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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Dec 22. 2019

'과정'이라는 '예술'


 우리 아빠는 스포츠 경기 보는 것을 좋아했다. tv로 뉴스보다 스포츠 중계를 더 많이 봤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테니스, 골프, UFC까지 가리지 않고 다 봤다. 덕분에 나도 함께 스포츠 경기를 자주 접하면서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에 아빠는 매우 흡족해했다. 나는 아빠와 굉장히 자주 함께 스포츠 경기를 봤다. 월드컵 시즌은 물론이거니와, 국내 프로야구는 3월부터 10월까지 거의 매일 경기가 있는데도 우리는 거의 모든 경기를 다 보고 메이저리그도 챙겨봤을 정도다.

 우리가 가장 바쁠 때는 올림픽 시즌이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볼 수 있는 모든 경기를 다 봤는데, 인기 종목이든 비인기 종목이든 가리지 않았다. 육상, 수영, 핸드볼, 펜싱, 스케이팅, 역도, 탁구, 배드민턴, 체조, 사격, 양궁 등등...

 응원하는 선수가 이기면 물론 좋았지만, 지더라도 좋았다. 저기까지 가서 저걸 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을까를 생각하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응원뿐이어서 미안해하며 아빠와 나는 서로 손을 붙잡고 울고 웃었다.


 한 번은 경기를 보다 말고 갑작스럽게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아빠, 저 사람들은 정말 엄청난 훈련을 했겠지? 근데 저렇게 운동하는 게 건강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다. 다쳐가면서 하는 거잖아. 부상을 당해도 좀 나았다 싶으면 뛰고 또 뛰고... 우리 같은 일반 사람이 운동하는 거랑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네."

 "그렇네. 김연아 선수도 턴을 하도 많이 해서 발목이 휘었다지. 야구선수도 공에 맞고, 배트에 맞고, 넘어져서 다리 부러지고... 모두들 무릎 아프고, 인대 나가고... 다들 몸 바쳐 하는 거네. "

 "근데 그렇게까지 해서 몸의 능력치를 저렇게까지 끌어올렸는데, 기껏 하는 건 메달 따는 거네. 마라톤 아무리 해봐야 2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 차로 달리면 훨씬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잖아. 저런 운동선수들이 일반 사람보다 삽질을 훨씬 잘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포클레인이 훨씬 낫고. 저 무거운 역기를 아무리 들어 올려봐야 현장에서는 크레인이 훨씬 낫고."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저렇게 죽도록 고생해서 운동해봐야 쓸 데는 없지. 기계가 하는 게 훨씬 쉽고 편리하니까. 그렇다고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몸만 아프고. 그럼 우리는 이 경기를 대체 왜 보고 앉아 있는 거니. 근데 딸, 생각해봐.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쓸데없는 일이야. 수학 공부 뭐하러 해? 계산기가 다 해줄 텐데. 책은 뭐하러 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다른데 써먹기 위해서 우리가 배우고 노력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책을 보면 볼수록 우리의 마음이 넓어지고,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의 포용력이 두터워지는 데 의미를 두자. 모든 건 과정이야. 스포츠 경기만 보더라도, 결과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잖아. 결과만 중요한 거라면 뉴스를 보면 되지, 뭐하러 저 경기들을 다 보고 있겠어? 저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이를 악물고 노력했는지, 긴장감은 어떻게 극복하는지, 최선을 다하는 그 과정을 보고 싶은 거잖아. 저 눈빛 좀 봐. 열정이 끓어 넘치는 저 눈빛."


 나는 아빠의 말에 동의했다.

 자세를 고쳐 앉고 화면 속의 선수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의 수많은 고민이 집약된 두 손, 집중하는 입술, 그리고 눈빛. 저 살아있는 눈빛! '승리'와 '실패'라는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가치가 그 속에 있었다.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나왔다. 이세돌 9단은 이번에 본격 은퇴를 선언했는데, 진행자가 그 이유에 대해 묻자, 이세돌 9단은 이렇게 대답했다.

 "뭔가, 저는 자부심이 있었거든요. 어쨌든 제가 '최고다. 최고의 한 사람이다'라는 게 있었는데, AI가 결정타를 날렸다고 할까요? (...) 제가 바둑을 6~7살 때 배웠는데, 그때는 예(禮)와 도(道), 저는 예술로 배웠습니다. 둘이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 그런데 AI 이거는 그게 아니잖아요. 이게 무슨 작품이 되겠어요. 제가 배웠던 건 예술인데."




 세상에! 예술이라니!


 이 인터뷰를 보면서, 지난 2016년, 알파고와의 역사적인 대국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 나는 바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데도, 그때의 그 다섯 번의 대국은 몇 시간 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다른 스포츠 경기와 달리, 바둑 중계는 아무 역동적인 움직임 없이 네모난 바둑판 위에 까만 돌, 하얀 돌만 아주 천천히 하나씩 늘어갈 뿐이었는데도 나는 매우 긴장하며 그 모든 대국을 다 지켜봤다.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참았다가 얼른 뛰어갔다 올 정도로 그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아무리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센세이셔널했다고 해도, 나는 좀 지나치리만큼 그 대국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늘, 이세돌 9단의 입에서 '예술'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퍼즐이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바둑에 대해 일자무식인 내가 배경음악 하나 없는 적막한 그 화면만 몇 시간 동안 뚫어져라 볼 수 있었던 건 그가 '예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겠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하나의 작품을 위한 것일 뿐. 비록 상대가 AI여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이세돌 9단은 6~7살 때부터 해왔던 대로 예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의 '예술'을 보고 있었다. 


 이 예술을 하기 위해 수없이 공부하고 매진했던 그 '과정들'은 '예술들'이었다. 그가 30년간 바둑을 뒀다면, 그는 30년간 예술을 한 셈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보면 빈센트 반 고흐가 쓴 편지들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베는 내가 '나는 예술가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취소할 마음은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 말은 무엇인가를 온전하게 찾아낼 때까지 늘 노력하는 걸 의미하거든. 나에게는 그 말이 '나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고, 아주 열중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52p)"


 반 고흐는 살아생전 이렇다 할 '결과'를 자신의 눈으로 보지는 못한 사람이다. 그는 끝끝내 가난했고, 아팠고,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였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가 그린 그림의 가치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끊임없이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어 했고, 색채와 명암에 감동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고민하고 고뇌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을 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37p, 64p, 185p


 운동선수들은 힘써 노력하고 몸 바쳐 훈련한다. 그들은 자기의 종목을 사랑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때문에 메달과 관계없이, 그들의 열정과 과정은 눈물 나도록 눈부신 예술이었다. 아빠와 내가 스포츠 경기를 좋아했던 것은, 그들의 예술을 좋아했던 것이었다. 

 이세돌 9단 또한 바둑을 소중히 여기며(무려 '예술'이라며!) 무언가를 온전히 찾아낼 때까지 늘 노력하며, 아주 열중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감동하며 한 수, 한 수 두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그의 바둑을 그렇게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은 그게 예술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도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한동안 가만히 보고 있게 되듯.  


 논리적인 말로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는 있어도, 영혼을 울릴 수는 없다. 

 그들의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4국 / (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삶은 과정이다. 결과는 일부일 뿐.

 그러므로 거창한 목적은 없어도 된다. 꼭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된다. 이 세상은 그런 결과를 자꾸 내놓으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의미 없다. 그 과정을 사랑하고, 열의로써 대한다면 삶은 이미 예술이다.


 스포츠나 바둑, 그림뿐 아니라, 삶의 영역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밥을 해 먹는다고 해서 식당 주방장을 해야 하는 게 아니듯, 책을 읽는다고 해서 꼭 자격증을 따야 하는 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가치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 달걀프라이를 해 먹는 것, 강아지와 놀아주는 것, 책을 읽는 것, 스케줄을 정리하는 과정 속에 정성, 온유, 보람, 희생, 열망, 순수가 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예술이 되지는 않는다. 타성에 젖어 억지로 하는 일들은 무의미하다. 과정 속에서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한 감명을 느끼는지, 모든 것을 감수하더라도 사랑하고 싶은지를 알고 깊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79p

 이 과정에는 유행이나 비교가 아닌, '정직한 탐구'를 위한 부단한 고민과 고뇌가 필수적이다.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크고 작은 것들에 대하여. 이러한 것들이 쌓여 삶은 하나의 작품이 된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닌, 본인이 느끼기에 '정말 훌륭한 어떤 것'이 있는 작품. 


 나의 마음이 차오르고, 나의 세계가 풍요로워지길.

 나는 예술가가 되고, 내 삶은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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