 자랑했다. 나의 부모님은 한 번도 돈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고(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나도 가난으로 인해 우울해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늘 이런 말을 많이 했다.

 "어때? 재밌겠지!"




 다 큰 어른이 된 지금, 하나씩 기억을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순간순간들은 하나같이 다 재미있었던 순간들이다. 모든 재미있는 순간은 특별하고, 그 특별함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러니, 일단 재미있고 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재미있다면, 특별한 순간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니라 사랑이다. 그런데 때때로 아이는 사랑을 받아도 그게 사랑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이때 한 가지 방법은 아이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조금 추워도, 조금 힘들어도, 조금 아파도, 아이는 재미를 느끼면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재미있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사랑.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도 좋아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좋아하는 이성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재미있는 활동을 하고자 했고, 그들도 재미있어해 주길 바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재미있게 해주는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라는 것을 하나씩 경험해나갔다. 내가 맛있는 것을 먹으면 그 친구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고, 그 친구가 맛있다고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음식도 아니었는데도. 그리고 내가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그 친구가 재미있어할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누군가로 인해 재미를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누군가를 재미있게 해주고 싶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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