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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Dec 12. 2019

'몸'이 있기에
'마음'을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다

 

 내 부모님은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7년 전에,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한 마디 말로 정의할 수 있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병'인 걸 알게 되기까지 이런저런 증상들을 알아차려야 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찾아가야 했다. 몸에서는 이미 이게 '병'이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오는데, 당장 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수도 없는 검사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암'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고, 그제야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버렸는데.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에는 수많은 부작용이 있어서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많은 약을 또 먹어야 한다. 구토억제제, 위벽 보호제, 진통제, 안정제, 수면제 등등. 그러는 동안 음식을 잘 먹어야 하고 운동도 조금씩 하라고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치료 자체가 워낙 힘들어서, 한 번 치료를 받고 나면 몇 날 며칠을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데, 괜찮아지는 듯싶으면 또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멘탈이 무너진다.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도 당장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는 걸 겪으면 극도의 자괴감에 어쩔 줄 몰라한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베개에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묻어있는데, 누가 일부러 쥐어뜯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빠진다. 차마 거울을 볼 수가 없을 정도다. 사실상 이때부터 많은 환자들이 우울감을 본격적으로 호소한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으니.  


 엄마와 9개월, 아빠와는 1년 3개월간, 의도치 않게 병원생활이라는 것을 하였다.

 병원에서 먹고 자는 날이 많았다. 일반병동, 응급병동, 암병동, 간호간병 병동,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까지 다 가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병원생활을 프로페셔널(?)하게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수많은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보았다. 우리가 입원해 있는 동안 옆 침대 사람들은 계속 바뀌었고, 우리가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할 때쯤에는 또 새로운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과 형편이 있었다. 가족 간의 분위기도 저마다 달랐고, 당연히 병을 대하는 자세도 천차만별이었다. 


 병동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데, 특히 암병동은 조금 다른 공기가 흐른다. 일반 병동에서는 다리를 다쳤거나, 담석수술을 하거나 하는, 그야말로 '치료'의 과정이라면, 암병동은 '치료'라는 말을 쉽게 쓰기에는 조금 모호한 구석이 있다. 물론 초기 암인 경우에는 빨리 발견해서 빨리 수술하고 빨리 항암치료를 해서 완전히 낫는 경우도 요즘은 많아졌지만, 그래도 많은 경우는 '나을지 안 나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으니 하는' 치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원을 기분 좋게 할 수가 없다. 다 나아서 퇴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며칠 동안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병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우리 부모님 같은 경우에는 풀썩 쓰러지거나, 갑자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구급차를 타기도 여러 번. 그러므로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계속해서 혈압과 체온을 측정하며, 상태를 주시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환자의 체력은 바닥을 친다. 그런데도 치료는 점점 더 센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점점 더 많은 약을 처방한다. 환자의 몸과 마음은 점점 더 너덜너덜해지는데. 




 암은 흔히 고령, 흡연, 음주, 식습관, 당뇨 등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리 부모님에게 해당되는 요인은 없었다. 우선 그렇게까지 고령이 아니었고(만 60세가 되기 전이었으니까), 건강검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받았다. 우리 부모님은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년 이상 배드민턴을 칠 정도로 꾸준히 운동했으며, 술,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고기를 먹을 때는 꼭 채소도 함께 먹었다. 몸에 좋다는 즙이나 영양제도 종종 먹었고, 엄마가 매년 보약도 지어와서 그것도 먹었다. 그 흔한 당뇨도 없었고, 다들 먹는다는 혈압약 한 번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이 찾아왔다. 

 

 병원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사람은 왜 자기가 이런 병에 걸렸는지 처음에는 억울해하다가, 조금 지나면 차분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데, 각자가 생각하는 병의 원인은 다 달랐다. 물론 그중에는 흡연, 음주, 식습관 등의 요인도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이거다'싶은 원인은 없었다. 왜냐면 우리 부모님은 해당사항이 없었으니까. 


 물론 하늘의 뜻이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래도 뭔가 이유를 찾고 싶었다.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 4명 중 1명이 암으로 사망한다는데, 그저 각자의 운명에만 맡겨 두기에는 뭐랄까 서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통적인 원인으로 생각된 것은 바로 '스트레스'이다.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집안의 아버지 어머니, 혹은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느라 본인의 스트레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깟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라고 하지 마시길... 

 이 스트레스가 '그들에게 먼저' 병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일 뿐. '우리들에게도 언제든' 스트레스가 병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자식을 키워야 하니까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으면서 삶을 살아간다. 


 나는 이 힘든 삶이 '마음을 다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즉, '스트레스받았어!'라고 쉽게 표현되는 이 말은 사실 '나 마음이 다쳤어!'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아, 스뚜뤠쓰!'하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마음에 데미지(damage)를 입은 것'이다. 

 마음을 하나의 덩어리를 가진 모습으로 떠올려보았을 때, 마음의 한 부분이 조금씩 뜯겨 나가고, 구멍이 나고, 썩기 시작하는 모양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게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스트레스를 만나면, 상처는 더 깊어진다. '속상하다'는 표현이 이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속'이 '상한다'. 


 이 '스트레스'라고 하는 '마음의 병'은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은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본인이 '스트레스받았다'라고 인식을 하더라도, 제대로 회복을 시켜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그냥 남아 있게 된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관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고, 또 받다 보면 스트레스가 속에 쌓이게 되는데, 이게 몸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그로 인해 식욕저하, 불면증, 우울증 등의 모습으로 표면으로 훅 드러난다. 그런데도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계속해서 그냥 참고 지내다 보면(대부분의 기성세대가 그래 왔듯) 기존에 상해있던 마음이 버텨내지 못하게 되고, 이게 몸의 병으로 전환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지경이 되면 다시 원상태로 돌리기는 매우 힘들거나,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 


 마음의 건강이 곧 몸의 건강이다. 이것이 나의 결론.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마음의 건강을 우선시하지 않는 사회와 개인은 언젠가는 아프게 되어있다. 






 마음에서 몸으로 향하는 이 비관적인 흐름을 계속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몸에서 마음으로 흐름이 향하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가 요즘 매일 운동하며 내 몸을 하나씩 의식하면서 내 마음도 의식하고 있었으므로. 


 근육운동, 달리기, 등산,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 등 이런저런 운동을 매일 하면서 내 몸을 하나하나 느끼고 있다. 허벅지 운동을 할 때면, 허벅지가 하나로 뭉뚱그려진 게 아니라, 앞 근육, 옆 근육, 뒷근육, 아랫 근육, 윗근육이 다 다름을 인식하며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허벅지 앞쪽에 엄청 힘이 들어가고, 어떤 날은 허벅지 바깥쪽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서 그날그날의 컨디션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삼십여 년이나 살았는데 그동안 대체 뭘 느끼고 산 건지...  

 이렇게 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제어하며 천천히 몸의 작용을 느끼기를 꾸준히 하면서 눈에 보이는 몸의 움직임에만 신경 쓰다가,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내 마음 덩어리의 어느 부분이 흠집이 나 있는지, 언제, 왜 그랬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의식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천천히 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은 일상생활을 하면서는 거의 되지 않았다. 내 마음에만 오롯이 신경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뭔가 괜히 분주하고, 신경 쓸 게 많았다. 눈에 보이는 형체가 있다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오며 가며 한 번씩 쓰다듬기라도 하겠는데,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사람마다 모두 성향이 다르니 어떤 사람은 명상을 하며 할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운동을 하며 몸을 움직일 때 '마음을 의식하는 연습'을 하기가 수월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분주할 일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운동할 때만큼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팔다리를 움직여 달리고, 힘을 썼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오직 '지금 내 몸의 어느 부분의 힘을 쓰고 있는가'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어떤 감정이 솟구치거나, 밑도 끝도 없이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아마 평상시에도 계속 떠올랐겠지만 잡아내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그 순간을 포착했다. 


 그 순간을 하나씩 잡아내기 시작하면서 내 의식과 기분의 흐름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하늘에 뜬 구름만 봐도 좋다가도, 갑자기 서글퍼지기도 했다.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리듬을 맞추다가 갑자기 한 소절의 가사가 귀에 꽂혀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느닷없이 어떤 사람이 보고 싶어지기도 했고,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새삼스레 생각나기도 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 나갔다. 상처 난 부분, 낫고 있지만 아직 쓰라린 부분, 그리고 회복했지만 흔적이 남아있는 부분들이 여기저기 있는 나의 마음 덩어리. 그동안 내가 신경 써주지 못해서 여기저기 다치기도 했지만, 원래의 내 마음 덩어리는 매끈하고 부들부들했다. 


 내 마음 덩어리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몸'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할 때가 많다. 먹고 싶은 게 그렇게 많아도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듯, 이 '몸'의 제약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갈 수 있는 곳을 못 간다. 그러나 그래도 이 '몸'이 있기에 마음을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세상에 굳이 '몸'을 가지고 살게끔 하늘의 뜻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오늘도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온전하게 내 마음을 본다. 몸을 의식할 때 마음을 신경 쓸 수 있다. 몸과 마음은 따로 있지 않다. 


 지속되는 마음의 병은 몸을 힘들게 하지만, 꾸준한 몸의 움직임은 마음을 사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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