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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Nov 21. 2019

지금 어떤 눈빛으로 살아가시는지요

 많은 말들이 바람에 흩날려 없어지지만, 어떤 말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가 중요한 순간에 돋아난다.


 대학 시절 수많은 전공수업과 복수전공, 그리고 교양수업을 들었지만, 나에게 딱 한 문장의 말을 꼽으라면 단연 이 문장이다. 


 "나는 너희가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지금처럼 총명한 눈빛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 


 한 교수님이 전공수업 때 하신 말씀이다. 정확히 내가 몇 학년 때였는지, 무슨 수업시간이었는지, 그 시간에 배운 것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 말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총명한 눈빛'. 


 그 교수님은 자신이 가르치고 양성한 수많은 졸업생들을 지켜보았겠지. 그리고 그들이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도 지켜보았겠지. 그러면서 아마 어느 순간 총명함은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눈빛으로 살아가는 걸 본 것이겠지. 


 졸업한 지 10년 여가 된 지금, 그때의 나와 내 친구들은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도 하고 있다. 지난주에 100일이 되어가는 아이를 돌보며 2년의 모유수유(WHO의 권고사항이라며)를 목표로 둔 친구를 만나서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그 친구가 설레는 표정을 내보였다. 그때 그 교수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 우리는 그때처럼 총명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십 대 초중반의 학생이었던 우리들에게는 대체 무엇이 있었길래 교수님은 우리에게 '지금처럼 총명한 눈빛'이라는 표현을 하셨던 걸까. 그때 우리가 가졌던 총명한 눈빛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부동산, 세금, 재테크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두어 개씩 하면 굉장히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이제는 또래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면 부동산 이야기를 꼭 하게 된다. 어느 모임이나 스스로 부동산 전문가를 자처하는 친구가 꼭 한 명씩은 있기 마련이고, 어느새 그 친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모여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물론 필요한 이야기이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의 우리들은 별로 반짝이지 않는 것 같아서.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 혹은 '어떤 직장에 들어가고 싶다'는 꿈과 희망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취준생의 시기를 거치며 그러한 꿈과 희망이 얼마나 막연했는지를 몸소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 이상 꿈도 꾸지 않고 희망도 갖지 않는 사회인이 얼마나 많던가. 꿈을 꿔봤자 이룰 수 없고, 희망을 가져봤자 아무 의미 없음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잘 살 수 있겠지.'라는 낙천적인 마인드도 기본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애매한 생각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해가며 열심히 돈을 벌어봤자, 친구가 분양받은 아파트 값은 불과 몇 년 만에 몇 억씩 오르기도 한다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대출받아가며 아파트를 분양받을 계획을 세우기라도 하는 친구는 그나마 금수저 쪽에 속한다. (요즘 금수저는 그런 거라지. 서울 소재의 대학을 나와 도심에 사무실이 있는 회사에 다니며, 부모님으로부터 아무런 빚도 물려받지 않은 사람. 그러니 일단 부모님의 빚을 갚는 것부터 시작하는 젊은이들과, 이렇다 할 직장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다는 건지.)


 적어도 그때의 우리들에게는 자신감과 포부 같은 것들이 있었다.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으므로, 우선 배우기 위해 앞장섰다. 교수님이 하는 말을 노트에 적었고, 도서관에서 밤을 새웠고, 필독도서라고 이름 붙여진 책들은 무조건 읽으려고 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외국어학원 새벽반을 등록했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해외여행도 가보고, 어학연수도 해봤다. 방학 때면 공모전에도 도전해봤고, 봉사활동도 하고, 국토대장정도 해봤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이십 대 초중반의 젊은이들만큼 그 시간을 알차게 쓰는 시절은 없는 것 같다. 피곤한 몸으로 곯아떨어질 만도 한데 또 도서관에 갔고, 토익을 비롯한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따려 애썼다. 

 놀랍게도 그 모든 시간 중 어느 한순간도 고통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각자의 순간은 그 순간대로 의미가 있었고 재미있었다. 때로는 기대 이하의 성적이 나와 재수강을 해야 하기도 했고, 공모전에도 실패하는 등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상관 없었다. 앞으로 잘하면 되니까. 


 그러면서 그 누구에게도 편견이 없었고, 어떤 상황에도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했다. 새롭게 만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웠고, 각자의 이상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알아가며 많은 것들을 얻었다. 동시에 어른들(흔히 기성세대라고들 하는)이 우리에게 가지는 편견과 선입견들은 우리를 우울하게 했고,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이제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편견과 선입견.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몇 개의 정보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려 하고, 다 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에 대해 '총명한 눈빛'을 말했던 교수님은 이미 이야기했던 바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말이야, 이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그런 것 같긴 한데,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먼저 보고 그다음에 나이를 물어보곤 해. 그러고 나서 학교를 물어본단 말이야.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그리고 현재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고,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지를 물어봐. 그러면 '알만한 사람이네'하고 판단해버리지. 너희도 좀 그런 경향이 있지 않니? 

 그런데 생각해봐. 너희는 너희 스스로 스물몇 살이라는 나이와, 어느 학교 무슨 전공, 그리고 출신 지역이라는 단 3개의 정보만으로 너희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말이야. 너희가 살아온 배경과, 머릿속에 들어있는 사상과, 너희의 꿈같은 것들이 그런 몇 개 안 되는 단서로 판단되기에는 아깝지 않니?"






 많은 벽에 부딪혀보고, 큰 태풍도 몇 번 겪어보니 몸을 사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더 이상 도전하려 하지 않고,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여기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꿈꾸기보다 포기하기를 선택하는 그런 어른. 어린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어른의 모습이 이제 나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아 경각심이 든다. 

 내 눈빛은 지금 어떤 눈빛을 하고 있을까. 


 요즘 따라 그 교수님의 말이 마음속에서 자꾸만 돋아난다. 

 "나는 너희가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지금처럼 총명한 눈빛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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