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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Jun 21. 2020

디테일이라는 스케일



  매년 11월 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집에도 늘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지만, 가장 신경을 써야 했던 곳은 교회였다. 학생부 때도 청년부 때도 나는 늘 중심 멤버였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곤 했다. 

  내가 성장하고 많은 것들을 배워나갈수록 우리 교회의 크리스마스 장식 또한 점점 세련되어갔다. 트렌드의 변화도 한몫했겠지만, 그래도 옛날 사진을 놓고 비교해봤을 때 크리스마스 장식은 점점 더 예뻐졌다. 옛날에는 오색찬란한 전구들과 셀로판지로 가득한 크리스마스였다면 언제부턴가 한 두 가지 색상으로 포인트를 준 깔끔하고 말끔한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겨울만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에 심혈을 쏟던 어느 해, 학생부와 청년부끼리만 하던 이 프로젝트에 어른 한 분이 자기도 같이 해도 되겠냐고 하셨다. 이 분은 교회에 나오신 지 얼마 안 된 분이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너무너무 부러웠다면서 설레는 눈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우리는 환영했다. 우리는 당장 올해의 크리스마스 컨셉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플랜과 준비해야 할 것들을 서로 공유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전기기술자이셨다. 백화점에서 전기 다루는 일을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분에게 크리스마스 전구를 다는 일을 의논했는데, 그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열정적으로, 그리고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이 일을 접근하셨다. 그분은 교회 외벽과 내벽, 천장과 통로에도 전구를 달겠다고 하셨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로 한 d-day날, 그분은 전문가용 도구들과 사다리, 그리고 작업복을 입고 오셨다. 이미 며칠 전부터 교회 구석구석을 줄자로 재고 다니던 모습에서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날은 넋을 잃고 바라봤던 것 같다. 그분은 무심하게 사다리를 툭툭 2단으로 펼치고 성큼성큼 올라가 전구를 달기 시작하셨다. 우리는 그 모습을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아, 전문가의 모습이란. 

 

  그동안 우리끼리 전구를 달 때는 누구 하나가 의자를 밟고 올라가면 밑에서 누군가가 꼭 잡아줘야 했고, 다른 누군가는 "거기서 5cm 오른쪽으로!"라며 소리를 질러줘야 했었다. 그러면 또 옆에서 누군가가 "어! 어! 어! 조심, 조심!"이라고 또 소리를 지르기 마련이었다. 붙이는 것도 스카치테이프로 잠깐 붙여놓는 정도였어서, 그렇게 한참을 하고도 다 하고 나면 붙여놓은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서 덜렁거리거나, 아니면 길이가 안 맞아 어느 한쪽이 너무 많이 남는 문제가 생겨 다시 올라가서 손을 또 대야 하곤 했다. 

  그런데 이 전문가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쓱쓱 일을 하셨는데 그 모습은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중 누구도 "어! 어! 어! 조심, 조심!"이라고 소리 지르지 않았다. 바닥에서 한참 떨어진 높이에서 안정적으로 일하시는 그분은 심지어 스카치테이프가 아닌 전문가용 도구(지금 생각해보면 스테이플러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를 쓰셨는데, 그러니 테이프가 너덜너덜해질 일도 없고 전구 줄이 늘어질 일도 없었다. 

 


  사실 이런 모든 것들보다 내가 감동했던 부분은, 디테일(detail)에 있었다. 그 와중에 그분이 스테이플러로 고정시키는 간격은 아주 일정했다. 그분은 매 간격을 줄자로 재 가며 모든 간격을 동일하게 맞추셨다. 

  클라이맥스는 마지막이었다. 전구로 천장과 벽을 다 두르고 마지막으로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데, 세상에, 그 길이가 딱 맞았다. 많이 남아서 둘둘 감을 필요도 없었고, 길이가 짧아 고정시켰던 전구를 다시 풀어서 길이를 맞춰야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분은 그러고 나서 다시 무심하게 사다리에서 성큼성큼 내려와 툭툭 사다리를 접고 도구들을 가지런하게 챙겨서 다른데 또 할 거 없냐고 물어봤는데, 우리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속도와 정확성, 아름다움과 예술성 면에서 완벽했다. 


  그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나는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한참 그 이야기를 했다. 나의 들뜬 감정에 함께 같이 들떠하던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프로야. 프로는 디테일이지. 전구는 누구나 달 수 있지만, 그런 디테일은 아무나 할 수가 없지. 일반 사람들이 '그까짓 거'라고 여기는 부분을 신경 쓰는 것. 죽어라고 해놔 봐야 어차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디테일이지만 아주 디테일하게 다루는 것. 그게 프로와 프로가 아닌 사람의 차이인 거야."




  전구의 간격을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나 길이가 남아돌지 않도록 정확하게 선 길이를 맞추는 디테일은 사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디테일이다. 결국 이 디테일은 프로의 배려다. 프로의 배려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확하게 하는 와중에, 피곤함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다른 것들까지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것'이다.


  프로의 이런 디테일들은 사실 아무도 몰라준다. 지나가는 사람은 전구가 정확히 동일한 간격에 매달려 있는지 아닌지 별로 관심이 없다. 보는 사람도 모르고, 배려를 받는 사람도 모르는 이런 디테일.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그 현장에 있었던 나와 친구들이 안다. 무엇보다, 본인이 안다. 


  미켈란젤로의 일화는 이미 너무 유명하다. 

  어느 날 제자가 물었다고 한다. "스승님, 누가 알아준다고 보이지도 않는 천장 구석에 이렇게 공을 들이십니까?"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내가 알고 있다네." 그렇게 인류 최고의 걸작 <천지창조>가 탄생했다고. 


  프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수준이 아니다. 프로는 다른 사람의 인정에 기대지 않는다. 그러므로 프로의 행복은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본인만 아는 디테일이 있을 때, 시간이 지난 후 그 디테일을 다시 마주할 때 마음 한 구석이 흐뭇한 행복. 그것이 프로가 누리는 행복이다.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감명 깊은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특히 감명받은 장면이 있다. 바로 전날 오후에 다 나아서 퇴원한 환자가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아 장기기증 수술을 앞둔 상태에서 의사가 10분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수술을 앞두고 의사는 말한다. "저기, 부탁하나 해도 될까요? 심장 적출하는 거 10분만 미뤄도 될까요? 병원에 전화해서 가능한지 먼저 확인부터 해보시고, 거기 상황 급하면 바로 해도 됩니다." "오케이, 그럼 지금 11시 50분이니까 10분만 있다가 인시전 넣어도 되죠? 12시에 묵념하고 시작합시다." 

  그러자 다른 의료진이 이렇게 말한다. "저 근데, 그냥 지금 바로 하시면 안 돼요? 우리 이틀 밤샜는데..." 의사는 다시 말한다. "오늘 어린이날이라... 오늘이 어린이날이라 그래요. 이 분 아들이 5살인데, 이름은 원준이고, 오늘이 어린이날이라 아빠랑 짜장면 먹기로 했거든요. 근데 원준이, 음, 앞으로 평생 못하게 됐어요, 그거. 우리, 딱 10분만 기다려요. 딱 10분만 있다가 시작해요. 애가 매년 어린이날마다 돌아가신 아빠 때문에 울면서 보낼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정이 많은 의사라고는 해도, 아무리 환자의 가족들과 친밀함이 형성되었다 해도, 그 상황에서 굳이 10분을 멍하니 흘려보내다니. 밤 12시, 모두가 피곤한 시간에. 


  모든 수술이 다 끝나고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아이에게 다가와서 의료진은 사망을 알린다. 

  "고인께서 좋은 뜻으로 장기기증을 하시게 되었는데, 장기 상태가 좋아서 심장, 폐, 콩팥, 간을 기증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5월 6일 0시 5분에 수술 시작하였고, 심정지 되어 사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한 문장에 모든 디테일이 다 들어 있다. 이 디테일은 의사로서의 디테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디테일의 끝을 보여주었다. 이 엄청난 디테일 덕분에 아이는 매년 어린이날을 우울해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족들은 어쩌면 끝까지 모를 것이다. 수술실에서 모두가 10분이 그냥 흘러가도록 기다렸다는 사실을. 그저 원래 수술 스케줄이 0시 5분에 시작하는 스케줄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수술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술만 잘하면 되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여기는 이 세상에서 이런 스케일(scale)의 디테일은 무척 감동적이다. 


  이렇게까지 디테일을 디테일하게 다루는 일은 아주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피곤하고 귀찮다. 어차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안 해도 아무 문제없다. 본인은 그저 본인 할 일만 열심히 잘하면 된다. 사실 그것만 해도 아주 훌륭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디테일은 '괜히' 하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표창장도 인센티브도 없는 이런 디테일. 괜한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고, 쓸데없는데 시간 낭비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는 다르다. 프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을 디테일하게 한다. 이 디테일이라는 스케일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세상에는 여러 분야의 프로들이 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디테일을 디테일하게 하는 프로의 배려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빛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프로의 배려 중 가장 수준 높은 디테일은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신경 쓰는 디테일'이라고 본다. 


  나는 전기기술자도, 의사도 아니므로 전기 다루는 디테일이나 수술 과정에서의 디테일로 인한 행복은 누릴 수 없지만, 사람이므로, 사람에 대한 디테일로 행복은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개인적인 상황이 복잡하고 정신없어도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신경 쓰는 것. 나 덕분에 그들이 당연히 받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래오래 우울하고 불안했을 상황에서 내가 신경 써준 덕분에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다면 이 또한 프로의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어떤 특정한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서, 사람이 할 수 있는 디테일을 디테일하게 하는 것. 이 일은 소소해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매우 대단한 일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의 하루가 달라지고, 누군가의 마음이 편해진다니. 


  물론, 아무도 몰라줄 것이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상을 받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그들을 배려했다는 사실을. 나도 지치고 힘든 와중에 이렇게까지 그들을 신경 썼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나중에라도 그들을 떠올렸을 때, 혹은 길에서 마주쳤을 때, 나의 마음 한 구석이 흐뭇할 수 있다면 나는 만족만족이다. 이것이 나의 디테일이고 나의 배려이며, 그리고 나의 행복이 될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천지창조>를 그렇게 만들어갈 수 있다. 


  얼마든지 프로의 인생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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