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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pr 14. 2020

주는 것만 사랑이 아니야.
받는 것도 사랑이야.


  우리 엄마는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우리 엄마를 충청도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것이, 엄마는 10살 때 서울로 올라와서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한 번도 충청도 사투리를 쓴 적도 없고, 충청도의 동네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그래서 아빠와 나는 평소에는 충청도의 느낌을 잘 못 느끼고 살다가, 한 번씩 엄마 친정에 함께 갈 때에야 충청도의 느낌을 강렬하게 받고는 했다. 


  우리는 1년에 한두 번 충청도에 갔다. 나도 아빠도 서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골다운 시골은 엄마의 친정뿐이었다. 갈 때마다 우리는 어떤 선물을 사들고 가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엄마는 뭘 그렇게 유난이냐고 했지만, 우리는 진지했다. 그냥 선물세트를 사가는 건 성의 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따로 구입해 손수 포장을 하자니 그건 또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았다.

  고르고 고른 선물들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갈 때면 우리는 괜히 뿌듯했다. 과일박스를 하나 사더라도 우리는 가장 좋은 걸로, 포장도 가장 예쁜 걸로 골랐으니까. 


  그렇게 시골에 도착하면 온통 흙으로 가득한 땅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소와 닭 냄새가 코로 쑥 들어왔다. 차에서 내리는 동시에 우리의 신발에는 흙먼지가(때로는 진흙이) 덕지덕지 묻었다. 이미 자동차의 바퀴는 검은색이 아니라 황토색이 되어있었다. 누렁이와 점돌이가 저 멀리서부터 짖으면서 달려와서는 반갑다며 점프하며 앞발을 내 몸에 갖다 대었고 내 손은 곧 침범벅이 되었다. 엄마는 안절부절못했다.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성큼성큼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선물들을 받은 시골분들은 이렇게 말했다. "뭘 이런 걸 사왔슈." 옆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이런 거 먹지도 않으유." 마지막 한 마디는 쐐기를 박는 말이었다. "다음부터는 쓸데없이 이런 거 사 오지 마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집에 가자마자 씻고, 옷을 다 세탁하고, 차를 세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밖에만 닦을게 아니라 안에도 흙투성이라면서, 돈을 좀 써서라도 내부 세차까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아마 냄새도 날 테니 차 문을 활짝 열고 환기도 한참 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먼지 좀 묻으면 어떻고 냄새 좀 나면 어때. 내가 신경 쓰이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분명 시골에서는 며칠 전부터 장보고 준비하고 청소했겠지. 난 그 사랑을 충분히 다 받았어. 근데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우리가 그분들에게 주는 사랑을 그분들이 충분히 받지 않은 느낌이라서 그래.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신경 써서 준비해 갔는데... 

  아마 그분들은 우리에게 부담 가지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냥 아무 때나 편하게 다녀가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거였겠지만,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히 마음이 좀 그렇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해보니, 시골에서 보낸 시간들 중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과자를 좋아한다. 마트에서 파는 과자들. 달고 부드럽거나, 짭짤하고 고소하고, 얇고 바삭한 그런 과자를 좋아한다. 특히 몽쉘과 오사쯔를 좋아한다.  


  시골 어른들은 나에게 몽쉘을 주지 않았다. 늘 센베이를 주셨다. 차라리 새우깡이나 꿀꽈배기를 줬으면 좋겠는데, 늘 센베이였다. 두껍고 딱딱하고 큰, 그런 센베이. 

  한 입에 들어가지 않는 그런 큰 과자들은 한 입 깨물고 나면 부스러기가 온 사방에 떨어졌고, 입 속에서도 한참을 으드득으드득 씹어야 했다. 그 특유의 김가루와 깨가 주는 특유의 시골맛도 그렇고, 무엇보다 자꾸 이빨에 끼는 게 나는 싫었다.


  센베이가 담긴 접시 옆에는 옛날 강정과 조청유과 같은 것들도 함께 자리 잡고 있었는데, 강정은 더 두껍고 더 딱딱했고 더 커서 힘겹게 씹고 나면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고, 유과는 찐득찐득한 게 입에 자꾸 들러붙었다. 어른들은 자꾸 맛있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이 과자들을 먹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과자들이 힘겨웠다. 




  한 번은 그렇게 과자와의 사투를 벌인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아빠가 그 과자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까 그 과자 어땠어?" 나는 내 입맛에는 그 과자가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심지어 먹기도 불편하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아빠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아빠도 그래. 아빠도 그 과자는 별로야."


  나는 아빠가 그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 그곳에서 아빠는 접시에 담긴 그 과자들을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주 맛있다며, 어디서 이런 과자를 사 오셨냐며, 이 동네는 이런 것도 다 파는 걸 보니 너무 좋은 동네인 것 같다며. 


  그러고 보니 아빠는 나와 입맛이 똑같은 사람이었다. 아빠는 몽쉘을 좋아했고, 내가 처음 오사쯔를 사 왔을 때 인생 과자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아빠가 센베이와 옛날 강정과 조청유과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아빠는 말했다. 

  "딸, 그분들은 평소에는 그 과자를 먹지 않아. 아까 새로 뜯은 과자 봉지들이 부엌에 있는 거 봤어? 우리가 온다니까 일부러 읍내에 있는 시장에 나가서 그 과자들을 사 온 거야. 아까 과자 담은 접시 봤지? 종류별로, 줄 맞춰서 가지런하게 과자를 세팅했잖아. 시장에서 과자를 살 때부터 과자를 접시에 담을 때까지 고민했다는 거야. 우리가 어떤 과자를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산거고,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보이려고 봉지째 갖다 주지 않고 접시에 과자를 옮겨 담았어. 그것도 하나하나 신경 써서 가지런하게. 

  딸, 이건 사랑이야. 사랑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할 수가 없어. 그분들은 우리를 사랑한 거야. 사랑하는 마음에 뭐라도 더 주고 싶었고, 어떻게든 제대로, 잘 주고 싶었던 거야. 그 과자를 주면서 그분들은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거지. 그러면 우리도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딸, 주는 것만 사랑이 아니야. 받는 것도 사랑이야. 잘 받을 줄 알아야 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잘 받으면서 그분들을 사랑하는 거야. 이게 우리의 사랑의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어."






  혼자 살게 되면서, 보통 한 달에 한 번, 혹은 2~3주에 한 번 고모댁에 간다. 가서 하는 일은 딱히 없다. 고모가 차려준 밥을 먹고, 고모가 준비해놓은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사탕 같은 후식을 먹고, 같이 tv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오는 게 전부다. 

  내가 고모댁에 도착해서 그 집을 나오기까지는 보통 2~3시간 정도. 그 시간을 고모는 무척 좋아하셔서 항상 나에게 "밥 또 언제 먹으러 올 거야?"라고 나에게 연락하시곤 한다. 


  고모가 차려준 밥상에는 대충이 없다. 언뜻 봐도 준비하는데 1박 2일은 걸렸을 법한 음식들이다. 고모는 새김치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내가 갈 때마다 김치를 새로 담그시는데, 아무리 한두 포기씩만 담근다고 해도 배추를 씻고 손질하고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무치는 일은 보통 손이 가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가끔 부담스럽다. 

  김치가 그 정도인데 다른 음식들은 오죽할까. 음식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인지 내가 모르면 몰랐어도 알고는 그냥 먹을 수가 없을 정도다. 잡채와 온갖 전을 비롯해, 불고기와 갈비는 직접 만든 양념장으로 재워놓았었고, 콩비지찌개는 고르고 고른 국내산 콩을 직접 갈아 만들었다. 시금치무침이나 가지무침, 무생채, 오뎅볶음, 오이무침과 같은 밑반찬들은 공교롭게도 다 새로 만든 반찬들이다. ('공교롭게도'라고 한 것은, 고모가 반찬통에 있던걸 그냥 꺼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 그 반찬통에 들어간 건 불과 30분 전이었겠지.) 


  나는 고모가 차려주는 밥상을 '열심히' '잘' 먹는다. 나는 고모가 주는 사랑을 최선을 다해 받는다. 내가 고모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나를 향한 고모의 사랑은 넘치고 넘친다. 


  그런데 내가 잘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고모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는 신나 하며 냉장고와 찬장, 창고를 뒤져가며 나에게 무언가를 가져온다. 해외직구로 영양제를 구입하는 고모는 나에게도 먹으라며 이런저런 영양제를 주면서 해외직구 사이트에서 판매 1위라는 손소독제와 초콜릿, 사탕 그리고 그 외 온갖 것들도 나에게 안겨준다. 

  별별 것들을 나에게 주면서 하는 말들은 주로 이런 말들이다. "너 혹시 이런 거 필요하지 않니?", "보니까 이게 제일 좋은 거더라. 너 한 번 써봐.", "이번에 홈쇼핑에서 주문했는데 먹어보니 맛있더라. 딱 네가 좋아할 맛이야." 


  이 어마어마한 사랑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으로 받는다. "완전 필요했어요! 저 이거 필요했던 거 어떻게 아셨어요?", "우와, 이거 진짜 부드러운데요? 이렇게 부드러운 거 찾기 힘든데!", "이거 딱 제 스타일이에요! 적당히 달고 짜고 약간 매콤한 게 너무 맛있어요!"


  그리고 그 엄청난 밥을 먹은 지 한두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고모는 또 사랑이 넘쳐서는 "치킨 먹을래? 치킨 시켜줄까?"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화들짝 놀라 이제 정말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주섬주섬 겉옷을 챙기면서 현관문 입구를 보면 거기에는 한 가득 짐이 쌓여있다. 나에게 준 고모의 온갖 것들, 아니, 사랑이다. 새로 담근 김치와, 잊어먹고 밥상에 올려놓지 않았던 마른반찬들, 초콜릿과 과자, 물티슈, 행주, 통조림, 대파, 감자, 양파, 율무차, 김, 만두...


  집에 와서 그 짐들을 풀고 정리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린다. 덕분에 우리 집 찬장과 냉장고에는 고모가 준 사랑들이 가득하다. 나는 매일매일 고모의 사랑을 만난다. 

  정리가 끝나면 나는 고모에게 전화를 한다. "고모! 근데요, 김치 진짜 맛있어요.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그 통조림은 어디서 산거예요? 우리 동네 마트에는 안 팔던데!", "감자는 시골에서 온 감자예요? 소금이나 설탕 안 찍고 그냥 대충 쪄먹어도 맛있네요!" 


  나는 이토록 고모를 사랑한다. 




  이게 나의 사랑의 방식이다. 

  아빠가 알려준 우리의 사랑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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