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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04. 2023

시댁환장곡-10화 설 전 전야제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10화 설 전 전야제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10화 설 전 전야제


 어머니가 올라오시면 ’시간의 자유‘가 사라진다. 형제가 7형제인 만큼 일정도 사정도 모두 제각각이어서 항상 언제 호출이 올지 몰라 대기상태다. 시간의 자유가 없는 것이 제일 스트레스이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기도 했고, 반 포기 상태다. 결혼 초창기에 비하면 정말 편해진 것도 사실인 데 이제는 만사가 귀찮으니 큰일이다. 일을 능숙하게 하되 마음은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라는 물음표가 없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저녁을 일찍 먹고 치우고 나니 남편이 어머니 올라오셨으니 형님네로 인사나 드리러 가자고 나선다. 아이들도 항상 할머니가 올라오시면 당연히 우리 집에 오려니, 아니면 큰아빠네로 인사하러 가려니 생각하기에 묵묵히 겉옷을 입고 따라나선다.     


형님이 어머니 저녁을 준비하신다고 하셨지만, 남편과 아이들 저녁밥을 먹여서 나선다. 퇴근 후 부랴부랴 준비하는 음식은 어수선하고 허둥지둥할 것이 뻔하기에 숟가락 숫자라도 줄이는 게 도와주는 거로 생각해서이다. 밥 안 먹고 도착했는데 이미 먹었을 때는 밥 달라고 하기가 눈치를 주지 않아도 눈치가 보인다. 시간을 정하고, 정식으로 초대하지 않는 한 끼니때를 맞추기란 어렵기에 아예 먹고 간다. 8시에 출발해 20분 거리 형님네로 향했다.      


이빨이 부실한 어머니가 롤케이크라도 사려고 근처 빵집을 갔는데 그새 없어졌다. 작년까지 있었던 빵집이 없어진 것을 보고서 버젓이 좋아했던 가게들이 하나둘 없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사는 것이 이리 팍팍해졌나 싶어 걱정된다. 근처 작은 빵 가게에서 크림빵들을 사서 형님네로 갔는데 ’아니 웬걸? ‘8시가 넘었는데 형님이 아직 퇴근 전이었다. 형님은 갑자기 일이 생겨 큰조카에게 뭐라도 사서 들어가란 부탁에 포장해 온 것이 ’주꾸미볶음‘이었다. 맛있고 먹음직한 메뉴였지만 이가 부실한 어머니에게는 쭈꾸미는 질기다. 요즘 속이 안 좋은 어머니에게 밖에서 파는 볶음요리는 맵고 자극적이다. 저녁 안 먹고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리 늦게 올 거면 챙기지도 못할 저녁을 챙긴다고나 하지나 말지.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세상 제일 바쁘니까, 항상 이런 패턴이라 새롭지도 않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접는다. 일단 사서 간 크림빵을 접시에 먼저 드리고, 그냥 있는 반찬을 꺼내 쭈꾸미를 다시 볶아서 저녁 식사를 차려드렸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회식을 하면 1차 밥 먹고, 2차 술 먹고 3차 또 술을 먹었던 때가 있었다. 요금은 회식 자체도 많지도 않지만 아무리 길어도 2차 이상 하지 않는다. 우리 시댁 식구는 모이면 3차, 4차까지 이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해마다 악순환이 끝나길 원했지만 쉽지 않았다. 


1차는 긴 운전으로 한숨 자고 일어나신 시숙님과 어머니, 우리 가족이 쭈꾸미 볶음으로 먹는 간단한 저녁이다. 2차는 허둥지둥 들어온 큰형님이 저녁에 동참하면서 소주 한 병 곁들여지면서 시작된다. 역시 안주인인 형님이 오셔서 이것저것 꺼내주시지만 이미 배가 가득 찼다. 3차는 일이 끝난 둘째 형님과 시숙님 그리고 큰조카가 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머니는 해남서 전복을 한 상자 사 오셨는지 배부르다는 사양에도 불구하고 큰 시숙님은 프라이팬 두 개에 가득 구워서 내 오신다. 정말 슬픈 건 큼지막하고 토실토실한 싱싱한 전복이 들어갈 배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이 귀한 것을 언제 먹을까 싶어 여러 개 집어삼킨다. 아깝다.  

    

내일 생각날 전복이여. 소주, 맥주, 고량주 여러 가지 술이 오고 간 후 11시가 다 되어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핑계로 먼저 일어선다. 원래 계획은 인사만 드리고 저녁 9시 30분에는 집으로 와서 10시에 세미나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집에 오니 11시 20분이었다. 속상하게 만드는 것은 힘든 집안일보다 일정이 틀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이다. 보잘것없는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주도권이 누군가에게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우울하고 절망스럽게 만든다. 과거 역사 속에서 왜 노예들이 억압된 민중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는지 이해가 되는 지점을 거기에서 찾았다.


자유는 누구에게나 정말 소중한 것이다. 

전복은 안 먹어도 좋다. 자유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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