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_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by 제대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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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17_북리뷰_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_2021.7.8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제목만으로도 청춘 소설의 냄새가 난다. 책 속의 고등학생인 남자주인공 가미야 도루와 여자주인공 히노 마오리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생각나고 대만의 청춘 드라마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만큼 풋풋하고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시절의 순수한 시기를 그리고 있다.

평범하고 내성적인 누나는 집을 나가 아버지와 단둘이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소년 가미야 도루는 사고로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소녀 히노 마오리를 만나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루는 같은 반 친구의 괴롭힘을 막고자 히노에게 거짓 고백을 하면서 가짜 연애를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인 고등학생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 여자주인공의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 마지막의 안타까운 이별이라는 결말은 상투적이다를 훨씬 뛰어넘고 너무 진부한 소재가 아닌가 싶었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미 많이 이야기되었던 소재와 구성을 어떻게 새로운 서사로 만들어질지가 궁금했던 부분이 더 컸다.

인생에 있어서 사랑은 삶을 참으로 풍성하게 만든다. 사랑에 빠지면 불완전하고 무능력한 사람도 특별해지고 건조한 일상은 빛을 만들어 낸다. 언제부터인가 성적이, 성과와, 성공에 매몰되면서 우리에게 사랑은 지나가는 구름처럼 ‘한때’라는 과거의 이름으로, 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비어있는 것으로, 이젠 기억도 희미한 추억으로 앞으로 내 인생에서는 다시는 오지 않을 그런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중년 이후의 사랑은 불륜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인터넷 검색창에 유사어로 같이 검색되는 것처럼 순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책이란 것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타임머신이니까 말이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을 읽으며 엄청난 깨달음이나 뜨거운 사랑의 에피소드는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남자주인공 가미야 도루의 위생감과 다정함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보다 ‘다정함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정함이란 모든 것이 휘발되는 하루에서 상대방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너의 즐거운 하루에 한몫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다음은 이 책의 내용과 주인공들을 느껴지는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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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병이 있어.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건데.

밤에 자고 나면 잊어버리거든.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p102

오늘 있을 일도 수첩과 일기에 적어놓지 않으면..... 사라져버리겠지만

p104

기억이 하루 이상 남아 있지 못해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정보로만 알아도,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고 그 사람에게 나와 함께 보낸 기억이 있으면 이렇게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봐준다.

p105

선행성 기억상실증,

간단히 말해 새로운 기억을 축적하지 못하는 장애이다.

사고로 뇌에 충격을 받은 결과 기억을 축적하는 시스템이 멈추어 기능하지 않았다.

축적되지 않는 하루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여자 친구의 기억장애를 알게 되었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알려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날의 일기에 쓰지 말라고 하는 게 가능할까?

사랑하는 마음은 알 거 같지만 다정함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p117

우리 아버지가 그러더라. 잘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게 훨씬 쉽지 않다고. 그러니까 가미야 넌 남들이 말하는 잘난 사람보다 훨씬 훌륭해. 이런 말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고생하지만 비뚤어지지 않았어. 이것도 아버지가 한 말인데, 고생한 사람은 대개 비굴해지거나 성격이 나빠진대. 그런데 넌 다정하거든. 아주 많이.

p176

“응. 매일매일 그 애를 즐겁게 해주고 싶고 같이 기뻐하고 싶어. 그 애는 매일 일기를 쓰는데, 그 일기를 즐거운 이야기로 채워주고 싶어. 그 애가 매일 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p243

우리 부자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두 사람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현실은 픽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현실은 언제나 이렇게 건조하고 당황스럽다. 주저앉아 꼼짝도 못 한다.

p283

그렇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히노랑 보내는 하루하루가 즐거워. 약간 무리해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 히노가 나를 놀라게 하고 다시 보게 해줘. 이런 나도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해주거든.

p287

졸업증서를 들고 신나서 떠드는 마오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현실을, 자기 상태를 인식해야 해도.

그런 상태로도 고등학교를 계속 다녀 졸업했다는 사실이 있다면.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잇는 일기가 있다면.

p342

다만 그렇게 모든 것을 잊어버렸던 나 자신에게 경악했다.

소중했던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린 나 자신에게 할 말을 잃었다.

p362

어떤 슬픔도 사람은 언젠가 잊어버린다. 상처는 언제까지고 아픈 것은 아니다.

도루의 누나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도 아플 때는 울자고 생각했다.

상관없다. 울보면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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