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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Jul 22. 2021

공부일기1__서사학 강의_8장

8장 서사 해석의 세 가지 방법

공부일기1__서사학 강의_8장 서사 해석의 세 가지 방법, H.포터 애벗


방학기간 다시 서사학 강의 책을 집어든다. 7월, 8월 마무리하자고 다짐한다.

정말이지 한글로 번역한 것이 영어보다 어렵다고 말하면 남들은 내가 영어를 잘 하는 줄 알고 오해할 것 같다. 이책의 본래의 목표는 쉽게 번역해서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해되다가 다시 헷갈리는 읽기였다.


이해가 목적이 아닌 끝까지 읽기가 목적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문학전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 장을 읽을 때마다 일깨워 준 책이기도 하다. 4장까지는 좀 좌절비슷한 마음도 들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왜 이렇게 진지한거지? 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함께 읽는 이들과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끝까지 읽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언제가는 이해가 되는 날이 우리에게도 찾아올 날이 있을거라며 끝까지 읽기로 한다.

다음은(검은색 부분) 서사학 강의 8장의 주요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이해를 잘 못했기에 그에 대한 의견이나 설명을 첨부 할 수는 없다. 다만 다음에 다시 읽으면 지금보다 더 많이 이해하리라 믿는다.


서사를 해석하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다음 세가지 근본적인 접근 방식 가운데 하나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

의도를 헤아리면 읽는 방법(intentional)

징후적인 읽기 방법(symptomatic)

적용하며 읽는 방법(adaptive)


서사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요소들이 서사의 의미를 구성하고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통합체’라는 사실이다.

해석은 텍스트의 전체 의미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사의 모든 부분과 ‘합치하는’ 해석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서사는 틈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의 다수성을 불가피하다.


의도를 헤아리며 읽기


내포저자에 초점을 맞추고 작품을 읽는 방식은 서사의 배후에 단일한 창조적 감수성을 지닌 실체가 숨어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성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감수성을 지닌 실체는 사건, 서술 순서, 포함되는 인물들, 언어, 숏의 연결 등을 선별하면서 만들어간다. 서사를 이러한 방식으로 읽어나갈 때, 우리는 의도를 헤아리는 읽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도를 찾는 해석은 서사를 통합체로 간주하고 그 이면에 있는 의도를 파악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읽기를 바탕으로 하면서 읽기의 효용성을 옹호하는 방법을 취한다. 만일 이러한 해석 방식의 타당성이 가치가 있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법칙과 내포저자는 유용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징후적 읽기


의도를 헤아리는 읽기와는 다른 해석을 허용하는 프레임 내에 텍스트를 위치시켰다는 것이다. 이 프레임이야말로-심리학, 페미니즘, 문화유물론, 보수적인 도덕주의 등등-독자들에게 내포저자와는 다른 해석의 근거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종류의 독해를 징후적 읽기라고 부르며, 이러한 읽기는 서사가 징후적으로 자기 자신이 낳은 조건을 드러낸다는 관점을 취한다.

징후적 읽기는 저가가 쓰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읽기를 배후에서 찾아냄으로써 의도를 헤아리는 읽기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가벼운 의미의 ‘해체적 읽기’의 한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징후적 읽기는 서사의 모든 요소를 만들어낸 내포저자의 존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통합성에 대한 질문은 고려할 가치가 없게 되었다. 더욱이 징후적 읽기의 대상이 되는 저자들은 의도한 것과 드러내는 것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의도를 헤아리는 읽기처럼, 징후적 읽기는 서사에서의 반복을 근거로 하여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러한 반복은 전체, 통합된 작품의 일부가 아니라 승인되지 않은 채 작품 속에 삽입된 저자의 흔적이다.

의도를 헤아리며 읽는 접근법과 징후적 접근법은 서로 대조적인 서사의 해석 방식처럼 보이지만, 서사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의미를 발견하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입장에 있다. 다만 의미가 내포저자에게서 발견되느냐, 실제저자에게서 발견되느냐라는 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징후적 읽기는 내적인 구성을 중시하는 내포저자 이론을 간과한다는 이유로 곁텍스트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적용하며 읽기


중요한 점은 해석을 수행할 때 넘어설 수 있는 선이 존재하며, 독자들은 더 이상 증거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적용을 통해 하나의 읽기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라는 것은 어느 정도 해석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러한 선을 찾는 일은 우리를 또 다른 회색지대로 몰아넣는다.

우리는 의도적이든 징후적이든 하나의 해석이 경계를 넘나들고, 이야기 자체를 삶에 적용시키곤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괴상망측하기 짝이 없지만, 어떤 것은 불쾌감을 불러일으킴에도 불구하고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하나의 해석이 자유로운 적용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숙고할 때 반드시 정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서사에서 의미를 만들어낼 때 우리 모두는 적극적인 협력자이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해석은 어느 정도 창작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사를 읽거나 보거나 혹은 듣는 순간에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덧붙이고, 뒤를 따르면서도 형체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 둘 사이에는 일종의 연속체가 존재하며, 어떤 점에서 우리는 이른바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 점차 일종의 창작과 유사하게 되어가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명 높은 오해라고 할지라도 해석은 여전히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위대한 작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저술가들은 스토리를 취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고쳐 쓰는 과정에서 ‘적용하며 읽는’ 해석에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석자가 어떤 접근법에 취하느냐에 따라 독자/관객들과 텍스트와의 관계,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안에서 들어 있는 의미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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