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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Dec 30. 2019

저는 포크가 불편해요

자유롭게 먹는다는 것 


 파스타를 먹으러 가니 포크를 준다. 

 돈가스를 먹으러 가니 또 포크를 준다. 

 샐러드를 먹으러 가도 포크를 준다. 


 그게 싫어 나는 김치찌개나 순댓국을 먹으러 간다. 거기서는 젓가락을 주니까. 


 겉절이는 젓가락으로 먹고, 냉면과 우동은 젓가락으로 먹고, 삼겹살과 닭갈비도 젓가락으로 먹는데, 왜 샐러드, 파스타, 피자, 돈가스에는 포크를 주는 걸까. 먹는 문화가 달라서라고 하기엔, 여긴 우리나란데. 젓가락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나 외국인은 당연히 포크가 편하겠지만, 나는 포크가 불편하다. 나는 깎아놓은 사과를 먹을 때조차 포크가 불편하다. 


  포크의 기술은 한 가지로 집약된다. 찌르기. 한 번 찌르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원하는 곳에 다시 포크질을 하기 위해서는 찔러진 곳을 힘겹게 빼내어 다시 새로운 곳에 찌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오직 직선만 있는 포크질은 '먹는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과 한 조각을 먹을 때도 한 번 포크질을 했으면 그 포크질에 맞게 포크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차례로 먹고, 남은 부분을 조심스럽게 갉아먹어야 한다. 그렇다고 사과의 앞부분부터 차례차례 베어 먹으려고 사과의 맨 뒷부분을 포크로 찌르는 건 약간의 도박이 필요한 일이다. 너무 뒷부분을 찔러버리면 사과가 균형을 잃고 두 동강이 나버리니까. 

  사과 뿐 아니라,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 돈가스, 피자, 스테이크 등의 경우, 한번 찔러진 각도로 계속 먹어야 하니 한 입에 쏙 들어가는 방향과 각도를 맞추기가 어렵다. 포크를 돌려 잡고, 손목을 비틀어도 입 주변에 음식과 소스가 자꾸 묻는다. (나만 그런가...)


  포크질을 함에 있어 유일하게 다른 기술이 들어가는 분야는 '면'이다. 면을 먹을 때는 포크를 '찌르고' '돌려야' 하니까. 문제는 면마다 길이가 다 달라서 포크를 아무리 뱅뱅 돌려도 몇 가닥은 풀리기 마련이고, 그걸 입에 넣어 먹으려면 역시 국물과 소스가 입 주변에 질퍽질퍽 묻는다. 웬일로 포크에 면이 잘 감겼다 싶으면 입에 넣는 순간 또아리가 풀어지기도 하는데, 이때 다시 뱅뱅 감기는 귀찮아 그냥 후루룩 먹어버리면 그 소스가 옷과 얼굴에 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심지어 한 번 포크질을 할 때 적정한 양을 집어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너무 많이 찔러지면 곤혹스럽다. 뱅뱅 감으면 감을수록 또아리는 점점 커지니까. 그렇다고 한 가닥씩 먹자니 답답하다. 이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파스타를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나는 꼭 숟가락을 함께 쓴다. 면을 포크로 한번 집어 숟가락에 놓고 뱅뱅 돌려 얹어 먹으면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양을 가늠하기가 쉽고, 무엇보다 숟가락에 얹어 먹으면 한 입에 쏙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포크에 뱅뱅 감은 면을 숟가락에 올려 입에 넣는 과정에서 또아리가 풀려 후두둑 떨어져 버리면 나는 울고 싶어 진다. 


  포크를 사용할 때 내게 가장 어려운 음식은 샐러드다. 샐러드 속의 풀들은 이미 먹기 좋은 적당한 사이즈로 잘 잘라져 있는데도, 포크로 먹으면 그 '적당한 사이즈'가 무색해진다. 한 번에 풀 하나씩만 살살 골라 먹을 게 아니라면 적어도 2~3개 정도의 풀을 함께 찔러야 하는데, 각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없는 이 포크로는 여러 개의 풀을 가지런하게 찌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풀은 고기와 달라서 쉽게 찔리지 않고, 찔린다 하더라도 다시 떨어질 때가 많다. 나는 단지, 원하는 풀에 원하는 만큼 드레싱을 묻혀서, 원하는 만큼 먹고 싶을 뿐인데 포크로는 그게 너무 어렵다. 그래서 자꾸만 나는 힘을 쓴다. 그릇 바닥을 뚫을 듯이 있는 힘껏 포크로 풀을 찌른다. 그래도 풀은 잘 찔리지 않는다.

 양배추처럼 채 썰어진 풀은 포크로 찌르기가 더 어려워서 그냥 포크 위에 얹어서 먹기도 하는데, 포크 위에 얹힌 풀을 입 안에 넣기까지는 매우 조심하며 집중해야 한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툭 떨어져 버리니까.



  나는 포크로 음식을 먹을 때면 안간힘을 쓴다. 포크로 먹으면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가 젓가락을 손에 잡으면 나를 옥죄던 사슬이 탁 풀어지는 느낌이다. 이 두 개의 막대기만으로 나는 자유를 누린다. 


  젓가락으로는 무엇이든 '조절'할 수 있다. 음식을 집는 방향, 각도는 당연하고, 힘의 세기도 충분히 조절 가능해서 무거운 음식은 무겁게, 가벼운 음식은 헐겁게 집을 수 있다. 한가운데를 집을 수도 있고, 끄트머리를 집을 수도 있다. 젓가락으로는 집어낼 건지, 찌를 건지도 선택할 수 있다. 찌를 때는 젓가락 두 짝으로 한 번에 찌를 건지, 아니면 하나로만 찌르고 다른 하나로는 지탱을 하게 할 건지도 내 마음이다. 


  고기를 먹을 때, 한 번 집은 고기를 한입 베어 물고 잠시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을 때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 고기 위에 김치나 다른 반찬을 나란히 겹쳐 먹을 수도 있다. 가장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고기 덩어리 최적의 위치를 집고, 또 수정하는데 젓가락은 감히 포크와 비교할 수도 없는 용이함을 자랑한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먹고 싶은 음식 앞에 초라해지거나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면을 먹을 때면 내가 원하는 몇 개의 가닥을 선별해서 집은 후 돌돌 돌려 감아 먹든, 후루룩 면치기를 하며 먹든 오로지 나의 자유다. 어떻게 먹어도 국물이 튀지 않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건 젓가락이 주는 호사다. 과한 욕심으로 너무 많은 면을 집었을 경우, 중간에 면을 끊어 먹을 수도 있다. 만약 포크로 뱅뱅 돌려 먹다가 중간에 끊었으면 가닥가닥 떨어졌거나 온 사방에 흩뿌려졌을 수도...

 포크로는 밥을 퍼먹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젓가락으로는 문제없다. 쌈장이나 젓갈을 먹을 때도 포크는 못하는 일을 젓가락은 할 수 있다. 


  나의 젓가락질 스킬을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콩자반을 집을 때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깻잎장아찌를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젓가락이 주는 자유다. 내가 원하는 음식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는 이 자유로움.


  매일 음식을 먹는다. 나는 이 먹는 시간만큼은 안간힘 쓰지 않고 싶다. 이게 아니더라도 안간힘 써야 할 수많은 상황이 존재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세상을 살며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내 뜻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아닌 날도 많았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인생을 바라지만, 이것이야말로 실현 불가능한 꿈인 것 같다. 그렇다고 열심히 안 살 수도 없다는 것이 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딜레마다. 


  늘 이렇게 궁지에 몰린 우리지만,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시간만큼은 매일 선물처럼 허락된 소중한 자유의 시간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마음껏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취할 수 있다. 누구와도 같지 않게, 그러나 나에게는 가장 편리하게. 





 

  무언가를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는 것. 다만, 이것이 대책 없는 자유가 되지 않으려면 자율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자율성이란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거나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성질이나 특성'을 말한다. 즉,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더라도, 스스로의 원칙을 가지는 것이다. 내가 쏟고 싶은 열정을 가감 없이 쏟되, 스스로 망가지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 또는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사랑을 하더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선을 지켜 살피는 것이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면,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점은 바로 이 '자율성'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어린아이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그저 할 뿐이지만, 어른은 할 때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원칙 안에서 한다는 것. 어린아이가 자율성을 갖게 되면 어른으로 레벨업 된다. 


  자율성의 핵심은 '조절(control)'이다. 강해야 할 때는 강하게, 부드러워야 할 때는 부드럽게. 자율적인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전력투구하지 않는다. 단순히 힘이 센 것이 강함이 아님을 안다. 그런 식의 힘자랑은 레벨 업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힘과 지혜, 유연성, 사리분별, 그리고 대담함과 섬세함이 복합적으로 아우러지는 것이 '조절'이고, 그게 가능한 사람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젓가락질은 자율성의 꽃이다. 강함과 유연함이 동시에 있다.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젓가락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이미 스스로의 방법과 원칙이 존재한다. 포크로 사정없이 그릇 바닥을 내리찍는 것과는 다르다. 젓가락질은 힘이 필요한 곳에 적당한 힘을 줄 수 있게 하고, 섬세함이 필요한 곳에 적당한 섬세함을 줄 수 있게 한다. 온전히 내 의도와 내 의지만으로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 그래서 젓가락으로는 그릇 바닥을 내리찍지 않는다. 이미 얻어놓은 레벨을 굳이 다운시키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빵을 먹을 때도 포크를 준다. 

  몇 번 포크로 빵을 먹어봤는데, 역시나 안간힘을 쓰게 된다. 차라리 손을 깨끗이 씻고 손으로 먹는 게 편하고 자유롭다. 나는 적어도 먹을 때만큼은 나의 자유로움을 보장받고 싶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만큼, 자율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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