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나의 안정을 지탱하던 측근과 조금 멀어지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모든 일상을 사사롭게 공유하던 사람과의 마찰과 부재는 놀랍게도 시선의 초점을 내부로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기적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12월 32일, 33일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질리도록 날짜를 세어온 지난했던 날들을 모두 없다손 치고 다시 1부터 세어가는 기점은 멀쩡하던 사람도 흔들어 울렁거리게 만들어놓는다.
지진처럼 나를 들어 올리는 울렁임에 나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요가 원데이 클래스를 등록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젊은 날부터 척추 측만과 디스크로 여태 고생을 해오고 계셔서, 학생 때부터 귀에 딱지 앉듯이 권유받은 것이 요가, 필라테스인데 나는 그럴 때마다 죽어도 가기가 싫었다. 민망하고, 뭐에 도움 되는지도 모르겠고,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본 명상의 효과도 잘 모르겠었다.
집에서 가까운 요가원에 원데이 클래스를 결제하고 나서도, 기대와 무서움이 번갈아가며 느껴졌다. '괜한 짓을 했나? 장신의 키에, 유연성은 꽝이고, 운동 센스도 없으면서 너 어쩔래.' 1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노쇼를 고민할 정도로 심란했고, 해봤자 헐렁한 반팔티나 입고 헬스장 가서 러닝머신이나 뛰어본 게 다였던 나는 옷부터도 고민이었다. 언제 쓰일지 몰라도 요가복이라도 사놓을걸. 비슷한 운동복이라도 사둘걸.
그러다 걸어서 늦지 않게 도착할 시간에 출발했고, 요가원 입구를 확인하고는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로 앞 공원에서 조금 서성이다 들어갔다. 대충 눈치껏 다른 분들처럼 양말을 벗고, 다들 옷을 두는 곳에 내 겉옷도 걸고. 정갈하게 나열된 매트들 중 적당히 멀고 짱 박힌 곳에 자리를 잡았다. 친절하게 맞아주셨지만, 하나둘 도착하는 수강생 분들의 몸은 척 봐도 요가 10년 차 같았다.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정말 내가 보기엔 그랬다. 군살 하나 없이, 근육이 잡힌 몸, 아주 바른 자세, 익숙한 몸풀기.
그쯤 되니 선생님이 나눠주신 레몬 어쩌고 티는 이름도 기억이 안 날 만큼 혼이 빠져있었다. '야 이거 큰일이다 너 이제 못하겠다고 나갈 수도 없어. 이거 한 시간 정도 한다고 했나? 한 시간이면 짧다.' 오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 왜 이런 짓을 벌였냐고 원망하는 나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 앞으로 어쩔 심산인지 대책을 종용하는 나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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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1시간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수치스러움'이고, 두 개의 단어로 정리한다면 '경외심'이 추가될 것이고, 세 개의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제야 '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상한 것처럼 10명 남짓의 수강생 분들 중에 나는 눈에 띄게 뻣뻣했다. 모두가 매트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할 때 나는 혼자 솟아있었고, 모두가 다리를 온전히 펴고 있을 때 나는 굽히고 있었고, 다들 안정적으로 버티고 있을 때 나는 온몸이 바들바들거렸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동네에 가까운 요가원으로 온 게 후회될 만큼. 다들 날 어떻게 생각할지 무서웠다.
두 번째 단어를 '경외심'으로 정하게 된 데는 함께 수업을 들었던 분들 영향이 크다. 나는 진심으로 매트에 덩그러니 앉아 눈을 의심했다. 다들 엎드린 자리에서 팔꿈치로 머리를 지탱하고, 하체를 천천히 들어 올려 물구나무를 서시더니 그대로 30초 간을 버티고서 뒤통수 쪽으로 그 하체를 그대로 떨궈 책상 같은 모양을 만들고, 그대로 다시 일어서셨다. 엄두도 못 내고 매트에 앉아있던 나는 멍하니 그걸 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요가가 이런 운동이었나? 원래 이런 고난도의 자세가 많았던가? 왜 이 반이 원데이 클래스로 열렸을까?'
요가 원데이 클래스의 경험을 세 개의 단어로 설명할 기회를 얻고 나서야 나는 '배움'을 슬며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안 쓰던 근육을 강제로 늘려놓는 1시간의 요가 체험이 끝나고, 마지막 10분 동안은 불을 다 끄고 편하게 누워 평화로운 음악과 명상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다들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시는 듯 보였는데, 나는 지난 1시간의 의미를 찾는 데에 골몰하고 있었다.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면서, 간간이 울리는 싱잉볼의 파장과 함께.
'방금까지 뭐 한 거지? 쪽팔려. 부끄러워. 선생님이 나 보면서 웃으시던데 너무 못해서 황당하셨으려나. 사람들은 저렇게 하려면 몇 년을 했을까? 초보가 들어올 반이 아닌 것 같은데. 인생 첫 요가라고 문자 드렸을 때 왜 만류하지 않으셨을까. 근데 진짜 못한다. 옆에 아저씨보다 더 못하는 것 같아. 내일 근육통 진짜 심하겠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이 들이치는 바람처럼 뇌에 잠시 머물렀다 흩어지길 반복했다.
그러다 돌연 마음이 차분해졌다. 평생에 처음 해보는데 잘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못할 걸 알고 시작했으니 의외일 것도 없다. 처음 요가해 보는 날이 없으면 저 사람들처럼 되는 날도 없는 거잖아. 능숙하고 잘해 보이는 저 사람들도 다 첫 요가 클래스 날이 있다.
몸을 움직이는 요가가 아니었다고 쳐도, 요리든 그림이든 악기든 언어든. 첫날의 나는 언제나 초라하고 구리고 멋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족하고 못나고 부끄러운 나를 나조차도 견뎌주지 못해서 관둔 30일 뒤의 나는, 두세 번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 몇 번이라도 한 30일 뒤의 나와는 다르겠지.
처음은 다 못하고, 다 처음은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배워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어쩐지 멋들어지고 경건할 정도로 쉬워 보이는 누군가의 모습이지만, 막상 해보니 초라하고 미약한 시작에 너무 주눅 들거나 실망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