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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03. 2023

시댁환장곡-9화 끼니는 누가 챙길까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9화 끼니는 누가 챙길까?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9화 끼니는 누가 챙길까?


큰 시숙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오니 해남에서 김포까지 밀리지 않아도 4시간은 걸리고, 휴게소나 잠시 휴식하면 5시간, 밀리면 그 이상이다. 아직은 설 명절 대이동이 시작되지 않는 목요일이고 역귀성이라 무엇보다 무지하게 밟고 오실 시숙님의 운전 스타일을 짐작해 보건대 일찍 올 거라 짐작했다. 뭐라 해도 한 나절 이상 걸리는 여정이라 항상 올라오는 날 끼니를 걱정하게 된다. 


시집살이 대부분은 끼니 걱정이고, 모든 고단함은 먹는 것으로 야기되는 거 같다. 80세 전에는 혼자서 짐을 챙겨 고속버스를 타고 오시면 시간에 맞게 남편이나 큰집 조카가 모시러 갔는데 작년부터인가 큰 시숙님이 직접 내려가 함께 올라오신다. 우락부락하고 무서운 망나니 같은 큰 시숙님이 환갑이 넘고부터는 부드럽고 잔정 많은 사람으로 변했다. 아직은 본래의 성정은 그대로일지라도 스스로 노력하고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구나 싶다. 시간은 모든 것을 퇴색시키고 연약하게 만들지만 고집 센, 불통인 아무도 못 말리는 큰 시숙님도 부드럽게 꺾이게 만드니 말이다.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우리 시댁 여자들은 며느리든, 딸이든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이 없다. 좋은 말로 능력이 있는지 몰라도 다른 말로 인생이 고단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올라오셔도 누구 하나 끼니를 챙길 자식들이 마땅치 않다. 딸들보다 아들이 최우선인 어머니는 상황이 어떠하든 제일 먼저 큰아들네에 짐을 푸신다. 그리고 다른 형제의 집에 가더라도 가신다. 한결같은 질서 유지 때문에 우리 시댁이 삐거덕거리면서도 굴러가는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집안의 어른이 바로 서고 중심이 있어야 집안이 흔들리지 않는 건 맞다. 하물며 집안도 그러한데 나라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싶다. 그만큼 리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시간이 흐를수록 확고해진다.

하지만 인생은 옳은 선택, 바른 생각 그리고 성실과 성심으로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퇴근이 제일 빠른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게 낫겠다 싶어 어머니에게 전화했는데 둘째 시숙님 사무실 구경을 갔다가 오후 5시나 되어서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고 계셨다. 큰형님에게 저녁 준비한다고 메시지 보냈더니 일 마무리하고 형님이 챙긴다고 하시기에 ’나야 뭐 그런다면 고맙지‘ 싶어 알겠다고 저녁 퇴근 후 우리 식구만 조촐하게 먹고 나니 여유롭다 느껴졌다.    

 

’어 이거 나쁘지 않은데….‘

’또? 또. 또!‘

바보 같은 부질 없는 희망이 솟아 뭔가 기대하는 나를 다잡는다. 


’자그만 치 20년이다. 바랠 걸 바래라. 한번 속고 또 속는 이 어리석은 인간아! 정녕 20년도 모자란단 말이냐! 정신 차리자! 이런 희망은 같은 반복되는 실망으로 더 큰 절망만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시지프스가 바로 나. 

시지프스는 굴러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왜 끝없이 돌을 굴려 올라갔을까? 그런 시지프스가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다가오다가도 카뮈의 해석처럼 시지프스는 신들을 부인하고 바위를 들어 올리는 뛰어난 성실성의 인간일지도 모르지만, 명절을 앞둔 소갈딱지 적은 나는 어리석고 한심한 존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현실에서 어머니의 끼니는 시지프스의 바위와 같다. 무한히 반복되는 ’무거운 짐‘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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