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깨기

by 채 은

풍경과 날씨와 옷차림만 바뀔 뿐, 왜인지 모를 기시감이 드는 날이 이어질 때쯤 문득 누워 생각했다.


일어난다. 씻는다. 나갈 준비를 한다. 버스를 1시간 탄다. 그동안 유튜브, 뉴스, 인스타그램, 넷플릭스를 떠돌며 시간을 보낸다. 비슷하고 다른 일을 한다. 얘기를 나누다 일을 한다. 날씨가 좋다는 얘기를 하며 내리막을 걷는다. 줄을 서 버스를 1시간 탄다. 아까 했던 일을 반복해 집에 온다. 오는 길에 측근과 통화를 한다. 씻는다. 가족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내일 가져갈 짐을 챙긴다. 핸드폰을 하다 잠에 든다. 처음부터 반복한다.


나는 이 일련의 행위가 매우 적은 자유도를 가진 톱니바퀴라고 생각했다. 마모된 부분이 가끔의 흥미를 줄 뿐, 어떤 의미를 갖거나 해방감을 주거나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진 못했다. 입을 옷, 점심 메뉴, 저녁 메뉴, 날씨, 노을, 하는 일 이 정도의 옵션이 자유도에 해당했다.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있다. 필연적으로 소요되는 시간들이나, 있어야 하는 장소들이 그렇다.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남과 나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그냥 내키는 대로 해보기로 결심했다. 하루에 하나의 돌발행동을 해보기 규칙.


최근에 재미가 들린 것은 종이책 한 권을 들고 다니면서 버스에 타면 재즈를 틀어놓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둔 채 책을 읽는 활동이다. 나는 하다 못해 양재에서 빠져나올 때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양재천에 달빛이 비친 것만 봐도 낭만을 느끼는 사람인데, 버스에서 보내는 2시간은 방도를 찾기만 한다면 매일 확보되는 낭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던 것처럼, 문득 나는 멀미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또, 가끔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귀를 꼽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와중에, 가방에서 꺼내 책을 읽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게 떠올랐다. 어떤 경위로 그 책을 고르게 되었는지, 그전에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궁금해졌던 기억이 났다. 부럽고 닮고 싶고 궁금했던 게 있으면, 미루지 말고 내 삶에 끌어오면 된다.


그래서 삼 남매를 거치며 빼곡해진 책장 앞으로 가 한가롭게 책을 골랐다. 1번 조건, 내용이 궁금할 것. 2번 조건, 너무 두껍지 않을 것. 3번 조건, 너무 좋은 종이를 쓰거나 양장본이어서 무겁지 않을 것. 4번 조건, 가름끈이 있을 것. 4번 조건까지 고려하다 보니 몇 권 남지가 않아 아쉬웠다.


그래도 5년의 통학 세월로 가방의 무게가 하루의 피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여실히 알고 있어 조건을 철저하게 따졌다. 아마도 막내 동생이 구매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SF 소설책 한 권을 골랐다. 더 있어 보이려면 영어 원서 책을 고를 수도 있었는데, 특유의 갱지 내지와 깨알 같은 글씨로 유일한 자부심인 좋은 시력을 잃을까 우려되어 고르지 못했다. 여하튼, 영화도 SF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책을 고른 것 또한 돌발행동에 포함되었다.


처음 그 책을 읽기 시작한 날, 버스에서 내려 햇빛가리개로 쓰다가 책상 위에 두었는데 팀원이 그 작가의 책을 읽어본 것 같다며 다른 책도 재밌다고 추천을 해줬다. 내키지 않는 마음에 '잘 읽지 않아 온 장르여서 그런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웃으며 넘겼지만 나는 그 말을 하면서 동시에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틀을 이번에 깰 거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왕복 2시간씩 버스의 에어컨 바람을 누리며 1950년대 재즈 거장들의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SF 소설의 스토리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내가 만들고 싶던 낭만이었다. 인문학이나 에세이와 달리 나에게 경험치가 없는 생소한 장르여서 그런지 10시간 후에, 12시간 후에 열어봐도 이전까지 읽은 페이지의 내용이 생생했다. 드문 경험이었다. 시도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재미였다. 언젠가 관심 가진 적은 있어도 내 일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영원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 줄 알고 미뤄졌을 일이었다.


그렇게 작은 돌발행동들로 나만의 변화를 만들어 갔다. 하루의 빈칸 속에 무언가 어색한 것들을 끼워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내 것 같았다. 작은 새로움이 오늘의 효능감을 완성시키기도 했다. 할머님께 먼저 다가가서 도움이 필요하시냐고 물었다. 원래는 남이나 일행 눈치가 보여 그러고 싶어도 못했던 일이다.


매일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 일기 같기도 반성 같기도 한 글을 썼다. 남의 시선은 1초에 불과했고, 주책인가 싶었으나 나는 금세 그 순간에 충실해졌다. 금세 사라질 요즘 날씨를 붙잡아 마음 다해 사랑하는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 그렇게 써진 글은 집에 와 펼쳐도 바삭한 밤공기가 스민 듯했다. 이건 좀 그렇고, 저건 좀 아니라는 말들은 내가 지우니 정작 누구도 나에게 하지 않았다.


맨날 커피 머신으로 아메리카노나 마셨는데,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티백 중 캐모마일을 시도했다가 이젠 팀원 모두가 캐모마일을 즐긴다. 바지만 잔뜩 쌓인 옷장을 보고 흰색 긴치마를 구매했다. 키가 더 커 보이는 게 싫어서 단화와 스니커즈만 가득했던 나는 구두를 잘만 신고 다닌다. 당근 못 먹는 사람이었던 나는 어느 날 엄마가 준 당근 주스를 한 컵 다 마셔보기로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의치 않은 채 예전부터 그렇게 살고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잘만 살아왔다. 이걸 나도 알고 있으면서 나에게는 넌 안된다는 특약을 들이밀었다.


사기업을 일 년 반 가까이 지원했던 나는 창업 팀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냥 어디서든 할당되는 일을 군말 없이 하며 월급이나 받겠다던 나는 월급이랄 것도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성을 주장하고, 더 나은 것을 설득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이렇게 하면 어울리지 않고, 하물며 이대로는 실패라는 생각의 틀을 내가 만들고 내가 틈을 낸다. 내가 나를 규정한 것들, 그 틀에서 벗어난 일을 할 때마다 어쩐지 나는 변덕이 심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게 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이 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 말이 되고, 내가 행동하는 것이 내 삶이 된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내가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더는 미루지 않고 나를 더 새로운 곳으로 밀어내고,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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