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글을 쓴 시점은 그보다는 한참 후이다. 이 글을 발행한 것은 그보다 한참 더 후이고.
아빠는 몇 년 전 차를 바꿨다. 언젠가부터 바꾸겠다며 말하더니, 어느 날 차를 수령했다. 그때만 해도 전기차가 지금처럼 도처에 있지는 않아서 신이 났던 걸까, 이런저런 세팅을 도와주려고 일부러 첫 충전을 하는 길에 따라갔다. 이 글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수납공간에 무엇을 두었냐고 물으며 열어본 것에서 시작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가수 이승철의 앨범 CD가 있었다. "전에 차 정리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CD 안 버리고 챙겼거든. 근데 CD 넣는 칸도 이젠 없네." 아빠는 사실 그 전의 차량도 블루투스와 핸즈프리 기능을 너무도 잘 써왔다. 그래서 USB 포트와 블루투스 기능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CD 리더기가 없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장난으로 웃음 섞어 "아빠, 당연하지. 이제는 그런 것들은 다 추억이야. 블루투스로만 연결해서 듣고 싶은 노래 다 들어." 하고 말했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동생도 없던 시절이었다. 매일 엄마의 구형 차를 타면서 CD를 내내 틀었었다. 영어 동요 CD나 구구단, 전래동화 같은 것들이 생각났다. 맘마미아 OST CD집을 열어서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하고, 몇 번 접혀있던 가사집을 뒤지며 알고 있는 곡을 찾아 따라 부르곤 했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서일까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왜 전기차로 바꾸었냐며 핀잔을 줬었다. 그 좋은 기능 중에 60%도 제대로 못 쓸 것이라며 한마디를 얹었다. 나는 이십 대의, 아빠는 오십 대의 초반을 살고 있(었)다. 아빠는 전기차가 낯설다. 나는 무언가를 어색해하고 공부하는 아빠의 모습이 낯설다.
근 몇 달간 나는 긴 시간을 살아본 사람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했다. 역시 외할아버지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묻지 못했다.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겪은 것과 잃은 것,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좋아했지만 이젠 없는 것, 편리해졌지만 반갑지 않은 것. 나에게 들려달라고 하면 언제든 말해줄 테지만, 왜인지 나라면 씁쓸함을 숨기지 못할 것 같아 알기가 무섭다. 그들 또한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느낄까.
부모님도 한때 대학생이었고, 삼십 대를 지나서 사십 대는 나의 청소년기와 함께했다. 그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을 너무도 오랫동안 한 나머지, 나는 그들이 느끼는 것을 함께 고민한다. 변화, 상실, 이동, 부모님의 부모님에 대한 염려 같은 것들. 길고 짧음이라는 감각이 늘 양립하는 세월이라는 시간의 모음을, 특출나진 않아도 각별하게 살아온 치열함이란. 인생의 근속기간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지레 겁먹는 20대도 그들은 보냈을까.
- 몇 년 후의 내용 추가 -
아빠는 어느새 전기차가 익숙해졌다. 기어봉이 아니라 원판을 돌려서 기어를 바꾸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한때 어떨 때는 되고, 어떨 때는 되지 않아서 여러모로 애를 먹였던 중립 기어 설정법도 이제는 잘 안다. 처음에 신기해했던 원판에 손으로 글씨를 쓰면 내비 입력창에 텍스트로 입력되는 기능은 더는 쓰지 않는다. 대신에 가고 싶은 곳을 잘 알아들으라고 공들여 외치고 경로 선택에 '예'라고 답한다.
내년이면 구순이신 외할아버지는 며칠 전 이사를 하셨다. 완전히 신축 아파트 단지에, 층은 48층까지 있는 아파트로 옮기셨다. 그중 한 동의 꼭대기에는 라운지를 꾸며두어 밖으로 나가면 전망대처럼 탁 트인 사방을 유리 없는 시야로 구경할 수도 있고, 편안한 소파와 아주 큰 다이닝 테이블이 몇 개나 있어 담소를 나누기에도 좋다.
그런데 라운지에 크리스마스라고 트리를 설치해 두었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막냇동생 사진을 어떻게 배경화면으로 해두느냐고 물으셨는데, 이제는 문자로 나에게 라운지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진 찍어 보내주신다. '외할아버지, 예쁜 트리가 생겼네요. 풍경도 좋고 소파에서 앉아 쉬면 멋지겠는데요!'라고 답장했다. 얼마 안 가 답장이 왔다. '그렇지. 아파트 전망대에 설치된 거야. 흰색트리가 특이하지'.
결국 세상이 수시로 바뀌고, 내가 보고 자랐던 것들이 허물어지고서 완전히 처음 보는 것들이 막 생겨나도, 그래도 불편함과 어색함을 참고 부딪혀보다가 해내게 되었던 기억으로 우리는 새로운 흐름 안에서 또 좌절 않고 살아지는 게 아닐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사라진 대도. 그래도 그 이야기들이 입으로, 마음으로, 웃음으로, 기록으로 전해지면서 삶의 일부를 함께한 사람들이 서로 기억해 준다면 의미를 다한 게 아닐까. 그것으로 좋다는 생각으로, 어쨌건 살아냈다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