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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Sep 08. 2020

갑자기, 그러나 순리대로

코로나 19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성큼'.


  다른 계절들은 언제 왔는지 모르게 스멀스멀 오는 것 같은데, 가을은 성큼 다가온다. 어느 날 갑자기 찬바람이 불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은 가을 하늘이 된다. 가을은 마치 관종 같아서 "많이 기다렸지? 자, 드디어 내가 왔어!"하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 같다.  

  덕분에 가을이 오는 날은 온몸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아, 오늘이구나. 가을이 오늘 왔구나.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달력에는 매년 정확하게 '가을이 온 날'이 적혀있다.


  이번 여름은, '여름'이라기보다는 그냥 '장마'였다. 올해의 계절은 '봄, 장마, 가을, 겨울'로 구분되는 느낌이다. 비가 계속 왔고, 습한 공기가 온 세상을 채웠다. 습도가 늘 75%~85%였고, 햇빛도 나지 않는 흐린 날이 대부분이었다. 밀린 빨래가 쌓여갔고, 건조기를 사야 할지 제습기를 사야 할지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하면서 에어컨으로 제습을 돌렸다. 우리 집 스투키는 3달 동안 물을 전혀 주지 않았는데도 과습으로 뿌리가 썩었다.

  재작년과 같은 살인적인 더위까지는 아니었지만 28~30도의 온도가 계속되었다. 아침, 저녁에도 온도는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베란다에 둔 단호박은 후숙 작용이 빨라져서 금세 늙은 호박같은 맛을 내었다.


나의 사랑하는 단호박.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베란다 문을 연다. 아무리 덥고 습해도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은 집안 공기를 환기를 시켜주는 게 좋다고 했다. 온 세상 공기가 코로나가 떠다니는 공기인 것 같아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어야 한단다. 그렇게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맞이하는 공기는 덥고, 습하고, 코로나가 득실득실한 것 같은 꺼림칙한 공기였다.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그 안 좋은 느낌을 예상하며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쓱, 서늘한 바람이 온몸에 다가왔다. 깜짝 놀라 온도계를 확인해보니 26.5도, 습도는 61%. 하루아침에 온도, 습도가 모두 쾌적해졌다. 가을이었다. 장마가 끝난 줄도 몰랐는데, 가을이 왔다.


  바람이 온 집안을 돌아다니고 햇빛이 나는 걸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랴부랴 화분을 햇빛에 내놓고, 밀린 빨래를 했다. 집안의 창문을 다 열었다. 에어컨의 전기코드는 당장 뺐다.

  저녁에 산책하는데 피부에 시원한 공기가 와 닿아서 속도를 꽤 내서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지 않았다. 기분이 꽤 괜찮아서 코스를 변경해 조금 더 걸었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 2년이 되어간다. 변한 게 없는 것 같았지만, 따지고 보니 많은 게 변했다. 집 앞 슈퍼가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원래 있던 마트 건물이 헐리고 새로 공사해서 똑같은 자리에 새로운 할인마트가 들어왔다. 이 동네를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는 중에 집 앞 파리바게뜨가 문을 닫았다. 파리바게뜨도 배달어플로 주문이 가능해졌다고 알려주시던 사장님의 얼굴과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파리바게뜨만 문을 닫은 게 아니라, 건물 자체가 아예 헐려버렸다. 공사 안내문에 따르면 길을 넓히기 위함이라고 했다.

  파리바게뜨가 있던 자리 건너편에는 찹쌀 꽈배기 가게가 새로 문을 열었다. 오픈날부터 길거리에는 꽈배기를 먹으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꽤 볼 수 있었는데, 지난주부터 뚝 끊겼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2.5단계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는 도저히 뭘 먹을 수가 없으니.


  안 그래도 많은 것들이 많이 바뀌고 있는데, 심지어 코로나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마스크 때문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눈코입을 식별하기 어려워졌다. 갓난아기의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에 가도 아기 엄마는 병원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봄에 결혼하려던 예비부부는 결혼을 미뤄 가을에 결혼하기로 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는 것도 눈치 보인다고 했다. 올해 10kg 감량을 목표로 세웠던 친구는 오히려 5kg가 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던 친구는 모든 계획을 잠정 보류하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가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이렇게 갑자기 일어난다. 물론 인과관계가 존재하고, 전조도 있고 단계도 있겠지만, 각 개인이 느끼는 느낌은 결국 '갑자기'다. 갑자기 어떤 일이 시작되고, 갑자기 일이 꼬인다. 사람은 갑자기 다가오고, 갈등도 갑자기 일어난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면 다 예측 가능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첫 출근도,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온갖 말썽들도.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예측하는 동시에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갑자기 변한 상황에 놀란다. '이제 슬슬 가을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하면서도, 막상 가을의 찬 바람을 만나면 '세상에, 정말 가을이 왔잖아!'라고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어떤 일이 갑자기 일어나면 우리는 이 '갑자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선 생활패턴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바빠진다. 내가 부랴부랴 화분을 내놓고 세탁기를 돌렸던 것처럼.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를 우리는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일주일 푹 쉬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체념하고 적응해야 하는 실정이다. 늘 살던 삶이 아니기에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친다. 괜히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바빠진다. 언제 끝날지, 과연 끝이 있기는 한지조차 불투명한 이 삶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갑작스러웠던 시작만큼 끝도 갑작스럽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난리에 끝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갑자기'를 또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동안 꽤 바빠질 것이다.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주세요'라는 안내문부터 떼어내야 한다. 그리고 부랴부랴 문을 활짝 열고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만나야지.  

  그렇게 며칠 지나고 나면 언제 코로나가 있었냐는 듯 살아갈 것이다. 몇십 년 후 학생들의 교과서에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모습이 실릴지도 모른다. 중간고사에 그 사진을 보고 시대를 맞추는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지. 혹시라도 우리의 자녀가 그 문제를 틀려왔다면, 우리는 그걸 보고, 아니, 어떻게 이걸 틀릴 수가 있냐며, 코로나 시대의 이야기를 줄줄 읊어댈 것이다. 그때 어땠냐면 말이야, 정말 난리도 아니었지.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어.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참고로 우리 할아버지는 1917년부터 2020년까지 세상을 사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역사의 대부분의 현장에 직접 계셨다. 내가 가장 당황했을 때는 할아버지가 "김두한 그 친구가 말이야~"라고 하셨을 때였다.)


  "사람은 떵떵거리고 살기보다는 떳떳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일제시대 때 떵떵거리던 놈들이 해방 이후에는 천하에 못된 놈이 되었잖니. 그러고 보니 군사정권 때도 그랬지. 지금은 안 그럴 줄 아니? 영원할 줄 알지만, 세상은 변한단다. 지금 아무리 권세를 누려도 그게 끝이 아니고, 지금 아무리 삶이 고단해도 그게 끝이 아니야. 

  사람이 눈 앞에서 총 맞아 죽고 굶어 죽는 걸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살아야 했고, 뭐든 해야 했고, 막상 해보니 뭐든 다 할 수 있었지. 우는 날만 있는 인생인 줄 알았지만 그래도 재밌는 날도 있었고, 도둑놈 천지인 줄 알았지만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도 꽤 많았어.


  귀근(歸根)**이라. 가을에 나뭇잎이 땅에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사는 동안에는 제각기 뻗대며 살아가는 것 같아도 순리를 벗어나 사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도 결국 다 순리대로였어. 앞으로도 그럴 게다.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아무렇지 않아질 거야.


  이젠 네가 다 커서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날도 왔구나. 네가 살아갈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서는구나.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내가 지난 세월 겪은 어려운 일과는 또 다른 어려운 일이 생기겠지. 그래도 너는 잘 살아갈 게다. 너는 심지가 굳은 아이란다. 그러니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게다. 그리고, 내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다만, 살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위해 기도할 테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도와 축복을 너를 위해 쓰마."



 **우연히 도덕경을 보다가 '귀근(歸根)'을 발견했다. 노자는 도덕경 16장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온갖 것이 풀처럼 쑥쑥 자라지만, 그들은 결국 근원인 뿌리로 돌아간다. 歸根曰靜 是謂復命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는데, 고요함이 곧 만물의 본성이다. 만물은 늘 이렇게 본성으로 돌아간다.

  (...)

  知常容 容乃公 만물이 늘 본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생기고, 포용력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담담하게 대한다.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모든 것을 담담하게 대하는 사람은 상황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연의 흐름과 더불어 흘러가는 자유인이 된다.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곧 도(道)를 따르는 것이다. 道乃久 沒身不殆 도(道)는 영원하며, 육신은 소멸해도 도(道)는 사라지지 않는다.






  갑자기 가을이 왔습니다.

  저는 여름에만 손이 따뜻한데 (기간 한정!)

  가을이 왔다는 건 그 기간이 종료되었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조금씩 손이 차가워지고 있답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면 겨울이 되어 있겠지요.

  제 손은 곧 꽁꽁 얼어붙을 겁니다.


  우리 엄마는 이걸 한 번 고쳐보겠다고 겨울마다 한약을 엄청 지어 먹였는데, 끝내 고치지 못했어요.

  결국 저는 삼십 년이 넘도록 차디찬 손으로 살아가고 있네요.


  그래도 잘 삽니다.

  손은 늘 시리지만, 그래도 이 손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언젠가 저의 손이 한겨울에도 따뜻해지는 날이 올까요.

  그날도 갑자기 오겠죠.

  어느 날 문득 '응? 손이 안 시리잖아!'하고 느낄 겁니다.


  코로나로 모두의 마음이 얼어붙었다지만, 그래도 잘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겠죠. 고맙습니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깊게 호흡하는 날은 성큼 올 겁니다. 이 가을처럼 말이에요.

  그 날이 오면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만나고,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갈 겁니다.


  그 날 혹시 저를 만나게 되면 저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세요.

  혹, 저의 손이 따뜻하다면,

  그날 갑자기 따뜻해졌을 겁니다. 함께 좋아해 주세요.  



  +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본 오페라가 <라 보La Bohême>이네요. 작년 11월이었죠. 그때만 해도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는데. <라 보엠 La Bohême>의 대표적인 아리아가 <그대의 찬 손 Che gelida manina>입니다. 하필.


  마음 편히 공연장에 가서 오페라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이번에는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를 보겠어요. <축배의 노래 Libiamo ne'lieti calici>를 들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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