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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03. 2023

시댁환장곡-7화 추석의 묵시록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과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7화 추석의 묵시록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7화 추석의 묵시록     


드디어추석 연휴가 끝났다.

아쉽냐고? 전혀 그럴 리가!     


 추석이라는 빈 알맹이 같은 추수, 나만의 가을걷이가 끝났다. 낯설어하면서도 설래임으로 맞이했던 한 해를 또 미련 없이 버릴 준비를 하고 있다. 20살이 되어선 막연하고 답답한 현실이었을지언정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쉬웠다. 아프고 멍들어 후회가 남을지라도 훗날 내 인생에서 찬란한 시기로 기억될 거라고 확신했다. 50살을 앞두고 지난날에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막연하고 답답한 현실은 그대로일지라도 아직은 건강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그런대로 화목한, 그래도 안정된 거 같아 감사하다. 언제부터인가 시간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에 무감해진다. 하지만 제사와 추석과 명절 연휴라는 시간이 제발이지 후다닥 지나가기만 바라고, 휴일 없어도 되니까 아예 달력의 빈칸으로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확인할 때마다 속상하다.     


 글쓰기는 스스로 되돌아보고 삶을 성찰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추석 전날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 밑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듯이 시댁의 끝이 없는 일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지치고 피곤한 나에 대해 쓰려고 한 것은 아니다. 추석 전날 종일 끊임없이 일하면서 지옥이 있다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댁이 농사짓는 시골이라면 일이 끝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정말 추석 하루 전날은 지옥과 비슷해 보인다.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글쓰기의 시작이 지금 절실히 추석 연휴 고생한 나에게 위로하는, 동정하는, 대단하다는 연민과 치하만은 아닌 거 같다. 진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의 확인과 행동을 생각할 때라 여겼기 때문 아닐까?     


 결혼이란 것을 하고, 제일 힘들었던 건 남편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 그리고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문화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과 지금의 시간을 보내는 여성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문제이다. 그리고 여성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성(어머니, 아내, 딸, 며느리)을 둘러싸고 있는 남성(아버지, 남편, 아들, 사위)들은 여성과 함께 공존하는 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이다. 


 그냥 얼굴도 모르는 조상에게 지내야 하는 제사가 싫어서도 아니고, 종일 음식과 집안일에 허덕여 힘들고 고달프기만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지고, 피로 맺어진 절대 끊어질 수 없는 끈끈한 드라마가 맞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24년, 그리고 수백 년 반복된 추석이라는 것을 통해 잔잔한 러브스토리는 긴장감이 넘치는 액션이 난무하는 스펙터클 호러, 스릴러가 되어버린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패를 숨기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향한 끊임없는 수 싸움이 물린다. 숨기려고 해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패에 어쩌다가 분노와 상처만 남게 된 걸까? 왜 시대의 민주주의를 외치고 싸웠던 민주화를 이끌었던 남성들까지도 가정의 민주주의에는 관심을 끊고 외면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딛고 이루어진 일부분의 행복과 뿌듯함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전쟁은 반대하면서 아프리카와 세계 난민에 대해서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전통과 문화라는 가면을 쓰고 행해지는 암묵적 폭력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세계와 겨루어 최고의 기술과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이 왜 이런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냥 시간이 지나가면 해결될 것이라 자부하고 손 놓고 있는 것일까? 과연 답을 찾을 수 없는 모두가 얽혀있는 문제이기에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다음 세대 우리 아이들은 절대로 따르지 않을 거란 것을 우리도 속으로 다 알고 있기에 조용히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 년 후면 내 나이가 오십이다. 오십 이후의 삶에서 나는 비극이든 희극이든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인공이 아니라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에서 선택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고 싶다. 결말이 비극이냐, 희극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얼마나 깨어있고 치열했는지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십 이후는 겉으론 한가하게 변화도 없이 매일 무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20대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30대보다 더 치열하게 노력하고, 40대보다 더 새로움을 추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내일이 50살이 되는 날이라 가정하고, 어제의 내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내일이 와서 오늘이 된 들, 현재는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의문들이 지금의 문제들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미래에 집안 대소사에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내가 과연, 그때에는 모두에게 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추석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지금도 답을 모르는데 미래에는 답을 알 거란 보장은 없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 제사 정성스레 지낼 수 있다. 유럽의 대성당에 가서 남의 나라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묘 앞에서 묵념도 하는데 사랑하는 남편의 조상을 위해서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못 지낼 이유가 없다. 그리고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을 위해 종일 봉사하고 기부도 하는 데 오랜 시간 함께해온 가족, 친지들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임하지 못할 것도 없다. 매일 사무실 옆자리 사람에게서 사회생활이란 이름으로 불평불만도 들어주는데 365일 모시고 사는 것도 아닌데 시어머니, 시아주버님의 고리타분한 생각들 하루 한나절 들어주는 게 무슨 대수라고 어렵지 않다.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가는데 사회생활 짬밥이 몇 년인데 그쯤이야 참아내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참아내지 못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 걸까?      


 토끼처럼 순진한 며느리는 나이가 들면서 여우처럼 약아져서 약도 치고, 물도 흐리고, 갈아타는 것이 능숙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제사나 추석, 명절이 흐지부지 어영부영하며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 되는 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이 서글프다. 애들 시험과 학원을 방패 삼고, 일한다는 핑계로 거리두기 할 수 있다. 


건강이 흔들리고 시력이 약해져서 그렇지 50 이후의 삶은 좋은 거 같다. 더 이상 욕망의 계단을 오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니 무서운 사람도 아쉬운 사람도 없다. 서슬 퍼런 시어머니도 85세가 넘으니 은근슬쩍 내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 아쉬울 사람은 남편이고 시어머니이고 형님들이지 나는 아니란 생각에 필수라고 의무라고 생각한 것들이 선택이고 자유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더 본질을 찾고 싶고, 찾은 본질을 유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본질은 그 어떤 것일지라도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군림을 허용하지 않을 거란 확신에서다. 내가 억울했기에 다른 사람도 함께 억울해야 내 억울함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지 않고 답답하니 글을 쓰면서도 당혹스럽다.     


 어쩌면 지금 내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이 아니다. 어차피 나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시골고향집에 내려가 추석을 보낼 것이다. 아마도 나는 추석이라는 문제의 해법을 그때까지 유보하며 고민할 것이다. 추석에 편해지고 행복해지려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무게 중심들이 산산이 흩어져야 해결될 문제란 말인가? 라는 마지막 질문에서 너무 슬퍼졌다. 


하지만 죽음이란 끝에 도달해서 해결되는 해결이 아니라, 지쳐 나가떨어져 등을 돌려야 해방될 수 있는 상처는 싫다. 그곳에 내 의지는 없고 그런 식으로 얻어지는 자유라면 노 땡 큐다. 삶에서 누리는 해결은 과연 존재할 수 없고, 상처를 딛고 화해로 해결하고자 방법을 찾는 이 시도들이 내가 아직도 철이 덜든 순진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 밖에 안되는 거 같아 외롭기만 한 밤이다. 올해 시골집 달은 구름 속에서도 환히 빛났던 것만큼이나 더욱 서럽게 다가온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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