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시를 잊은 그대에게2-오늘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정재찬 교수
제목:시를 잊은 그대에게2-오늘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정재찬 교수
시 ‘곡선의 힘’을 읽으며 연수는 시작되었다. 자동차로 남한산성을 내려오는 길에서의 경험이 시가 되었다. 남한산성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유명한 곳이고 남한산성을 가기 위해 곡선의 도로를 지나쳤을 것이다. 이것을 보며 많은 사람이 경험해도 누구는 스쳐 지나는 풍경에 불과하고 누구에게는 길과 삶이 연결되어 시가 되는구나를 느꼈다. 나의 하루와 남의 하루는 굉장히 다를 수도 있지만 비슷비슷한 하루의 일과를 보낼 것이다. 그 비슷비슷한 일상과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삶과 연결하여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했다.
곡선의 힘 (서안나)
남한산성을 내려오다
곡선으로 휘어진 길을 만난다
차가 커브를 도는 동안
세상이 한쪽으로 허물어지고
풍경도 중심을 놓아 버린다
나는 나에게서 한참 멀어져 있다
나는 곡선과 격렬하게 싸운다
나를 붙잡으려
내가 쏟아진다
커브 길을 돌아
나에게 되돌아오는
몇 초 동안
나의 슬픈 배후까지
슬쩍 열어젖히는
부드러운
곡선의 힘
정재찬 교수는 우리는 어제 살던 것처럼 오늘 살기 바란다며 세상에 그것만큼 편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로 순식간에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오늘의 일상은 과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고 그리고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요즘의 막연한 우울증의 원인을 찾았다.
나이가 40이 넘어서면서 언제부터인지 나의 기도는 오늘도 하루 무사히 보낸 감사와 내일도 오늘처럼 무사하길 바라는 기도가 많아졌다. 오랜 간만 반가운 지인이 걸려온 전화통화에 “잘지내? 별일은 없고?” 물음에 “어.. 감사하게도 별일 없이 잘 지냈지.” 대답을 한다. 이제는 재미는 없고 새로운 일은 없지만, 일상이 흔들리지 않는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더 나아지길 희망하지만, 더 나빠지지 않고 현재를 유지하는 삶을 더 선호한다. 이런 것이 보수, 기성세대, 꼰대라고 하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강의에서 어제 살 듯이 오늘 살면서 내일이 변화되는 걸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고 변화를 바란다면 s자 커브 곡선을 타야 하며 기존에 살던 방향과 그동안의 관성에 맞서 싸우고 무게중심을 잃고 곡선과 격렬하게 대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변화를 원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변화가 필요하고 개선도 되고 발전도 필요하지만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살고 싶지가 않았다. 강의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 유효한 것이 아닌가? 나는 변화를 원하지 않을 만큼 현재를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변화에 적응 못하는 고인 물이 되고 있나? 편한 것을 익숙한 것을 매일 꾸준히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지 않은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강의는 정말 좋았고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사회가 사람들이 너무 변화에만 몰두하고 오늘은 어제보다 새로운 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조금은 반감이 들었다. 재미없고 발전이 없어 보여도 항상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있는 사람들도 남아 있으면 좋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의는 생각 없이 관성 같은 일상에 일침을 주는 강의였지만 나는 ‘변화’라는 말에 꽂혀 전혀 다른 상상의 나래와 논리를 펼쳐나갔다. 나의 이런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꼭 수업 중 딴생각하다 걸린 느낌이라고 할까? 온라인 연수도 수업이라고 중간중간 딴 생각과 딴 짓은 꼭 있다고 생각하며 연수를 마무리했다.
어제 살 듯이 오늘 사는 것
작년 살 듯이 올해 사는 것
이것만큼 편한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