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일 대나무숲 (2)

이제 정말 괜찮아졌다는 뜻으로

by 채 은


위 글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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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사람들과 있을 땐 밥 약속이고 술자리고 빠짐없이 즐겨놓고 인사 후 뒤 돌자마자 하루치 우울에 감싸진 채 걷던 날이 반복됐다. 이건 정상적이지 않고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가정의학과를 검색했고, 시청과 종각은 온갖 직장인의 비애가 묻어 있는 만큼 병원이 참 많이도 있었다.


온화한 피아노 소리가 은은하게 켜진 곳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와중에도 이곳을 상담센터처럼 사용하기를 경계했다. 이 분은 의사고, 상담사가 아냐. 여긴 병원이고, 상담센터가 아냐. 너무 사족 붙이지 말자. 어찌어찌 약을 두 줄 받아 돌아왔다.


그렇게 4개월쯤 다녔고, 약은 증량되다가 다른 종류의 약 여러 가지로 바뀌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약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거나, 의사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듣기로는 수면제를 먹으면 30분 내로 잠이 온다기에 현대의학의 수혜를 이 나이부터 입음에 감사하며 그것 참 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먹고서 아무리 침대에 앉거나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11시쯤 먹었는데 4시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오남용이 시작되었고, 이틀 치를 하루에 먹고서도 잠을 못 자 밤을 새우다가 아침 10시쯤 전원 종료하듯 잠들었다. 눈 떠보면 캄캄한 밤 6시.


햇빛을 못 보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나는 그때 알았다. 5일 동안 영원히 저녁과 밤이었던 때도 있었다. 오전 10시 반의 강의, 12시의 동기 점심 약속, 3시의 강의 모두 다 깔아뭉개고 저녁 6시쯤 일어나면, 황당함보다도 절망이 먼저 다가온다.


마치 어떤 벌처럼 나는 그 어떤 번듯함도 내가 누리지 못하길 바랐었다. 넌 남들 다하는 일상도 제대로 못 해내니까 밥도 먹지 말고, 주변에 좋은 사람도 두지 마. 늘 살던 대로, 어디 털어놓고 의지하지도 마. 실제로 이 시기에 소중한 인연을 많이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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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잠을 잘 자게 해주는 대신 충동적이게 되고, 불안하지 않게 해주는 대신 어눌해지고 사고가 둔해졌다. 보통 복용 중인 약이 있으면, 의사와 상의하면서 단약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하루아침에 정말 유사시의 약만을 남기고 모든 약을 하루아침에 끊어버렸다.


그 계기는 어느 날 오후 눈을 떴는데 식탁 위 삼각김밥 한 개와 냉장고 안 물통을 발견했다. 누가 내 방에 다녀간 줄 알았다.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전에 누가 들어왔다가 나갔는지 의심해 볼 정도로 그 고시원의 환경에 대해서 불안감이 컸을까.


카드 결제 내역을 보니, 전날 새벽 5시 20분 도보 2분 거리 편의점에서 버젓이 결제한 내역이 있었다. 내가 새벽 5시에 옷 입고 신발 신고, 편의점 가서 집어서 결제까지 했다고? 냉장고에 물을 넣고 잤다고? 그럼 걸어간 골목 풍경이라도 기억이 나야 하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이 새벽을 계기로 나는 하루아침에 단약을 결심하고, 그 뒤로 먹지 않았다. 약을 먹으면서 겪었던 부작용보다 단약 부작용이 더 강했다. 잠도 여전히 못 잤고, 피곤에 절여져 있었다. 기억나는 밤은 내가 하늘을 보면서 '저 언제까지 이래요' 묻던 날이다. 내일만은 어찌 해보겠다 다짐하는 밤과 시작부터 글러 먹어 좌절하는 대낮이 이어졌다.


유일한 낙은 금요일 공강을 이용해 본가에 와 내 침대에 누우면, 9시간 동안 깊고 깊은 잠을 잤다. 엄마는 대체 서울에서 잠 안 자고 뭘 하고 돌아다니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죽기 전에 이렇게 개운하고 평온하고 깊은 잠을 또 한 번만 자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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