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신
“비싼 운동화를 신는다고 비싼 사람이 되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 가진 운동화를 깨끗하게 신으면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어.
엄마는 내 사랑하는 딸이 깨끗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다음 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의 나이키를 눈여겨보았다. 하나같이 지저분한 나이키였다. 운동장에서 한참을 뛰고 돌아와 제대로 닦지 않아 흙먼지가 뽀얀 나이키. 뒤꿈치를 꺾어 신어 신발 뒤축이 너덜너덜해진 나이키. 한 번도 빨지 않아 언제 샀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이키.
집에 돌아와 내 운동화를 닦기 시작했다. 자주 빨지는 못하더라도 더러워진 부분은 걸레로 살살 닦아내면 운동화가 깨끗해졌다. 이름도 없는 싸구려 운동화였지만, 나는 그 운동화를 깨끗하게 신었다. 엄마는 한 번도 나에게 운동화 좀 닦으라고 잔소리하지 않았으나, 나는 으레 집에 돌아오면 운동화를 닦았다.
나는 깨끗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 나이키 운동화에 대해 말을 꺼냈을 때, 어쩌면 엄마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형편은 그렇게 넉넉하지 못했으니까. 그 순간에 엄마는 얼마나 수많은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그걸 사줄 돈이 없어.' 혹은 '나중에 사줄게.' 정도로 상황을 무마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겠지. 보통의 다른 엄마들이 그러듯이. 그러나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조그만 나를 앞에 놓고 엄마는 엄마의 생각을 소신껏 이야기했다.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해."
엄마가 순간적인 임기응변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엄마의 인생 전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비싼 걸 몸에 걸친다고 비싼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이 가치관은 우리 가족 삶의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어른이 되고, 우리 집 형편이 그럭저럭 나아졌음에도 엄마는 그 흔한 명품백 하나 가지지 않았다. 엄마는 10만 원이 넘지 않는 가죽 가방을 당당히 들고 다녔는데, 얼마나 당당했던지 어떤 때는 명품가방을 든 다른 아줌마들이 우리 엄마에게 그 가방은 대체 어느 브랜드냐고 물어보는 일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깨끗하게 입었다. 항상 다림질을 했고, 옷에 묻은 강아지 털을 떼기 위해 두꺼운 테이프를 항상 현관에 두었다. 아빠는 일주일에 일곱 번 정장에 넥타이를 맸는데, 어느 시장통에서 산 정장과 넥타이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늘 빳빳하고 말끔했다.
잘 차려입어야 하는 자리에 갈 때면 엄마는 또 말했다. "깨끗하게 입어. 비싼 걸 사 입으라는 게 아니라 깨끗하게. 그게 자신감이야."
어른이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비싼 운동화를 신어도 깨끗하게 신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 사람. 비싼 걸 가진 데서 나오는 자신감보다, 이미 가진 것을 깨끗하게 다루는데서 나오는 자신감이 더 빛난다는 걸 아는 사람.
그리고 부모란, 그걸 아이에게 진솔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변명처럼 들리지 않으려면 진솔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데, 아이를 향한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기 존재의 유일무이함을 느낀다. 아이가 사랑을 받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아이의 행동과 관계없이, 이미 사랑받는 그 사랑. 조건 없는 사랑. unconditional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