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한 턱시도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봉투 주변을 연거푸 네다섯 번 오가는 걸 봤다. 자세히 보니 비곗덩이 같은 걸 물고 있었다. 왜 먹지 않고 물고 갈까? 유심히 보니 못 보던 아기 고양이 6마리가 함께 있었다. 두 마리는 턱시도, 네 마리는 삼색이 고양이였다.
솜털 난 아가들은 아파트 정문과 화단을 토끼처럼 총총 쫓아다녔다. 눈에 잘 띄는 화단에도 자기들끼리 앉아 쉬거나 한참을 뛰놀았다. 너무 유약해 보여서, 그리고 엄마냥이가 여섯 마리를 다 돌보긴 힘들어 보여서, 편의점에서 1살 미만 고양이용 습식 사료를 사다 주었다.
한 팩만 사서 줬는데, 여섯 개의 머리가 쫑긋거리며 몰리는 게 안타까워서 그 뒤로는 세 팩씩 사서 플라스틱 위에 놔줬다. 엄마 고양이는 무슨 마음인지 아기들이 나와 가까이 놀게 뒀다. 그렇게 장마와 태풍인 날을 제외하고 약 8개월을 매일같이 챙겨주기 시작했다.
모이면 큰돈인 걸 아는데, 나에게 없으면 아쉬운 돈은 아기고양이들의 안녕보다 중요하진 못했다. 가끔 츄르도 사고, 간식도 사다 주고, 사료도 사다 주고, 장난감으로 놀아도 줬다. 어떻게 보면 책임 없는 쾌락을 아주 길게도 누렸다. 가족들에게 소개도 해주고, 이름도 지어줬다.
이름을 지어줄 때, 별안간 이 순간을 후회하는 때가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까지 지어줘 버리면 문자로, 발음으로, 마음으로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버릴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도 마루, 시로, 땅콩, 리오, 리쓰, 리포까지 꾸역꾸역 없는 창의력을 짜내서 지어줬다. 그 뒤로 아주 긴 시간 아이들은 우리 가족에게만 그렇게 불렸다.
어느 순간부터 습식 사료 파우치가 아니라 건식 사료를 집에 사다 놓고 쌀 계량컵으로 소분해서 매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그런 날 늘 이해할 수가 없었고, 백수인 와중에 사료와 간식에 정기적으로 돈을 쓰는 것도, 매일 새벽마다 두세 시간을 오붓하게 놀다 오는 것에 진심으로 화낸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랑곳 않았다.
아기 고양이들은 우리 동 주변 어디에든 있다가 새벽에 측근과 전화를 할 때면 목소리를 듣고서 나를 보러 왔고, 부르면 달려왔고, 장난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폴짝거리며 재미있어했고, 밥과 물을 얻어먹은 뒤에도 진득하니 놀다가 내가 집에 갈 때까지도 자리를 지켜줬다.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나는 이 행위가 나를 살리고 있다고 믿었다. 그 당시 면접 연습을 하던 새벽에도, 차마 집에선 못 울어낸 또 다른 좌절을 쏟아낼 때도, 10,000자 넘게 써가며 하루가 통으로 사라졌던 많은 날에도. 이렇게나 보잘것없다고 느껴지는 나도 어느 존재에겐 도움이 되고 있고, 어디선가는 찾아진다는 감각이 나를 살게 했다.
그렇게 매일을 모두 만나다가, 가을 끝물부터 가장 마음을 많이 줬던 마루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안 보이던 녀석은 다리를 절뚝이며 나타나 나를 철렁하게 했다. 가족에게도 알렸고, 아닌 척했지만 모두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 엄마는 무심하게 길고양이는 어쩔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 알게 모르게 마음을 썼다.
횟집에 가서 회가 남았었는데, '갖고 가서 기름 없이 구워 냥이들 주든가. 좋아할걸?' '집에 산천어 있는 거 주면 안 되나? 우리 안 먹잖아. 민물이니까 삶아서 가시 없애서 줘.' 실제로 그 큰 산천어를 세 덩이로 잘라 삶아서는 포크 두 개로 가시를 다 발라 두었다. 난 엄마가 이런 의외의 제안을 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사실은 정들어버릴 것이 무서웠던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빠한테 고양이가 집에 있으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 별로 안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럴 것도 같은 것이, 원체 심한 비염을 갖고 있는 데다 작년부터는 갑상샘에 문제가 생겨 방사선 치료까지 했으니 싫어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다시 물었다. '아빠, 아빠는 고양이 원래 안 좋아해?'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 그것은 아닌데.. 어쨌든 동물은 우리보다 먼저 떠나는 게. 헤어짐이 싫어서 그렇지.'
우리는 상실의 기억이 너무도 고통스러웠어서 어른이 되어도 알게 모르게 그 힘듦과 책임이 먼저 다가오나 보다. 영영 떠난 존재는 우리 마음에 오래 남다가 못해 준 것만 되새기면서 울게 하니까 그런가 보다. 나도 문득 매일 곁에 있다 겪을 부재가 견딜 수 없이 두려워져서 차마 데려오지는 못하고, 작년 겨울엔 스티로폼 겨울집까지 만들어 담요를 깔아주고, 밥과 따신 물을 챙겨주다가 모두가 이 동네를 떠난 후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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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주워온 달팽이 두 마리가 우리 집에서 3대까지 이어졌었다. 달팽이의 번식력을 몰라보고 훌쩍 데려온 것이 스노볼이 되었다. 작년 상추값이 기승을 부릴 때 나는 엄마한테 욕을 먹어가며 적상추를 사다 먹였다. 흉작으로 애호박이 다 형편없을 때에도 집에 사 와서 더 달게 숙성을 시켜서 줬다. 제사라고 고구마 전을 하면 작은 조각으로 잘라 달팽이들에게 갖다 줬다. 매일마다 땅을 갈아주고 집을 씻어주고 더우면 에어컨을, 추우면 난방을 틀어줬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교감도 못하고, 기어 다니기만 하고, 소리도 내지 않는 느린 동물이 나를 살렸다고 믿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야행성인 나와 달팽이들만이 움직이면, 가만 앉아 보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도태되어서 닿을 듯 말 듯, 그렇지만 영영 나만 한 수 아래인 듯한 이 느낌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줬다. 그래서 날 살렸다.
달팽이를 데려올 때 나는 달팽이의 번식력을 알지 못했고, 3대 아가들이 4-50마리 태어났을쯤 내가 데려왔던 공원의 깊숙한 풀숲에 모두 놓아줬다. 고민하는 몇 주간 내가 느낀 마음이, 내가 주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미안함이, 나를 그렇게 하게 했다. 놓아주는 마지막까지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참 옳고 맞은 일이었다고 여차 되새겼다.
결국,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어도 사랑은 날 살리고, 상실은 날 좌절하게 만들었다. 빈자리는 한번 채워지면 원래의 공백이 덧없을 만큼 충만함을 가져다줬고, 원래 없던 충만함은 공백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새벽에 산책을 두 시간씩 다니지만 그때 봤던 고양이들을 코빼기도 만날 수가 없다. 내가 놓아준 수풀 언저리에 아무리 모기에 뜯기며 앉아있어도 달팽이들은 나를 마중하러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그럼에도, 그들 덕에 내가 하루를 웃으면서 마무리했던 사실까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닌 거다. 그들이 내 삶에서 남긴 기억까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닌 거다. 내가 배운 것, 나에게 가르친 것, 소중히 여겨졌던 기억까지 사라진 건 아닌 거다. 깊어질 것 같은 만남 앞에 겁이 많아지지만, 사실 나라면 나에게 해주고 싶을 일들을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마음 다해 해준 경험 자체만으로도 그들이 아니라 내가 받은 게 더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