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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Jan 01. 2020

매일 중에 하루

나의 특별한 매일을 위하여 

 



 '모든 하루하루는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니, 우리는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가 우리 가족의 가풍이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날'을 굳이 '특별하게 기념'한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생일을 비롯한 각종 기념일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은 달력에 날짜를 기록해두고 서로 기억은 해주었다. 당일이 되면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딱히 특별한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 배달음식을 먹을 때도 있었고, 집 근처 음식점에 가서 먹을 때도 있었다. 그저 우리는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케익은 있을 때도 있었고 없을 때도 있었다. 내 생일날 아빠가 케익을 사오다가 떨어뜨려 케익이 엉망진창이 된 이후로 우리는 케익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아빠는 나에게 케익을 사주고 싶어했고, 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우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케익에 초를 꽂고 '생일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킥킥대며 웃었다. 

 이후 일주일 쯤 지나, 아빠가 또 케익을 사왔다. 그 날은 정말 아무 날도 아니었는데, 아빠는 케익을 사왔다. 무슨 케익을 또 사왔냐고 하는 나에게 아빠는 말했다. "생일에만 케익 먹으라는 법 없잖아? 우리 멀쩡한 케익 좀 먹어보자. 아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너 오늘 또 생일 해." 우리는 또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렀다. 케익을 잘라 먹으며 엄마는 계속(한두번이 아니고, 계속! 아주그냥 계속!!) 나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했고, 나는 대체 이놈의 생일은 언제 끝나는거냐며, 생일 좀 끝내달라며 울부짖었다. 우리는 그렇게 정신없이 웃었다. 


  우리는 선물도 주고받지 않았다. 나 또한 내 생일이라고 해서 벼르고 별러 생일 선물을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부모님께 말했고, 부모님은 그걸 적절한 때에 사주셨다. 

 딱 한 번,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아빠가 장미꽃 한 다발을 사 온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본 엄마와 나는(그리고 심지어 그걸 사 온 아빠까지도) 폭소를 터뜨렸다. 우리는 한참 깔깔대고 웃다가, 앞으로 이런 건 제발 기념일에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꽃을 받아 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 고맙긴 한데, 여보, 그동안 나를 매일 사랑해왔잖아. 오늘만 사랑하고 말 거 아니잖아."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알지. 그냥 한 번 해봤어. 이제 우리는 장미꽃을 보면 오늘을 떠올리면서 또 엄청 웃을 거 아냐. 케익을 보면 우리가 실실 웃는 것처럼. 우리끼리의 웃음 포인트지."


 명절이나 공휴일도 우리 가족에겐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설이든 추석이든, 우리는 꼭 '그 날' 친척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대신 평상시에 시간 날 때 틈틈이 찾아뵙고 밥을 먹었다. 그리운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은 명절에만 생겼다 사라지는 게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그리운 마음이 들면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물었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만나러 갔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한 번도 명절 교통대란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우리에게 '빨간 날'은 도심이 매우 한가 해지는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한강 드라이브를 하거나, 서울 한복판(원래는 가장 붐비는 곳들)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살아왔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큰 감흥이 없다. 밤 12시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가 쏟아지고, 보신각 타종행사에 참여하거나 새해 일출을 보는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어제'와 '오늘'일뿐. 

 



 매일의 일정한 루틴을 정해 나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 매일 운동하기, 매일 청소하기, 매일 책 읽고 글 쓰기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매일'에 있다. '매일'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정말 하기 싫은 날이 있기 때문이다. 전날 무리되는 스케줄이 있었거나, 날씨가 흐리거나, 내 컨디션이 괜히 안 좋으면 '오늘은 그냥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러면 '하루쯤 안 하면 어때. 어차피 매일 하는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내 안의 자아와 싸우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매일' 할 수 있었던 것은 '조금씩이라도'라는 타협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매일 운동을 '조금씩이라도'하고, 청소를 '조금씩이라도' 하고, 책을 '조금씩이라도' 읽고, 글을 '조금씩이라도' 쓰기. 이 '조금씩'은 '정말 조금'일 때도 있다. 운동 5분, 청소는 책상 위 걸레질만, 책 1페이지, 글 한 줄.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매일' 하는 것이니까. 

 

 '매일 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고비가 많이 찾아온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면 '조금씩이라도'의 타협안을 적극 활용해도 나쁠 게 없지만, 몇 날 며칠 연달아 의욕이 없는 경우가 문제다. 이런 경우, 시간의 흐름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로는 의욕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사그라들 뿐. 그러다 보면 '내가 언제 그런 걸 했던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겠지.

 의욕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의지를 다시 부여잡고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라고 화이팅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심삼일(日)' 방법은 꽤 매력적이다. 한 번 마음을 먹으면 3일은 간다고 가정할 때, 3일마다 새롭게 마음을 부여잡는 방법이다. 즉, 3일마다 의지를 다잡으며 의욕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3일 단위로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고 달력에 표시해놓고 노력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심삼일'을 두어달 쯤 진행하다 보면 또 슬슬 슬럼프가 온다. '작심삼일'을 한 번 두 번 건너뛴다든지, 아니면 '다시 시작하는 날'만 하고 이틀은 안하든지.  


 고비와 슬럼프를 넘으려면 결국 필요한 것은 동기다. '하기로 한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 내가 성공했을 경우 그릴 수 있는 상상 속의 내 모습, 혹은 (다른 사람이랑 함께 도전한 경우)상이나 벌칙 같은 것도 동기가 될 수 있다. 가장 큰 자극이 되는 건 주위 사람의 성공 여부인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이 해내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의욕이 들끓기 시작하니까. 

 그런 관점에서 '첫날'은 꽤 훌륭한 동기가 된다. 한 달의 첫날, 일 년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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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1월 셋째 주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처음 만난 트레이너가 나를 보고 의아해했다. "보통은 12월 첫 주부터 시작하시는데요.. 아니, 사실 거의 대부분은 1월부터 시작하시죠." 나는 내가 살아온 가족 분위기에 대해 설명하려다가 너무 장황해질 것 같아 그냥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어차피 할 거니까요. 빨리 하는 게 좋죠." 


 한 달의 첫날이든, 일 년의 첫날이든, 그런 건 나에게 의미 없다. 첫날은 매일 중의 하루일 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그 하루가 모인 '매일'이다. '특별한 단 하루'보다 '매일을 특별하게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컨디션 난조와 끈기 부족이라는 고비를 넘을 때 '첫날'은 꽤 도움이 된다. 자기와의 타협이든 작심삼일이든 더이상 통하지 않을 때 '첫날'은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어준다. 매일 하는 운동이 지루해질 즈음, 매일 하는 청소가 귀찮아질 즈음, 첫날은 의욕을 다시 만들어주는 훌륭한 동기가 된다. 


 1월 1일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1월 1일을 기점으로 많은 일들을 시작한다. 금주, 금연, 운동, 자격증, 독서, 영어공부 등. 물론, 나에게는 1월 1일이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 어제가 지나고 오늘이 온 것 외에는 큰 의미는 없다. 다만, 1월 1일은 나에게 '매일의 일정한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작은 화이팅을 주었다. 


 나는 오늘도 운동하고 청소했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언제나처럼, 특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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