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3-동시, 동시의 문법을 녹여낸 현대시 창작하기

by 제대로 삶

이번 과제는 주제는 동시지만 현대시 속의 동시로 범위를 좁혀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는 흉내 내어 쓸 수는 있지만 동심이나 어떤 사물을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더 어려웠다.

전체피드백을 주셨는데 동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현대시쓰기와 다르게 전략적으로 접근하라는 메시지와 동시 시단에서는 현대시와 동시의 경계성에 대한 논쟁이 아직까지도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논의에 대한 생각도 하고 나름의 의견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논쟁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은 자신의 선호와 신념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송찬호 시인등 현대시와 동시의 해묵은 경계를 깨고 있는 좋은 전범을 찾아서 자신만의 시로 넘어서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아직은 요원해보이지만 좋은 시인의 좋은 시를 많이 읽는 것이 답이라 느꼈다. 요즘 느끼는 것이지만 질문은 다양한데 답은 항상 같았다.

다음은 피드백을 요약하고 나름의 나의 느낌을 첨부한 부분이다.

첫 번째, 딸아이가 말을 배우고 나서 하는 말들이 대부분 ‘동시’였다며 아이의 말을 채록하여 옮기는 것이 일차적으로 동시라고 하셨다. 선과 악, 원인과 결과 따위의 윤리와 도덕의 준칙이나 범주화된 세계가 동시에는 존재하지 않아 ‘순수악’의 세계까지도, 지독한 환상에 가까운 주제까지도 동시의 세계에 포함된다고 하셨다. 동시의 세계는 막연하게 아이의 눈동자처럼 순수함이라 생각했는데 경계가 지어지지 않는, 지을 수도 없는 무한의 세계처럼 다가왔고 자유로운 세계 같아 보이지만 나는 너무 멀리 떠나왔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동시는 ‘말맛’과 관계되는 가장 원초적인 노래에 가깝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는 모두 동시였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윤극영의 <반달>이 사실은 먼저 죽은 ‘누나’에게 바치는 동시였다며 동시를 통해서 다룰 수 있는 주제의 범위가 무한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동시의 문법을 투과하면 이처럼 ‘커다랗고 맑은 슬픔’을 자아낼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그동안 어머니의 죽음의 문제를 슬픔, 운명, 상실이라는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치유의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자기 치유’만이 유일한 목적일 수 없다는 것도 주관적 경험을 보편적 경험과 감정으로 발전되어야만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치유와 깨달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젠 인정하게 되었다.

슬픔까지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동시가 매력적이다. 동시는 그래서 힘들고 희망 없는 삶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다음은 동시 퇴고 포인트 피드백이다. 헷갈리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잘 바로잡아 주는 지침이라 생각한다.

첫째, 제목의 문제입니다. 제목은 즉시적이고 명징한 효과를 드러낼 수 있는 제목이어야 합니다. 둘째, 반복의 문제. 반복은 시와 다르게, 말 그대로 ‘의미 없는 흥얼거림’과 같은 의미 외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반복이어야 합니다.

셋째, 동화의 문제. 동심으로 돌아가 쓰는 시가 동시는 아닙니다. 이 문제는 강의 시간에서도 충분히 이야기 되었지요. 일반 서정시를 지배하는 문법인 가장성(假裝性, disguise) 보다는 자동기술(automation)이 동시의 주된 문법입니다.

넷째, 시를 장악하는 주체가 아니라, 문장을 발화하는 투명한 자아가 도드라져야 합니다.

-시창작수업 시 피드백 중 발췌, 신동옥

개인적으로 이번 과제가 제일 어려웠지만 제일 의미 있었다. 처음에는 무례하게도 시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하고 있는데 왠지 시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시과제를 앞에 두고 어린이의 목소리가 느껴지는 동시를 쓰기가 생각만큼 쉽지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그만큼 나의 삶이 동심과 순수함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왔다는 반증이란 생각했다.

이번 동시 과제는 동시를 쓰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좋았던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기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사진을 보고 추억을 떠올리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글쓰기 소재 전부이고 그리움의 정서가 대부분인 나의 모든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으로 한계가 많은데 시를 읽고 쓰면서 새로운 나를 재발견하게 되는 경험이 되었다.

과거의 어느 시간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는데 그 아이는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존재로 느껴졌다. 객관화된 시적 자아를 만나는 경험은 자유로움을 주고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도 깨달은 것 같다. 시를 잘 쓰면 좋겠지만 시를 통해 삶을 내 자신을 바라보는 도구가 생긴 것이 더 좋았다. 그곳에선 아프고 죽은 사람이 아닌 매일의 일상이 살아 움직이는 어머니를 만나

그리움도 상실의 아픔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행복했던 그 마음 때문에 시와 함께 하는 이유를 찾은 거 같다. 이번 학기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 철물점 하시고, 어머니 김 재신다. 이애리

아버지는

한겨울 새벽 5시, 손님 두드리기 전 가게 문 열고

천장 끝 매달린 백열등 불 켜며 아침 맞이한다.


어머니는

한추위 부스스한 머리 매만지고 나와 바스락 밥 짓는다.

찬바람, 손과 함께 누워있는 뜨끈한 요 이불 밑으로

목숨 수(壽) 한자 눌려져 뜨겁게 들어온 스텐밥그릇

장판지 아랫목 이부자리 밑바닥에서 묵직하게 전해오는

옆구리 밥그릇만한 뭉클함 느끼며 돌아눕는다.


선한잠, 이불속 웅크리고 귀만 쫑긋

서걱서걱, 김 솔 김을 쓱쓱 쓸어내리는 소리

반질반질, 참기름 지나가 소금 착착 김 쌓여 간다.

꾹꾹 눌리며 투박한 손바닥 주름에 하루 스며든다.


그리움, 희미해지는 시간도

곤로에 고개 숙여 후딱 굽고 진동하던 참기름 내는

아직도 생생한 게 침이 고인다.


어렸던, 겨울 아침

아버지 철물점 하시고, 어머니 김 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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