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학기 종강을 마치고 결과가 어떠하든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딸과 예쁜 옷도 구경하고 쇼핑도 하고 사고 싶었던 운동화도 사고 일주일이면 이 홀가분 기분도 잠잠해지겠지만 마음껏 최대한 누리고 싶었다.
공부가 주업도 아니고, 가족들에게 공부한다고 힘들다고 하면 누가 하라고 했냐는 말이라도 돌아올까 싶어 그냥 조용히 살았던 거 같다.
공부가 죄가 아닌데도 업무에 지장이 가거나 소홀하다는 얘기 듣기 싫어 더 묵묵히 일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최대한 자투리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고 점심시간을 과제 하는 데 사용했다.
과제구상도 하고 자료도 읽는 시간으로 보내서 과제를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하루 한 시간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진리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주말에는 외부약속을 피하고 책을 읽으며 지냈던 거 같다. 다행히 코로나 위험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어서 가능하기도 했다.
10대부터 20대까지는 주변에서 ‘네 꿈이 뭐니? 앞으로 뭐하고 싶니? 어떻게 살고 싶니?’ 그런 질문을 많이 받은 거 같다.
그때는 그런 질문들이 오지랖이고 영혼 없는 질문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나이 때의 특권과도 같은 이니셜같은 질문 같기도 하다.
아무도 나에게 정년 이후 뭐할 거니? 노후는 준비가 잘 되었는지에 관해 묻지 지금 꿈이 뭔지 그리고 과거에 뭘 하고 싶어했는지도 묻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그들은 탓할 생각은 추호도 맞다.
그리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내 자식들도 엄마의 꿈이나 소망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세대는 50대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직장의 마무리이고 노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지 20대처럼 뭔가 새로운 도전과 열정을 연결하지는 않는 거 같다.
여기 70대 노인이 있다.
과거 아버지 사업차 러시아에 갔다가 러시아발레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된다. 얼마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곧이어 6·25전쟁이 일어나고 피난길에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그때부터 동생들을 책임지는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주인공이 된다.
평생 우편배달공무원으로 형제와 가족들을 부양해서 정년 후 소일거리로 살아가는 노인에게 치매가 찾아오면서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하고 싶었던 꿈으로만 간직한 발레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시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뜨근뜨근했다.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는 않는 상황에서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족들은 반대해도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하는 사람은 나이를 떠나서 그 결과를 떠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무모해 보이는 한 할아버지의 이상한 도전으로 채록이라는 청년은 자기가 하는 발레의 의미를 찾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가족들도 아버지의 치매로 인해 그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동안 노고로 자신들이 살아왔음을 느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으로 설명되고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과 진정으로 대하는 관계는 이성적인 판단과 경제적 논리를 뛰어넘는다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든다.
시간이 흘러도 늙지 않고, 몸은 전혀 녹슬지 않으며 머리는 항상 맑기만 하다면 우리의 인생은 과연 행복할까? 그 불행과 아픔이 슬픈 현실임에는 맞지만 그러한 역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들이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삶에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불행과 슬픔도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도 한다. 종강 후 남는 점심시간에 천천히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가며 노트 필기해가며 읽었다.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만화책이어서 책을 싫어하는 친구들도 진입장벽이 크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글로만 되어있는 책들보다 진심이 담겨있어서 진한 여운을 가져다준다.
심덕출 할아버지의 꿈을 응원해주는 이채록, 발레학원 원장님, 가족들이 있기에 치매에 걸린 마지막 생의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그의 인생에서 제일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이 되었다.
거기에서 나는 메시지를 움켜쥐었다.
진심으로 세상 모든 사람의 꿈을 응원하는 저녁이다.
다음은 내 마음을 뜨뜨하게 만든 그림과 글이다. 90도로 인사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내가 진심으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노력한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하게 했다.
굳은 몸으로 발레를 해서 온 몸이 아파 파스를 붙여달라고 하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 말에서 나를 발견했다. 내리는 빗속에서 벽에 기댄 채록이가 ‘안 힘들다’는 말에서 이게 진짜 아이러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진심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변하는지 대사를 메모하고 핸드폰에 저장했다.
만화의 힘을 느낀 일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