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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ug 30. 2020

J에게


  스무 살 때 처음 MBTI(성격유형검사)를 했다. 

  이후 매년은 아니어도, 2~3년에 한 번씩은 했으니 지금까지 못해도 6~7번은 한 것 같다. 


  나는 검사를 할 때마다 매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를 놓고 상담 교수님은 내 성격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성격이라고 하셨다. 결과지를 확인해보면 나는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의 모든 부분에서 중간쯤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치가 중간쯤에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환경의 변화나 생각의 흐름에 따라 검사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외향성(E)과 내향성(I)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조차도 수치가 딱 중간이어서 때로는 외향적으로도, 때로는 내향적으로도 결과가 나타났다.)  


  교수님의 다음 말씀은 참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활발하거나 조용하거나, 계획적이거나 충동적이거나, 한 가지에 집중을 잘하거나 멀티플레이를 잘하거나 아무튼 어떤 한 캐릭터가 주로 드러나는데, 내 경우에는 모든 캐릭터가 다 드러날 수 있다면서, 나는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에 따라, 더 나아가 스스로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따라 얼마든지 스스로 선택해서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위키 커먼즈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어떤 모임인지에 따라 시끄럽게 떠들기도 했고, 그냥 가만히 있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세세히 묘사하는 것도 잘했고, 뜬구름 잡는 소리도 잘했다. 비논리적인 것에 열폭하다가도 달을 보고 센티멘탈해지기도 했다. 갑자기 충동적으로 떠나는 여행도 좋아했고, 모든 이동 거리와 시간을 철저히 계산한 여행도 좋아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나의 감정의 방향과 태도를 선택할 수 있었다. 조용히 있고 싶을 때는 아무리 멍 때리며 있어도 지루해지지 않았고, 의욕을 끌어올려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을 때는 아무리 정신없이 다녀도 피곤해지지 않았다. 


  나는 주어진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적절히 나의 모습과 태도를 결정하면서 어떻게 했을 때 내가 편한지(혹은 유리한지)를 알아갔다. 


  그렇게 보낸 20대의 시간은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고 싶은 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이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깨닫게 된 '나'라는 사람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면서(E) 혼자만의 시간도 만끽할 수 있길 원했고(I),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N) 그 안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싶었고(S), 객관적 원칙을 지키면서(T)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도 충분히 공감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F).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 한 가지 유형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J였다. 



 *한국 MBTI연구소의 설명에 따르면 J, 즉 판단형(Judging)의 사람은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으며, 기한을 엄수하고 철저히 사전 계획하며 체계적이라고 한다. (반대로 P, 즉 인식형(Perceiving)의 사람은 목적과 방향이 변화 가능하고 상황에 따라 일정이 달라지며 자율적이고 융통성이 있다.)




  20대 초반~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J와 P의 성향이 적당히 함께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정해진 매뉴얼대로 살다가도 한 번씩 그때그때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행동하곤 했다. 

 

  그런 내가 J의 성향을 선택하고 끌어올리기 시작한 건 아마 2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였지 싶다.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가계를 이끌게 되면서였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충동적으로 훌쩍 떠나지 않고, 충동구매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움직일 때는 모든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계획한 이후가 되었다. 갑자기 훌쩍 떠나고 싶을 때도 이렇게 저렇게 다 알아본 후 떠나고, 급하게 어떤 물건이 필요해지더라도 온갖 품질 비교, 가격비교를 해 본 후 구매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최소 일주일 단위의 스케줄이 있어야 했다. 나는 온갖 과중한 업무와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철저히 스케줄을 관리했다. 나는 어떤 일정도 잊어버리거나 허겁지겁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내게 스마트폰이 좋은 단 하나의 이유를 대라면 더 이상 스케쥴러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단번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스케줄 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개인 생활도 세세하게 계획했다. 밤에 자기 전에는 다음날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생각했다. 대충 이런 식이다. '내일은 화분에 물 주는 날이네. 씻고 머리 감고 말리고 강아지 밥도 주려면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바쁘니까 아침은 간단하게 토마토 넣고 셰이크나 갈아먹어야겠다. 아, 내일은 외부 미팅이 있는 날이니 입을 옷을 꺼내놓아야겠구나. 편한 신발도 하나 따로 챙겨놔야지. 집에 돌아오면 TV로 야구 중계 틀어놓고 씻고 청소기 돌리고, 세탁기도 돌려야 하고 그러면 밤 10시쯤 되겠지. 그러면 영화나 한 편 볼까. 아니, 그러면 과자 먹고 싶어 지니까 영화는 보지 말자. 그냥 음악이나 틀어놓고 멍 때리다 자는 게 낫겠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나는 생각했던 대로 딱 그렇게 하루를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떤 시간도 그냥 보내지 않았다. 멍 때리며 보내는 시간까지도 내가 계획한 대로였다.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J의 성향이 점점 도드라질 수밖에. 나는 J의 성향을 원했다. 일에서도 개인 생활에서도 나는 디테일하게 시간을 구성하고, 일의 순서를 정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계획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더라 하는 말 때문에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성공적인 인생을 꿈꾸지 않았다. 눈에 띄는 성과를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다만,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지런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예술가든, 운동선수든, 일반 직장인이든,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매일 부지런히 몇십 년씩 살아온 사람은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냈든 이루어내지 않았든) 그 자체로 이미 감동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그 말을 듣자, 온몸이 찌릿해졌다. 아, 이게 열심히 사는 거였구나. 나 열심히 살았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열심히 사는 걸로 보일 만큼 열심히 살았구나. 


  이 날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 날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우리가 어디서 만나 무엇을 먹었는지, 날씨가 어땠는지 생생히 다 기억난다. 정확한 날짜를 찾아내고 싶어 스케쥴러를 확인해보니 역시나 그 친구와의 만남이 적혀있었다. 내 기억 속의 그 장소, 그 시간이 고스란히. 


  스물아홉 살의 가을이었다. 




 

  작년에 일을 그만두고 쉼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나는 여전히 계획하고, 계획한 대로 살아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부지런하게,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 일정 없는 하루를 보낼 때도, 나는 꼬박꼬박 6시(조금 게으름 피우면 7시)에 일어난다. 일어나면 일단 물을 한 잔 마시면서 강아지에게 잘 잤느냐고 말 걸어준다. 그리고 세수하고 강아지 밥 주고 베란다 창문 열어 환기시키고 화분에 물 주고, 사과 한 개 혹은 셰이크 한 컵을 먹고, 운동을 나간다. 운동 끝나고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구경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사서 집에 오면 10시 반~11시쯤 되는데 그러면 씻고, 건강한 밥을 해 먹고,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한다. (운동복을 매일 빨아야 하는 걸 보니, 나는 매일 운동하고 있다.) 그러고 나면 좀 쉬어야 하는데 잠깐 한 숨 돌리고 나면 오후 3~4시쯤 된다. 

  오후에는 해야 할 공부를 좀 하거나, 책을 보거나, 처리해야 할 일을 한다. 저녁에는 간단한 저녁을 먹으면서 강아지 밥을 주고, 저녁 산책을 잠깐 했다가 돌아와서 하루 일지와 수입지출내역을 정리하고,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를 한 편 본다. 잠은 12시가 되기 전에 잔다. 아침에 또 일찍 일어나 운동해야 하니까. 잠들기 전에는 누워서 다음날 어떻게 보낼지를 잠깐 생각한다. 다음날이 되면 또 6시(늦잠 자면 7시)에 일어난다.  


  물론 늘 똑같지는 않다. (이 와중에 다른 고정 스케줄이 생기기도 하고, 모임이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다음날을 어떻게 보낼지를 미리 생각하고, 다음날이 되면 생각해 놓은 대로 시간을 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해진 루틴을 기반으로 굴러가다 보니, 나는 점점, 그리고 매우 건강해지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건강한 밥을 먹고 유익한 것들을 한다. 


  지난주, 몇 년 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동창회'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친했던 친구들을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한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여기 있었네!" 

  5년 전에 들었던 '열심히 산다'는 말을 5년 만에 또 들었다. 5년 전에는 직장생활을 했으니까 그렇다 쳐도, 지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도 '열심히 산다'는 말을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납득했다. 이게 맞았다. 나는 제대로, 잘,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보일 만큼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나저나, 참 아이러니한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자기보다 쉬고 있는 내가 더 열심히 산다니.)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있다. 하루키는 아주 규칙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한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재즈를 듣고 저녁에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10시면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매일 이렇게 칼같이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특히 감탄스러운 부분은 '매일 달리기'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보니, 하루키는 서른세 살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을 쓸 때는 50대 후반이었고, 아마 지금도 달리고 있을 테니, 30년이 넘도록 달리고 있는 셈이다. 


 나는 1982년 가을,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23년 가까이 계속 달렸다. 거의 매일같이 조깅을 하고, 매년 적어도 한 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계산해보니 지금까지 스물세 번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 밖에도 세계 각지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러 장, 단거리 레이스에 참가했다. 
 꽤 착실하게 달리고 있다. 내가 '착실하게 달린다'고 하는 말은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서 말한다면, 일주일에 60킬로를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0킬로를 달린다는 것이다. 사실은 일주일에 7일, 매일 10킬로를 달리면 좋겠지만, 비가 오는 날도 있고,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는 날도 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달리고 싶지 않은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리 일주일에 하루쯤은 '쉬는 날'을 정해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60킬로, 한 달에 대충 260킬로라는 숫자가, 나에게는 '착실하게 달린다'고 하는 일단의 기준으로 정할 수 있다. 

 6월에는 딱 그 계산대로 260킬로를 달렸다. 7월에는 또 거리를 늘려서 310킬로를 달렸다. 매일 딱 10킬로,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린 결과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작년에 일을 그만두고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유일하게 목표했던 것은 '건강한 사람 되기'였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운동해야 했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했는데, 그냥 무작정 부지런하는 건 불가능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면 계획이 있어야 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스케줄 세우듯이 계획하고 생각해서 스케줄을 세웠다. 스케줄대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일지를 썼다. 일기는 쓰지 않아도 일지는 썼다.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러다 보니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계획적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는 건 아마 '매일 운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매일 운동하고 있다. 조금씩이라도. 어떤 때는 열정이 끓어올라 3시간씩 운동할 때도 있지만, 이것도 저것도 다 싫을 때는 20분 정도 간단히 산책만 하기도 한다. 아무튼 중요한 건 운동복을 갈아입고, 따로 시간을 내서 땀이 날 만큼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나의 이 '매일 운동하기'는 서른세 살부터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나이, 즉 사람들 스스로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시작한 때다. 나는 이때 나의 건강한 삶을 계획하면서 '더 이상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 그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정의 내렸었는데, 이는 우연찮게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 시작한 나이와 같고, 하루키도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락(凋落)은 그 나이 언저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운동한 지 이제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쌓였다. 나의 이 '매일 운동하기'가 20년, 30년이 되길 기대한다. 아마 이걸 20년, 30년씩 하려다 보면 정말 할 수 없는 날도 있겠지만, 그런 날에도 운동을 할 수 있으려면 이게 습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작년에 운동을 시작할 때는 없는 체력을 끌어모아 조금씩 움직이는 데 의지를 불태웠다면, 이제는 하기 싫은 날에도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하루키가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갔다'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코로나로 어지러운 이 시국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껏 스트레칭을 하고 쇳덩이를 들어 올린다. 도저히 마스크를 낀 채 러닝머신은 못 뛰겠어서 따로 날을 정해 바깥에 나가 달리기를 하고, 계단 오르기를 한다. 요즘 들어 자꾸 주말 요가 수업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자제하고 있다. 요가는 특히 호흡이 가장 중요한데 마스크 끼고 깊은 호흡을 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가끔 집 거실에서 몇몇 간단한 동작만 조금씩 하고 있다. 


  요가뿐 아니라,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많은 일들이 코로나로 인해 막혀있다. 열심히 일하며 활동해야 하는 사람들도 강제로 휴식하며 잠자코 지내야 한다고 한숨을 쉬고 있다. 나는 원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의욕이 끓어올라 있는 지금도 집에 있으려니 이제는 살짝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더 시간을 쪼개 움직인다. 정리하고, 만들고, 치우고, 읽고, 쓴다. 부지런히 살고 있다.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다. 온전히 나를 위한, 나의 시간이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열심히 산다'는 말에 울컥했다. 단 한 번도 누가 알아봐 주길 바라지 않았지만, 막상 알아봐 주니 기분이 꽤 괜찮았다. 스스로 선택한 나의 삶을 살아가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지만, 다른 사람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이게 맞다'고 한번 더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5년 만에 다시 한번 지지를 받았다.  


  나에게 '열심히 산다'는 의미는, 건강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되었다. J의 성향이 매우 중요해졌다. 나의 20년 후, 30년 후의 모습을 이 J가 이끌어 줄 것이다. 




  MBTI 검사를 다시 해 보았더니 또 새로운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의 수치는 여전히 중간에서 왔다 갔다(45%~55%) 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한 부분에서 그래프의 막대기가 치솟았는데 바로 J였다. 무려 85%! 


  반갑다, J.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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