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25-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021.5.21.-사진일기25-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by 제대로 삶
일기-사진-25-2021.5.26.jpg

사진일기25-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1-2021.5.26.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부록편, 유승호, 민음사>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글을 쓰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대를 떠나서 항상 떠오르는 화두이다. 시창작연습 수업에서 반어, 아이러니에 대한 토론과제를 하면서 유승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1989년 처음 1쇄를 찍었으니 책이 나온 지 30년도 넘었다.


지금과 어색한 단어들도 눈에 띄었지만 가르침의 현장에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어 지금은 토론과제를 위해 한 부분만 보지만 나중에는 시간을 내어 책을 정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학적 기초가 약한 나에게 뼈대가 되어 줄 것만 같은 희망도 보인다. 아쉬워서 책 서문과 마지막 부록 부분을 읽었는데 부록에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쓸 것인가’에 대해 ‘젊은 문학 독자를 위하여’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다음은 그 부록을 발췌한 부분이고 파란색 글씨는 그에 대한 느낌과 감상을 덧붙인 것이다.


즐길 수 있는 책부터(p395~)

스스로 고전이란 이름에 값하는 책을 써낸 독서의 대가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많이 읽고 꼼꼼히 읽으라는 것이다. 다독과 정독에 으레 곁들이는 충고는 또 정평 있는 고전을 읽으라는 것이다. 어차피 번역을 통해서 읽을 터인데 번역된 시는 시 본래의 모습이 훼손된 채 뜻만을 전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을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고 왜 좋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나 자기 감수성에 대한 공연한 열등감을 안게 되기가 십상이다.


문학 독서의 첫걸음은 각자의 수준에 알맞은 정평 있는 작품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준에 알맞다는 것은 진정으로 즐길 수 있어서 책 읽기가 몰아적 집중을 뜻하는 그러한 책을 말한다. 책이 너무 쉬우면 이러한 몰아적 집중이나 향수가 불가능하다. 얼마쯤의 지적인 도전 없이 우리의 흥미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어렵거나 수준에 걸맞지 않으면 이내 염증이 생기고 그다음엔 재미없는 교과서 읽기처럼 교역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자기 감수성에 정직하고 충실하게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을 골라잡아야 할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세계를 읽는 것이며 책의 이해는 세계 이해이기도 하다. 세계 이해의 충돌 속에는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세계 속에서의 설 자리와 갈 길 모색의 욕구가 내재해 있다. 특히 젊은 날의 독서는 삶의 모색과 겹쳐 있으며 그러한 한에서 세계 속에서 더불어 살고 있는 타자에 대해서 완전히 냉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타자의 존재와 암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것은 책 읽기라는 극히 개인적인 행위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타자의 암시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책과 씨름하면서 자기 부가적 중노동을 감수한다는 것은 갈데없는 자기기만이며 공허한 내면성의 무력한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기만의 지속적인 실천과 축적은 속물주의를 공고하게 내면화시켜 주기는 하지만 책 읽기의 즐거움이란 행복 세목의 아까운 포기를 빚고 말 것이다. 어느 정도의 지적 허영과 자기기만은 젊은이의 것이고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기기만의 유혹에 대한 자각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고 그 정도를 낮추는 데 필수적이다. 지적 유행에 대해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군중 있는 곳에 허위가 있다는 것은 철인 키에르케고르의 통찰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 생각해본다.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30분 일찍 등교시키고 아침 조회를 생략하고 아침 독서 시간을 운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독서 습관을 길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그때 기억나는 것이 범우사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가지고 가서 읽었다. 몹시 어렵고 두꺼운 책을 가지고 다 읽는 것만으로 지적인 허영심이 채워졌던 거 같다. 다음 날 아침, 어제에 이어 읽을라치면 ‘어제 내가 읽었나?’ 싶을 정도로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만도 버거웠지만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주인공 이름을 내가 외운다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겼다. 하지만 나의 지적인 수준과 흥미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고백한다.


나에게 적당한 책을 고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것도 아니고 읽기 전에는 알기가 어려운 일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좋은 책으로 인정받은 책과 나의 관심 분야의 책들을 읽되 일단은 많은 책을 읽으려고 시도해봐야 할 것 같다. 중간에 포기하고 접더라도 나 자신을 자책하지 않도록 마음먹는다.


그 후 20대에도 교보문고를 갈 일이 있으면 읽지도 못할 두꺼운 책과 어려운 책을 다른 책 사면서 슬쩍 끼워 사서 들어오는 버릇은 여전하다. 지금은 꼭 읽을 것만 사려고 하지만 도서관에 가서 읽지도 않을 책들을 빌리느라 남편과 애들의 짐만 늘리는 것도 여전하다. 읽을 책 한 권만 가지고 다니자고 다짐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서일기8-북리뷰-구글 클래스룸 무작정 따라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