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15-볼펜 한 자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만

사진일기15-2021.5.4.-볼펜 한 자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만

by 제대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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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볼펜 한 자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만큼만


4월은 거리거리 온갖 꽃으로 봄의 절정에 이르러 코로나가 다시 확산으로 방역 당국의 우려와 걱정에도 사람들의 꽃구경을 막지 못한다. 그러나 고등학생인 딸에게는 중간고사라는 그늘에 봄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롯이 만끽하기가 어렵다. 그러한 현실은 비단 딸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것도 아니다. 4월 30일 금요일 시험이 끝나 홀가분해진 딸과 어머니 생신 겸 어버이날에 딸의 시험 끝남과 바람 씌는 것까지 추가되어 해남 시골집에 내려갔다.


7남매 형제라서 연휴나 때가 되면 해남 고향 집은 복작복작한대 코로나 여파로 남편, 나, 그리고 딸, 어머니 달랑 넷이서 주말을 보낸다. 토요일 저녁 일찌감치 먹고 작은방에 큰 상하나 펴고 나는 과제와 줌 세미나를 하고 딸은 시험 때문에 밀린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도 하고 잡지도 보고 자유시간을 가진다. 옆에서 딸이 자신이 쓰는 볼펜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한다면서 엄마가 한번 써보라고 건넨다. 나는 내가 하던 것을 멈추지 않은 채 ‘요즘 흔하디흔한 게 볼펜이고 펜이다. 그냥 고민하지 말고 버려’ 무심히 던진 말에 딸은 ‘나도 아는데 내가 좀 그런 강박감이 있나 봐, 끝까지 쓰고 싶은 막 그런 거…. 끝까지 잘 못 쓰면서 말이야.’


딸은 본인의 그런 생각이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된다고 말하며 학습플래너를 건넨다. 딸은 공부를 한 시간만큼 시간당 정한 금액을 현금으로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딸 계좌에 입금한다. 어느 책에선가 교육학자가 보상을 바라는 학습은 교육적으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했던 것을 읽었던 거 같다. 딸에게 우리의 방법이 교육적으로 좋은 건 아니라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딸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딸은 지금 이 방법이 좋다고 한다. 학생의 주 업무는 공부니까 본업인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이유가 공부에도 도움이 도고, 돈도 생겨서 좋다고 한다. 그리고 딸은 계좌에 돈이 비거나 뭔가 사고 싶은 것이 생기면 공부 좀 해서 돈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4월은 중간고사라서 어쩔 수 없이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해서 엄마 부담이 클 거라며 부담되면 나눠서 입금해도 된다고 인심을 쓴다. 공부 시간이 카운트되고 금액이 계산된 학습플래너에 날짜를 기입하고 사인을 함으로 나름의 형식으로 마무리되는데 마지막 칸에 눈길이 멈췄다.


“무기력, 무 삶 4월 끝내기”


그 한 문장에서 4월 한 달 대한민국 인문계고등학생의 현실이 보였다. 시험 앞에서의 무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기력을 배운다. 그리고 4월 한 달 내내 수행과 지필 평가 준비로 빡빡한 일상은 무 삶(無生)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현실에 무력하고 뾰족한 수가 없다. 그저 괜찮다고, 길은 많다고, 인생 길다고 공감되지 않는 말들만 늘어놓을 뿐이다. 딸의 한 문장에 화살표를 붙여 위로를 건넨다.


“4월도 의미가 있어. 무기력을 깨달았으니까 말이야.”




볼펜 한 자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만큼만 –이애리-


엄마!

왜?


엄마, 이 볼펜 잘 나오는지 봐줄래?

왜?


내가 쓰면 잘 안 나와서 그래.

이리 줘봐.


푸른색 노트에 볼펜으로 끄적끄적

건너온 노트에 볼펜의 흔적들


엄마는 잘 써지는데

볼펜이 문제니?

네가 문제니?


살다 보면

남한테는 문제없을 때도

나에게만 문제가 될 때가 있지


그럴 때 어떡하냐고?

문제가 생기면 그냥 쓰지 마

볼펜 한 자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만큼만

인생을 누리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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