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안 되는 걸까요?"
세상을 살다 보면 별별 어려움을 다 겪는다지만, 특히 답답해지고 침울해지는 어려움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인 것 같다. 인생에서 그런 격한 어려움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시기는 아마 고3이 아닐까 싶다.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갈 수 있는 대학이 있긴 한 건지, 전공은 뭘 해야 하는 것인지, 이 모든 게 가능할지 가능하지 않을지 그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시기.
내 기억을 떠올려보면 고2 때까지는 그래도 나름의 희망과 열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3이 되고부터는 하루하루 희망 수치가 뚝뚝 떨어져 내려가고, 열정은 커녕 억지 열심도 낼 수 없을 정도의 어둠 속에서 살아갔던 것 같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느낀 격정적 우울함이었다.
그와 비슷한 기분은 이십 대 중반에 한 번 더 찾아온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취업준비생 시기. 당시의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지도 않아서, 도망치듯이 해외로 인턴십을 나갔는데, 그 당시 내 또래의 선배, 후배,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준비생이 되어 또다시 하루하루 희망 수치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억지 열심도 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숨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력서를 몇십 군데도 넣었는데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최종면접만 수십 번을 봤다는 이야기, 하반기에는 채용인원이 줄어들 거라는 이야기...
서울 소재의 충분히 좋은 학교, 좋은 성적,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 스펙임에도 그들의 '취준생 시기'는 끝나지 않았다. 6개월, 1년, 2년... 그러는 사이 고시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의 상황이 더 힘든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기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
'기약 없음',
'보장되지 않는 미래',
'이미 꽤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 현실에 대한 좌절'.
삼십 대 중반이 되고 보니, 그때 그토록 힘들어하던 친구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때 합격이 되기도 했고, 포기를 하기도 했고,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또 다른 인생의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3도, 기약 없던 취준생 시기도, 아무튼 다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사회에는 또 다른 고3과 취준생이 존재한다.
친한 후배가 상반기 50군데, 하반기 50군데에 이력서를 넣고 지원했는데 1차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하소연을 한참 듣고 있다가,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 졌다.
"자기의 '때'가 있는 것 같아. 사람에 따라서 조금 일찍 그 '때'를 만날 수도 있고, 조금 늦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 '때'는 분명히 있어. 너는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아니야. 네가 열심히 준비한 건 나도 알고, 무엇보다 너 스스로 제일 잘 알잖아. 다만 너는 아직 그 '때'를 못 만났을 뿐이야. 난 너에게도 너의 '때'가 곧 올 거라고 믿어. 당장은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너무 멀리 있지 않기를 바랄게. 지금은 배부른 소리라고 느껴지겠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날이 올 거야."
나는 지난 삼십여 년간, 학교 체육시간에 운동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인생에는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분들이었다. 새벽마다 김밥을 싸들고 북한산에 올라 다닐 정도였으니까. 또 일주일에 최소 2~3번은 배드민턴을 치러 가셨는데, 그렇게 20년을 넘도록 배드민턴을 쳤으니, 그 근방에서는 가장 잘 치는 편에 속했다.
그런 분들이셨으니, 내가 공부를 한답시고 앉아만 있는 걸 부모님은 내내 걱정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고2, 고3을 보내면서 허리 통증을 달고 살았다.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전전하며 물리치료를 받고 침을 맞았으나, 사실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조금씩이라도 걸으라고 했다. 계속 앉아만 있어서 (그것도 바르지 못한 자세로) 허리에 무리가 가는 것이라면서.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나를 어떻게든 운동시키려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내 손을 잡아 이끌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올랐고, 방학 때면 아침에 나를 일찍 깨워 내 손을 잡고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씩 걸었다.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불러내서는 1시간 동안 시장을 걸어 다니게 한 적도 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북한산에 나를 끌고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모든 걷는 시간이 고역이었다. 안 하면 엄마가 화를 내니까, 엄마가 큰 소리를 낼 테니까 억지로 억지로 나는 엄마 말에 따랐을 뿐.
그랬던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렇게 맞이한 스물여섯 살의 가을.
아빠는 막중한 책임감을 물려받은 듯, 나를 데리고 배드민턴 샵에 가더니 가장 좋은 운동복과 신발, 라켓, 가방을 사주었다. 그리고는 배드민턴 레슨을 등록해주면서 나에게 배드민턴을 쳐보라고 했다. 나는 또 억지로 억지로 일주일에 두어 번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레슨 등록해놓은 게 아까워서 레슨 받는 시간에만 간신히 갔다. 그 사실을 눈치챈 아빠는 레슨 없는 날을 골라 아무 의욕 없는 초보인 나를 데리고 가서 배드민턴을 쳐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헬스장을 등록하고 와서는 운동하는 걸 좀 도와달라면서 같이 다니자고 하지를 않나, 새벽 5시에 갑자기 깨우더니 아직 어둑어둑한 바깥에 혼자 다니기 무섭다며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달라고 하지를 않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도 일하느라 피곤하는데 굳이 나를 데리고 운동을 다니기 위해 여러모로 고민해보고 시간을 쪼개 애썼던 것 같다.
내 부모님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을 만큼 의지가 없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고, 내 허리는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심하게 아파왔으니까. 세수하려면 허리를 굽혀야 하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 세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지경인데도 나는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 한 번씩 다 해본다는 다이어트에서조차 나는 운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굶으면 굶었지, 운동은 안 한다'가 내 의지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 '매일 운동하기'를 1년째 하고 있다. 운동을 전혀 안 하던 사람이 '매일 운동하기'를 하려면 꽤 심각한 수준의 동기가 있어야 하고, 악착같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살기 위해'라는 동기가 있었고, '이걸 안 하면 난 끝이다'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운동의 종류와 강도,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매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게 '운동'이란 것을 내 삶에 들여놓은 지 이제 1년이 되었다. 1년 전에 힘들다고 느꼈던 운동의 정도와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운동의 정도는 꽤 차이가 난다. 운동의 강도, 시간 등 모든 면에서 나는 그때보다 지금 힘이 세졌고, 지구력이 강해졌으며, 빨라졌고, 무엇보다 건강해졌다.
요즘은 코로나 문제로 온 사회가 어수선해서 운동하기도 참 어려운 시국이 되었는데, 모든 체육관이 다 문을 닫은 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간 동안에도 나는 집에서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고 제자리 뛰기를 하며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 (물론 성에는 안 찬다. 나는 좀 더 무거운 덤벨과 바벨을 들어 올리고 싶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싶다.)
그러면서 브런치에도 이미 몇 편의 글을 통해 내가 운동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적어놓았는데, 한 분이 이런 피드백을 주셨다. 자기도 운동에 대한 의지를 갖고 싶다면서, 의지 좀 어디 파는데 없냐고. '운동에 대한 의지'라는 말에서 지나간 많은 시간들이 떠올랐고,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글을 남겨드렸다.
"저도 의지를 그렇게 사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마다 자기만의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저의 인생 중에서 마침 지금 이때를 만나 의지도 생기고 실행력도 생긴 느낌이에요. 간절히 바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면 작가님의 때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각자의 '때'가 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0교시를 하고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는데, 그게 끝나면 수학 학원에 가서 새벽 1시까지 또 공부를 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잠깐씩 잠을 잔 것 외에는 수업시간에는 단 한 번도 졸지 않았다. 내가 공부에 평생 쏟을 에너지를 그때 다 쏟은 기분이다.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도) 그때처럼은 못 한다. 앞으로도 못 할 것 같다. 그때만큼의 의욕이 올라오지도 않고, 그럴 열심을 내고 싶지도 않다. 그때가 나의 '공부의 때'였다.
최근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도 공부를 안 했는데, 요즘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보면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는 왜 그렇게 공부가 재미가 없었는지 모르겠다면서. 나는 그 친구에게 '지금이 너의 공부의 때인 것 같다'라고 말해주었다.
각자의 '때'가 있다.
누구와도 같지 않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때.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하고, 몇 살에 얼마만큼 해놓아야 한다는 기준은 무의미하다. 나이를 먹는 것과는 별개로, 인생의 여러 분야에 있어서 만나게 되는 각자의 '때'가 분명히 존재한다.
의지가 솟구치고 의욕이 물밀듯 일어나는 그런 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고 싶다'와 '해야 한다'가 치밀어 오르는 그런 때. 막상 발걸음을 떼면 신기하게도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그런 때. 본인만 아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온몸을 차오르게 하는 그런 때.
그리고 그런 때, 그런 나의 열정을 온 세상이 열렬히 지지해준다. 지나가는 강아지의 눈빛이 나를 격려하고, 솟아오르는 봄꽃들이 나를 응원한다. 발에 밟히는 흙이, 뺨을 스치는 바람이, 속눈썹에 내려앉는 햇볕이 나를 독려한다.
분명, 그런 때가 있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이 아닐 거예요.
그 정도면 충분히 열심히 했잖아요.
안 되는 것은 없어요. 지금이 그때가 아닐 뿐.
안 되는 사람은 없어요.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
우리는 건강하게 삶을 꾸려나가기만 하면 돼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