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의도된 것이었다.
만들어진 모든 것은 만든 이의 정성이 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음식 하나를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고 놀라게 된다. 요리를 하지 않았던 전에는 전혀 몰랐던 것들이다. 먹는 시간은 기껏해야 10분~20분인데, 그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요리를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나는 엄마가 해준 잡채를 좋아해서 종종 엄마에게 잡채를 해달라고 하곤 했는데, 엄마는 그걸 왜 당장 안 해주고 다음다음날쯤 해주었는지를 알게 된 것도 내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부터다.
음식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재료를 구입해야 한다. 시장에 갈 것인지, 마트에 갈 것인지부터 결정을 해야 하고, 재료를 파는 장소에 가서도 수많은 시금치와 양파 중에서 상태가 좋고 윤이 나 보이는 것을 골라야 한다. (가격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시금치 가격이 폭등해서 시금(金)치가 되면 집어 든 시금치를 조용히 내려놓기도 한다.)
음식 하나에 들어가는 재료는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최소 4~5개 정도의 재료(그리고 양념)가 필요하다. 파, 양파, 마늘, 그리고 주재료. 만약 잡채를 만들려고 한다면 시금치, 당근, 양파, 당면, 버섯, 돼지고기 등이 필요하다. 필요한 건 고작 한 개씩이지만 이러한 재료는 절대 '한 개'씩만 팔지 않아서, 시금치 한 단과 당근 한 묶음, 양파 한 망, 당면 한 봉지, 버섯 한 바구니, 돼지고기 한 근을 사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을 사서 양 손에 들면 이미 그 부피와 무게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우리 엄마의 잡채는 여기에 목이버섯과 피망 같은 이런저런 다른 야채도 있는 잡채였으니... 장을 볼 때마다 엄마는 아빠나 나에게 항상 전화해서 당장 와서 짐 좀 들어달라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장을 봐서 집에 돌아오면 이제 재료 손질의 늪에 들어가야 한다. 돼지고기는 양념을 해서 조물조물해놓고, 다른 야채들을 깨끗하게 씻어서 헹궈서 다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나면 재료는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그러는 사이 가스불을 켜서 물을 팔팔 끓여 당면을 삶아야 하는데, 너무 오래 삶으면 면이 너무 퍼지니 타이머를 맞춰놓고 딱 맞춰 삶아야 한다. 타이머가 울리면 채에 받쳐 뜨거운 물을 버리고 차가운 물로 면을 헹궈줘야 면이 탱탱해진다고 엄마는 말했다.
당면의 물기가 빠지는 사이에 다시 가스불로 돌아와서 손질해 놓은 야채와 고기를 볶아야 하는데, 한 번에 프라이팬에 다 넣고 볶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재료별로 따로따로 볶아야 한다. 식용유 두른 프라이팬에 재료를 넣고 소금 간 살짝 해서 볶는 걸 몇 번을 반복하는 동안, 옆 가스불에서는 시금치를 데쳐야 하고, 데친 시금치는 또 차가운 물에 살짝 헹궈야 싱싱한 느낌을 더할 수 있다. 그렇게 야채들이 준비 완료되면 이제 다시 물기 빠진 당면에 양념을 더해 살짝 볶아내야 하는데 그러면 그제서야 정말 모든 재료가 다 준비된 상태가 된다.
그렇게 삶고, 데치고, 볶은 재료들을 이제 큰 양푼에 한 번에 넣고 양념을 더해 골고루 섞어주어야 드디어 잡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고민의 과정과 과감한 결단들이 모여야 음식 하나가 만들어진다. 이 모든 정성을 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엄마는 오늘 저녁이 아닌, 다음다음날 잡채를 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야채를 그렇게도 안 먹었다. 찌개를 먹어도 고기는 건져먹고 국물은 떠먹는데, 그 외에 다른 건더기는 다 남겼다. 그래서 내 국그릇은 항상 파가 무더기로 남아있곤 했다. 된장찌개를 다 먹고 나면 양파 무더기가, 닭볶음탕을 다 먹고 나면 당근 무더기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삼겹살 먹을 때 양파 구워 먹는 건 좋아했고, 김밥에는 꼭 당근이 들어가야 한다고 여겼다. 야채를 무조건 싫어했다고 하기엔 나는 김치찌개를 좋아해서 그 속에 들어간 김치를 다 건져먹었고, 계란말이에 파가 들어가는 게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는 엄마의 잡채에 들어간 야채는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런 걸 보면 내가 야채를 무조건 싫어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소위 '메인'이 아닌 부수적인 다른 재료들을 중요시하지 않았을 뿐.
그런 부수적인 야채를 먹기 시작한 건 본격적으로 내가 직접 요리를 해서 먹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요리 책, 블로그, 유튜브 등을 참고하여 먹고 싶은 요리를 하나씩 해 먹으면서 이제 9년째 요리를 하고 있다. 이제는 먹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웬만큼 해서 먹을 수 있는 대범함이 생겼다. 그러면서 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료 손질의 수고'나 '맛있는 양념을 만들기 위한 고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냥 먹지 않게 되었다. 그 속에 들어간 하나하나의 야채와 고기들을 손질하고 간이 배게 하려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어쩌다 볶음 요리 속에 하트 모양의 당근이라도 발견할 때면 가슴이 아렸다. 이걸 굳이 하트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근이 하트 모양이면 너무 좋겠다는 아이디어와, 애써 손질하는 정성이 추가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음식에 들어간 부수적인 재료들도 가능한 남기지 않고 먹으며 맛의 조화를 느끼려 하고 있다. 어떤 재료를 어떤 양념으로 만들지는 순전히 만드는 이의 몫이다. 만드는 이는 재료 선별부터 손질, 플레이팅까지 의도하고 계획하여 만들어낸다. 짠맛과 단맛의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할지, 채소는 살짝만 익힐지 푹 익힐지 같은 것 까지도. 만드는 이의 이러한 계획은 정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정성은 열정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래서 정말 싹싹 먹은 후 그릇을 보면 기분이 꽤 괜찮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든 이의 마음을 받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잡채를 만들기 위해 엄마는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싸고 싱싱한 야채를 쓰려면 어느 요일에 어느 시장에 가야 하는지. 어떤 재료를 추가하면 더 건강하고 맛있는 잡채가 될 수 있는지. 재료를 다듬고 볶고 끓이는 순서는 어떻게 할 건지. 양념장은 어떤 조합으로 만들 건지. 깨는 양념장에 섞을 건지 마지막에 뿌릴 건지. 남은 시금치로는 시금칫국을 끓일 건지 시금치나물을 무칠 건지.
모든 것은 의도된 것이었다.
아마도 사랑이었을, 엄마의 마음.
그러니 엄마의 잡채를 좋아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