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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Dec 27. 2019

할 일 없는 아침

아침을 일찍 시작하다 보니 


  나는 잠을 많이 자는 편이다. 권장 수면시간보다 더 자면 더 잤지, 덜 자는 법은 없다. 심지어 한 번 잠이 들면 깊이 잠이 드는 타입이라 자고 있을 때는 주위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잘 모른다. 10분~20분 정도 잠깐 잔다는 건 내 기준에선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밤을 꼬박 새우는 건 하겠는데, 밤에 아무리 일찍 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나에겐 참 힘든 일이다.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다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 올리기를 수 차례 하는 건 일상.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날 때'가 되어야만 이불속에서 빠져나왔기에, 나의 아침은 늘 분주했다. 아침은 나에게 늘 짧았다. 씻고 옷 입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으니, 아침밥은 사치였다. 학교를 다닐 때도, 회사를 다닐 때도 나에게 아침은 스쳐 지나가는 느낌으로만 존재했다.  


  그랬던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찍 눈이 떠진다. 무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물론, 따뜻한 이불속에서 몸을 일으켜 나오는 건 또 다른 미션이라, 나는 누운 채로 핸드폰을 잡아 들고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는데, 그렇게 1시간쯤(어떤 날은 2시간쯤) 지나면 그제야 알람이 울리고, 나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분주한 아침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쯤 보낸 것 같다. 


  대체 난 왜 이렇게 눈이 일찍 떠지는 걸까. 지금은 깊은 겨울이고, 밖은 아직 한참 캄캄한데, 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일찍 일어나게 하는 걸까. 처음 겪는 일에 나는 당황했다.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다. 밤을 새우다가 캄캄한 아침을 맞이한 적은 있어도, 자다 말고 일어나 캄캄한 아침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맞이한 건 처음이다. 

  노인들은 새벽잠이 없다는데 내가 나이 들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요즘 운동을 매일 하다 보니 몸이 바이오리듬을 찾아가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요즘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 건가... 하는 여러 생각을 하다가,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침을 일찍 시작한다는 건 하루를 길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니 아침 시간을 그냥 침대에서 보내지는 말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눈이 떠진 그 시간에 그냥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알람이 울리려면 아직도 1시간 반이나 남아있었다. 온 사방이 캄캄하고 조용한 그 시각. 집안에 불을 환하게 켰다. 같이 사는 치와와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하고 눈이 동그래져서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이제 무얼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세수를 하고 이불을 갰다. 따뜻한 물을 한 컵 마시고 치와와에게도 밥을 챙겨줬다. 치와와는 '무슨 아침을 이렇게 일찍 먹으란 말이냐'하는 얼굴로 나를 다시 한번 더 쳐다보다가 이내 밥그릇에 코를 들이박고 밥을 먹었다. 치와와가 밥을 먹는 동안 화분에 물을 줬다. 그리고 아침 스트레칭까지. 그런데도 아직 1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나는 멍하니 앉았다.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진 않았다. 별로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멍하니 그렇게 앉아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 어떤 동선이 효율적인지 계산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이 시간.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은 옛날 북아메리카에 살았던 인디언들의 연설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나는 요즘 그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이 얼마나 지혜롭고 용감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짓기도, 미소 짓기도 하며 큰 감명을 받고 있는데, 이 조용한 아침, 이 책에서 본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라코타 족은 날마다 태양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얼굴이 드러나 있든 구름에 가려져 있든 태양은 세상 만물에 빛을 가져다주는 감사한 존재이다. 일찍 일어나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인디언들의 습관이자 전통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침묵으로 서서 태양을 맞이했다. 무릎을 꿇거나, 기도를 하거나, 손을 올려 합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모두의 가슴속에서 태양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태양을 맞이하는 경건한 시간을 가질 뿐이었다. 홀로 있을 때도 라코타 족 사람들은 경건한 침묵의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다." (말과 침묵 中)


  '침묵의 순간'.


  나는 멍하니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고, 자연스럽게 나의 하나님을 생각했다. 딱히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렇지만 소원을 들어달라는 기도를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잘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고, 나의 삶이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 달라는 기도도 하지 않았다. 아무 기도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가만히 있는데, 왠지 울컥하면서, 이상하리만큼 차분해졌다.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구하지 않는 이 침묵의 순간.

  나는 분명 아무 기도도 하지 않고 있고, 어떤 계획도 하지 않는데, 온 몸과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혼자 있는데도 혼자 있는 게 아닌 것 같고, 굉장히 적막한데도 고독하지 않았다. 


   창밖이 점차 환해졌다. 날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고,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나에게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 하루를 품으려 내가 일찍 일어났나 보다. 이 '하루'라는 친구와 함께 오늘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의기양양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하루'는 누구에게나 다 낯설고 서먹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간 속에 들어가려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나는 이미 1시간여 동안 이 친구와 친밀해진 덕분에 오늘 하루를 미리 겁먹지 않고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정신없는 아침을 지내며, 용기를 낼 정신도 없이 그저 휘몰아치는 일과에 휘둘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하루다.)


  나는 계속 일찍 눈이 떠지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다만, 이제 나는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만지며 알람이 울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벌떡 일어나 잠깐의 집안일을 한 후 멍하니 앉는다. 별다른 어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어와 서술어가 갖추어진 문장으로 기도하지도 않고, 치와와에게 말을 걸지도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다. 그러다가 뜨거운 차가 마시고 싶으면 주전자에 물을 끓일 뿐. 나만의 이 '침묵의 순간'. 


  이런 할 일 없는 아침이라니. 늘 분주한 아침을 보냈던 나에게, 이런 할 일 없는 아침은 낯설지만 꽤 괜찮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온전히 살아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내 몸 안팎을 둘러싸는 느낌. 내 속에 원래 있던 힘과, 하루가 주는 힘이 함께 어우러지며 단단하게 나를 감싼다.  






  1시간쯤 지나면 알람이 울린다. 그러면 '아침'은 다시 '분주한 아침'이 되지만, 더 이상 그 전 같은 그런 분주함은 아니다. 나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아침식사를 차려 먹고, 꼼꼼히 옷을 골라 입는다. 빠트린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안에 불을 끄고 치와와에게 '다녀올게'하는 인사도 한다. 


 나에게 아침이 생겼다. 

 이 하루는 이미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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