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34_집안일1_삶다_2021.6.28.
2021년 상반기 겉으로는 바쁘다는 핑계를 내세우고 속으로는 귀찮고 싫어 집안일을 내팽겨 놓고 살았다. 2021년 1월부터 6월까지 결혼생활 21년 동안 집안일을 제일 소홀히 하며 보낸 나의 심리를 살펴보고 내 생의 절반과 함께 해온 집안일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집안일에 대한 방향도 잡아보자고 마음먹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그 반복이라는 것 때문에 의미를 구하기도 얻기도 어려울 때가 많다.
매일 똑같이 펼쳐지는 집안의 풍경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매일 일상의 사소한 감정들과 맞물려 집안일이
라는 행위로 표현되면서 ‘하찮은 일’로 전락하거나 평생 ‘직업’으로 연결되거나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예술’이 되기도 한다.
집안일 대부분은 우리에게 매일이 주어지는 한 무한 반복된다는 성격이 강하다.
그중에 최고가 빨래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매일아침 일어나 세수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겉옷을 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수건 한 장, 속옷 한 벌은 소비하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군복무 중이라 한명이 줄어 남편과 딸과 나 이렇게 셋만 있는데도 빨래의 양은 줄지가 않는다.
매일 세탁기를 돌려야 할 만큼의 세탁물이 우리가 매일 밥을 먹듯이 어김없이 나온다.
건조기가 있어 빨래를 너는 수고는 줄어들었어도 건조기에 나온 빨래를 그때그때 개지를 못해 침대위에 쌓아간다.
하루 이틀 제때 개서 각자의 자리에 넣어놓지 않으면 어느새 개야할 빨래는 산더미처럼 쌓인다.
집안일이 쌓여진다면 집안일의 그 양 자체의 문제나 가전제품 기계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집안일이 다른 직장업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빨래를 해서 말리고 개어 제자리에 놓아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꺼내어져서 다시 세탁물로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일의 성과를 체 느끼기도 전에 일이 되어 오는 집안일은 끝없이 돌고 도는 뫼비우스 띠 같고 시지프의 신화에서처럼 굴러 떨어지는 돌덩이 같기도 하다.
일단 내가 그때그때 하지 못하면 빨래는 점점 더 쌓여간다.
급기야 수건과 속옷을 쌓여진 빨래더미에서 찾아 쓰기 시작하는 상태가 되면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쌓아올려진 빨래에는 가족 누구도 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바쁘거나 나 아닌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미루는 습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야무지게 개지 못하는 남편을 시키느니 힘들어도 내가 해야 마음이 찾던 것이 내 몫으로 남아 버렸다. 이제는 집안일보다 다른 일이 더 좋아졌다고 하는 편이 맞다 생각한다.
다른 일이라 함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분야에 차근차근 소소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집안일까지 할 에너지와 시간이 허락해주면 금상첨하지만 내 체력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집안일은 내 우선순위에 밀려나게 된다.
종강이 끝나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7월에 머리를 비운다는 심정으로 대청소도 하고 가지고 있는 짐들을 정리하고자 마음먹는다.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 혼자하기 힘들다, 가족구성원들이 동등하게 분담해야한다는 가정의 민주주의를 논하고 페미니즘 사고를 끌어와서 집안일을 논하려고 하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단어에서 사회적인 개념으로서 여성성, 젠더개념이 이미 들어가 있는 것처럼 집안일 그 자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논의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남편은 하루 한 시간, 딸은 하루 30분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시간적으로는 1시간 30분이지만 신기하게도 나에게 3시간정도의 여유시간이 생기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한번 동참해 달라고 건의해보려 한다.
강요할 생각은 없다.
나도 내가 생각하는 우선순위를 포기하고 집안일을 일순위로 둘 생각은 이제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달라진 것은 전에는 나만 집안일이 최우선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족 모두가 차선의 순위를 두고 생활하자는 것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모두가 행복할 것인지 불편한 환경에서 조금씩 불쾌한 것을 참으며 살 건인지는 가족들 몫으로 남겨놓을 예정이다.
나만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 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생각한다.
‘삶다’라는 말을 사전을 찾아보면 ‘물을 넣어 끓이다’라고 쓰여 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건조는 건조기가 해주어 훨씬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탁기를 돌리면서 ‘돌린다’라고 하지 ‘삶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세탁기에 살균세탁이나 삶은 기능이 포함되어 있어도 말이다.
분리되지 않고 돌려진 세탁물에서 본연의 흰색을 잃어버린 런닝을 한곳에 모아놓는다.
일찍 일어난 어느 평일 아침 이제는 가보가 되어버린 스텐대아를 꺼내 세제와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넣고 가스 불에 올려놓는다.
한 시간 넘게 푹푹 삶아진다.
물이 갈색 빛으로 변해갈수록 빨래는 뽀얗게 변한다.
종일 와이셔츠 안에서 남편의 애간장이 녹아 그 갈색 때들이 런닝에 물들었으리라 생각되었다.
수고하고 애쓴 런닝의 때를 삶아 빼낸다.
가끔은 이렇게 아날로그 식으로 빨래를 하고 삶는 과정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손과 발이 물에 담가져 비비고 조물거리고 헹구어지는 그 느낌이 허리와 손아귀가 아프지만 세탁기와 건조기가 가져다주지 못하는 묘한 느낌을 선사하는 것도 같다.
헹굼과 탈수만 다시 해서 탁탁 털어 옷걸이에 걸어 햇빛에 말린다.
햇볕에 다림질하듯이 빳빳이 말려지고 다시 새하애진 런닝은 잠시라도 뿌듯하게 만든다.
그리고 빨래 삶기와 함께 글거리도 하나 건진다.
빨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