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Apr 26. 2020

순조로울 운명



  나는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좀 그런 편이어서, 손에 쥔 물건도 웬만해선 땅에 떨어뜨리지 않다 보니, 핸드폰 액정 한 번 깨뜨린 적 없다. 그러다 보니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도 한 번 두 번 생각해보고 실행에 옮기는 게 당연한 사람인데, 정말 가끔, 어쩌다가 불쑥 튀어나온 말 때문에 곤란해지면 두고두고 후회하며 이불을 걷어차곤 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인생의 덩어리들이나 사람들이 다가오면, 나는 늘 '조심스러워서' 그 어떤 경우에도 한 번에 마음을 활짝 여는 일도, 모든 것을 한 번에 확 받아들이는 일도 없었다. 나는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세심하게 관찰하며 세상과 사람을 대했다. 


  그렇게 내가 알아서 정도껏 '조심스럽게' 대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큰 무리 없이 나를 다음 스테이지로 이끌고 갔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고민 없이, 큰 떨림 없이 흘러왔던 것 같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라는 생각으로 넣었던 지원서와 서류들이 '합격'하면 나는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나의 인생은 꽤나 순조로웠다. 내 인생은 물 흘러가듯 흐르는 인생이었다. 흘러가게 하는 분이 흘러가게 하시는 대로 나는 그저 흘러갈 뿐이었다. 



  흘러가다가 문득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정해지면, 나는 그곳에서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한 누구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잠을 좀 못 자는 것이나 몸이 조금 피곤한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공부할 때 온 에너지를 쏟아 공부했고, 일할 때는 또 온 에너지를 쏟아 일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애써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만나다가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면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매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뜬금없이 보름달 사진을 찍어 보내주며 '오늘 달 예쁘네'라는 메시지를 보내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들이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고, 사람마다의 사소한 취향이나 습관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해 두었다. 얕고 넓은 인간관계보다는 좁더라도 소중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쏟았다. 


  흘러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의 인생 스타일에 따라, 나는 내 인생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다들 향후 5년 계획, 10년 계획, 20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들 했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의미가 없었다. 나는 딱히 사고를 치는 스타일도 아니고 탈선이나 일탈을 즐기는 성향도 아니어서, 이대로 지금처럼 적당히 조심스럽게, 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보면 내 이 흘러가는 인생은 순조로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는 중에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만하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잘 견디며 하나씩 헤쳐 나왔다.) 


  흔히들 말하는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그런 뜻인 줄 알았다.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사는 것. 




  그러다가 모든 에너지가 바닥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공기마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그런 시기를 맞이했다. 한동안 나는 그 시기에 갇혀 지냈다. 외부적으로는 온갖 일들과 온갖 사람들이 나를 덮쳐오고, 내부적으로는 손가락 움직이는 것도 너무 힘들고 숨 쉬는 것마저 대단한 일처럼 느껴지는 그런 시기. 한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 '이대로는 정말 큰일 난다'는 절박함이 온몸을 감쌌다. 


  그때가 내 인생 처음으로 '전격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기 시작한 때다. '전격적'이었다. 조심스러웠으나 과감했고, 화끈해야 했으나 충동적이지는 않은, 즉, 제대로 계획하고 힘써 용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때. 흐름에 맡겨둔 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때였다. 나는 전격적으로 일을 그만두었고, 전격적으로 집을 이사했으며, 전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모든 것은 나의 의지와 나의 계획이었다. 

  그 과정은, 정말이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이 눈 뜨기 힘든 외로움과 주저앉고만 싶은 괴로움으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움직여야 했다. 나는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를 박박 긁어모아 결정하고 움직여나갔다. 


  그러는 동안 자꾸 내 주변에 맴도는 말이 있었다. 아빠의 말이었다. 


  "기도하면서 결정해."


  아빠의 마지막을 보기 한 달쯤 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세상의 모든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아빠는 문득 숨을 고르고 이 말을 했다. "기도하면서 결정해." 

  아빠가 이 말을 한 지 2년이 지나고 있지만, 나는 이 말이 맴돌 때마다 아빠가 또 생생해진다. 그때 그 아빠의 목소리와 말투, 눈빛과 표정까지도. "기도하면서 결정해."


  아빠는 마지막이 가까워 올수록 나에게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많이 했다. '네가 내 딸이라서 다행이다', '너한테라면 다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와 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그게 내가 지혜롭고 똑똑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빠는 좋겠어. 이런 딸을 낳아놔서. 아빠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일 거야. 이런 딸을 낳아 놓은 건."이라고 아빠한테 말하면, 아빠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세상 행복한 얼굴로 "맞아. 정말 그래."라며 웃곤 했다. 


  이후 나는 갑자기 큰 일들을 혼자 결정해야 했고, 빨리 결론지어야 했다. 나는 아빠와 있는 시간 동안 충분히 공부했고 준비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닥쳐온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혼자 부동산, 은행, 보험사는 물론, 세무서, 법원을 비롯한 온갖 관공서를 다녀야 했고, 동시에 직장에서는 야근과 지방 출장이 일쑤였다. 그러는 동안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고, 별별 일들이 다 있었다. 


  많고 많은 일들을 혼자 결정하고 실행하면서 나는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아빠는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끊임없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정할 일이 많아질 거야', '어려울 거야', '그렇지만 아빠는 너를 믿어'라고. 바로 이 맥락에서 아빠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기도하면서 결정해." 

  아빠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 나에게 다가올 수많은 상황들을. 아빠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그러면서도 나를 믿었기에, 괜히 긴 말 늘어놓지 않고, 마음속에서 조심스럽게 한참을 고르고 골라, 간결하게, 그러나 모든 것을 담아, 한 문장으로 말한 것이었다. "기도하면서 결정해."


  이 짧은 한 문장 안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말들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할 일이 많을 거야. 아마 어려울 수도 있고, 많이 피곤할 수도 있어. 그 와중에 별별 사람들도 많으니까 괜히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어. 아빠가 옆에서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함께 이야기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는 똑똑하고 지혜로우니까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처리하면 되겠지만, 일들이 한꺼번에 닥쳐오고 갈등이 생기면 그냥 다 내팽개치고 싶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럴 때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다른 사람 말에 쉽게 팔랑대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혼자 애쓰지 말고, 주위에서 주는 도움도 적당히 받아가면서, 지금까지 너의 인생을 순적하게 흐르게 하신 분과 함께, 지금까지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그렇게 살아줘."






  여러 일들을 전격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면서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원래의 나의 조심스러운 성향과, 아빠의 당부의 말이 합쳐져 삶에 대한 자세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신중히 고민해보다가, 전격적으로 결정하고, 조심스럽게 실행에 옮긴 후, 열심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아직 시행착오를 겪는 단계이지만, 나는 이 인생 스타일이 매우 마음에 든다. 

 

  전격적으로 일을 그만둔 지 1년이 지났다. 몇몇 친구들은 불안하지 않느냐며 걱정도 하지만, 나는 상당히 알차고 충만하게 보낸 1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있으면 우울해지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로서는 이 시간이 오히려 그 우울함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시간이었다. 나는 지난 1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많은 일을 했다. 나는 어느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이 1년 동안 나는 전격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운동을 시작했고, 이것저것 책을 사서 보기 시작했고,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다 보니 내 몸이 응답하고 있고, 책을 보고 글을 쓰면서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정리되고 정돈되었으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면서 묻어놓았던 설렘을 끄집어내고 구체적으로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말들을 나누었고, 좋은 감정과 좋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과정을 거치고 맞이하는 다음 스테이지는 매우 감동적이다. 나의 기도를, 나의 결정을, 그리고 나의 열심을 마치 온 세상이 지켜보고 있다가 지지하고 인정해주는 기분이다.  

 

   전격적으로 집을 이사하고 처음으로 귀가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란한 별 세 개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오는데 그 길이 익숙하지 않았던 그 날, 그 밤. 처음 타는 버스와, 처음 내린 버스정류장. 집으로 걸어 올라오는 길에 처음으로 올려다본 집 앞의 밤하늘. 그토록 까만 밤하늘에 선명하게 보이는 나란한 별 세 개. 그 3개의 별을 따라가 보니 보이는 국자 모양의 별 7개. 북두칠성이었다. 세상에. 책을 보고 밤하늘을 쳐다보기를 수 없이 했는데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북두칠성이었는데, 그날 그 밤에 나는 운명적으로 북두칠성을 알아보았다. 

  그날 이후, 나는 밤에 집에 돌아올 때면 습관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란한 별 세 개가 눈에 들어오면 나는 전율한다. 마음 깊은 곳이 찌릿하면서 눈물이 차오른다. 나의 마음은 나란한 별 세 개의 마음과 통한다. 우리는 서로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다. 

  '여기로 이사오길 잘했어. 좋은 결정이었어. 힘겨운 시간 잘 버텼어. 오늘도 최선을 다했구나. 잘했어.'


  얼마 전, 내가 관심 있게 읽고 있는 한 브런치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일단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새로운 길이 펼쳐지고 새로운 길을 신나는 마음으로 걸어가면 그 길 위에 나를 도와주는 천사들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준다." (깔깔마녀님의 브런치 <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중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최선을 다하면서,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채워나간다. 그다음 스테이지는 나의 몫이 아니다. 나의 천사들이 있고, 내 삶을 흐르게 하는 분이 계신다. 내 이름에 도울 원(援)자가 들어가는 것처럼, 돕는 분이 계신다. 이렇게나 온 세상이 나를 돕고 있다. 내 삶은 이렇게 흐른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은 꽤나 순조로운 인생이다. 이게 나의 운명이다. 순조로울 나의 운명.  















작가의 이전글 닳지 않은 사람에 대한 갈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