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27.-사진일기25-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나의 독서생활
사진일기25-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나의 독서생활을 반성하며-2021.5.27.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부록편, 유승호, 민음사>
우리 문학부터(p397~)-
말에 대한 민감성은 당연히 제1언어 혹은 모국어 속에서 길러지고 또 발휘된다. 학습과 훈련에 의해서 외국어 속에서도 말에 대한 남다른 민감성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1언어 속에서 발휘되는 언어 재능이 다시 외국어 속으로 이동해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제1언어가 어디까지나 본거지인 것이다.(p398)
-모국어의 중요성은 문학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동의한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외국번역서 위주의 독서를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고대의 문예 작품은 그렇다 치고 근현대 단편소설뿐만 아니라 문제시되고 정전인 한국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음을 인정해야했다. 글을 쓰지 못한다는 그간의 고백은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반증이며 모국어인 한글로 잘 쓰인 문학의 전범을 아직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정시는 압축, 생략, 비약, 암시 등을 동원하여 소재의 경제적 처리를 도모하기 때문에 특유의 밀도와 함께 독자로 하여금 의미의 이모저모를 검토하게 하는 모호성 혹은 다의성을 띠우게 된다. 또 말뜻뿐만이 아니고 말소리 자체에도 독자의 주의를 당기면서 운율과 음률성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시에 친숙하여 뜻과 소리가 어울리는 말의 음악을 향수하는 것은 산문 문체를 음미하고 향유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p400)
-시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시를 읽지도 시를 쓰지도 못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집중에서 글을 꼼꼼히 읽는 경험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읽으면서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며 그 의미를 구하는 작업에 동참하게 한다. 시인이 목표가 아니어도 시는 충분히 삶을 반성적으로 바라보는데 그리고 사람과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에서 과거로 향하는 한국의 시인들의 시들을 천천히 읽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번 주 시 과제는 시작도 못했고 아직 이번학기 기말과제가 남아있는데 나는 어느새 6월 중순으로 가있다.
서사문학의 일차적인 관심이 얘기임은 누구나 알고 바대로다. 얘기의 중심부에는 대개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사람과 환경과의 갈등 혹은 개인 내부의 상충되는 욕구의 갈등 등이 이를테면 얘기의 발단이며 그것이 어떻게 충돌하고 해결되느냐 하는 것을 얘기는 들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등장인물과 인물의 행동과 거기서 빚어지는 얘기와 묘사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문체이다. 문체는 결코 수사적 장식이나 효과를 내기 위한 덧붙임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이자 실감이다. 단순히 줄거리나 사건 전개와 귀결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은 서투르고 피사적인 소설독법이다. 소재 처리의 방식, 묘사와 대화,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 중요한 것은 빼놓지 않으며 중요하지 않은 것은 들여놓지 않는다는 세목 선택과 플롯, 그리고 문체의 세심한 음미를 통해서 소설의 이해는 원만해진다.
얘기꾼의 경우 입심이 설득력과 재미의 원천이 되어있듯이 소설의 재미와 설득력은 사실은 문체에서 온다. 자기의 문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작가는 온전한 작가가 아니다. 문체에 대한 안목은 사실상 시에 대한 안목과 같다. 필자의 관찰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시에 대한 적정한 안목을 가진 작가는 대개 독자적인 문체의 소유자이다. 이에 대해서 문체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대체로 시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p400)
우리의 근대소설이나 단편 가운데서 기억할 만한 것들이 그 문체와 문장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강조해 두어도 좋다. 요컨대 문학의 언어예술성을 시와 문체를 통해서 실감하고 체득하고 흡수하는 것은 제1언어 문학을 접하고 그것과 친숙해짐으로써 가능하며 온전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근대의 우리 문학작품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중요하고 자연스럽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번역된 외국 시나 소설에서 출발함으로써 미로로 접어들고 문학의 예술성에 눈과 귀가 멀어지는 것은 흔히 목도되는 정경이다.
-비문학전공자들은 한국근대문학은 수능시험과 동시에 안녕을 고한다. 식민지시대와 전쟁을 경험하지 않아서인지 역사적 경험과 인식이 부족하고 90년대 대학생활에서 문학동아리는 온통 마르크스나 분단과 통일을 이야기하고 노동운동과 민주화가 화두였다.
나는 역사적 대의나 시대정신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빨리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런 현실적 요구가 더 컸던 나에게 식민지현실과 분단의 아픔, 5월의 광주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문학에서 나는 나대로 소외감을 느끼며 전공서적과 외국번역서에 몰두했던 거 같다. 전공서적은 나에게 안정된 직장을 이야기했고 외국번역서는 읽는 동안 개인의 삶과 자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그런 내가 글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있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나무가 흔들린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뿌리를 단단히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계절처럼 빨리 봄이 와서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예쁘다, 좋다는 말도 싶고, 열매를 맺어 그 결실을 거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쌓아놓은 것도 없이 깊게 뿌리를 딛고 있지 않으면 섣부른 봄에 꽃도 열매도 맺지만 그 다음해는 어찌 될까하는 생각에 이른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를 되돌아본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주어진 과제를 했을 뿐이다. 실은 그것도 무지 버겁다. 앞으로 다가오는 6, 7, 8월은 한국근대문학작품과 시를 읽기 시작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작가와 시인을 선택해서 읽다보면 작품 속에 녹아있는 문체라는 것을 음미하며 나만의 지문 같은 문체를 형성할 수 있을 가능성에 접근하지 않을까? 지금 집을 짓기 위해 기둥을 세우는 기초 작업을 할 때가 아니라 땅을 다지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