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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Nov 15. 2019

'나'를 얼마나 아시나요?

자신만의 감격 포인트가 있으신지요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욕망으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쉼'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쉼'을 위해서 6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뒀고, 산이 가까운 곳으로 집을 이사했다. 


 ...


 7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데 이어, 작년에 아빠까지 돌아가시자 세상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았다.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 아무도 나에게 앉으라고 권하지 않는 세상. 

 그 상태로 회사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났고 그곳에는 항상 대립되는 의견이 있었다. 늘 그랬듯, 야근과 외근은 일상. 그러다 어느 순간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나겠다'는 두려움이 훅 들어왔다. 밤이 되면 눈물이 줄줄 흘렀고, 갑자기 소름이 돋으면서 섬뜩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쿵 뛰었고, 눈 앞이 하얘지며, 딛고 서 있는 바닥이 가라앉는 느낌도 들기도 했다. 이 모든 감정을 토로할 사람이 없다는 게 견디기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 전에는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이젠 아빠가 없으니까. 아빠의 부재(在)를 그런 데서 느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따뜻한 캐모마일을 마시고 심호흡을 하거나 같이 사는 치와와를 끌어안는 일뿐이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만 계속했던 것 같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실제로 우리 할아버지는 올해 103세이시고, 무척 정정하시다), 그렇다면 아직도 나는 70년 정도를 더 살아야 했다. 휴, 인생이 너무 길었다. 남은 시간이 20, 30년 정도면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을 것 같은데, 70년은 너무 길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덜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았다.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나트륨 넘치는 야식도 꼭 먹고,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뭐 그렇게 사는 건 어떨까. 그러면 병에 걸릴 테고... 아, 근데 그랬다가 괜히 몸만 아프고 죽지도 못하면 그건 또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이쯤에서 그냥 빨리 이것저것 다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는 게 낫겠다'하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나 스스로 인생을 끝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내가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결론으로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거 진짜 큰일 났구나 싶은 동시에, 이 지경이 되도록 '나'를 내버려 둔 미안함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대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수년간의 직장생활 덕분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신중히 검토해야 할 순간과 과감히 결정해야 할 순간을 구분할 능력 정도는 있었다. 지금은 과감히 결정해야 할 순간이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쉼'을 갖기로 결정했다. 당장 퇴사 의사를 밝히고, 인수인계를 서둘렀다. 앞뒤 가릴 때가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으로 한 일은 집을 이사하는 일이었다. 원래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집이라, 혼자 살기에 너무 크기도 해서 안 그래도 이사하려고는 했었는데, 조금 더 앞당겨서 이사하기로 했다. 새로운 집을 구하는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내가 '쉼'을 갖기에 충분한 곳인가. 그렇게 찾은 새로운 집은 산이 가까운 곳이었다. 현관문을 나서서 3분이면 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비록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1시간도 안 걸리는 낮은 산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산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살아내야만 해'라는 생각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는 건강을 먼저 챙겨야 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건강. 


 집 앞 산을 다니기 시작했고, 예전에 조금 하다 말았던 요가도 다시 시작했다. 어떤 운동이든 조금씩이라도 매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쉽게 질려서는 안 됐고, 너무 격해서도 안 됐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하기 싫을 때는 그냥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거나, 방 안에서 스쿼트라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으로 살아왔는지.  집 앞 낮은 산을 올라갔다 오면 다리가 덜덜 떨려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요가를 하면 몸을 굽히고 필 때마다 온 군데군데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무작정 걸은 날이면 다리가 퉁퉁 부었고, 스쿼트는 10개만 해도 숨이 찼다.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또 운동을 했다. 난 '살아야 했다'. 

 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두 달쯤 보내자, 산을 다녀와도 충분히 괜찮아졌고 요가도 조금씩 더 깊은 동작을 할 수게 되었다. 이쯤 되었을 때 달리기와 필라테스를 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분 달리는 것도 너무나 힘들어 헉헉대며 주저앉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심폐기능이 살아나는 걸 타이머로 확인할 수 있었고, 필라테스를 통해 내 몸의 어느 근육이 유난히 약한지를 배우며 어떤 운동을 어떤 자세로 중점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아갔다. 이 모든 것들은 요가를 하면서 꿈의 동작들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하루하루 좋아지는 나의 체력과 근력을 마주할 때마다, 특히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동작이 어느 날 딱 됐을 때는 무척이나 감격스럽다. '역시 살아야 해.' 이 감격은 나 혼자만의 감격이라 더 소중한 느낌이다. 

 몸을 충분히 움직이고 집중하다 보니 내 몸의 각 부분들과 근육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느끼게 되었다. 특히 요가는 사바아사나라는 마무리 동작을 통해 몸의 긴장을 풀고 호흡도 편안하게 하도록 하는데, 처음에는 이 시간의 중요성을 모르다가, 어느 순간 그게 왜 필요한지를 온몸으로 깨달은 이후부터는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정은 어떻게 흐르는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생각인지. 


 오롯이 나의 몸과 마음에만 집중하면서 관찰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불편하게 살아왔는지를 실감했다. 몸을 꽉 조이는 옷들, 점점 진해지는 메이크업, 높은 구두, 무거운 가방, 그리고 불편한 사람들, 불편한 상황들. 

그 모든 것들을 견디며 살며 내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정작 나는 나의 자유를 구속하며 살았다. 무언가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해본 적이 언제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을 갔던 적은 언제였는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한 적은 또 언제였는지. 늘 상황에 따라 가야 하는 곳을 갔고,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 그 일을 잘 이루어내면 나는 성취감을 느꼈고, 보람되다 생각했다. 


 처해진 상황은 잘 읽고 다른 사람은 잘 이해했지만, 정작 '나'는 잘 몰랐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황인지,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바라는지. 


 요즘은 메이크업을 한 단계씩 생략해 가고 있다. 무거운 가죽 가방 대신 가볍고 실용성 좋은 천가방을 들고, 언제든 달릴 수 있고 스트레칭할 수 있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다. 달리는 모습의 내 그림자가 좋고, 운동하고 세수한 내 얼굴이 마음에 든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살아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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