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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Apr 15. 2021

봄날, 향긋한 쑥 냄새

쑥떡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 장난이 과하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1, 2학년 때까지 봄만 되면 온가족이 산에, 들에 쑥을 캐러 다녔다. 전후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2000년대 이야기다, 정말로. 좋게 말하면 봄나들이였지만 사실은 주말 특식을 위해서였다.


아빠만 아는 뒷산 양지바른 곳에는 3, 4월만 되면 쑥이 말 그대로 ‘쑥쑥’ 자라는 비밀공간이 있었다. 산이 언덕 수준으로 낮아 사람들이 안 지나가는 곳이 없었는데 거기만은 신기하게 사람 손을 안탔다. 저~기서부터 저~기까지 쑥이며 달래며 냉이가 빼곡히 자라있었다.


엄마, 아빠와 우리들은 쑥을 캐고 소리도 지르면서 뛰어다니고 놀았다. 가끔씩은 몰래 숨겨놓은 젤리도 먹으면서.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쭈그려앉아 있으면 검은봉지 서너개는 가득 찰 정도로 쑥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바빠진다. 산처럼 쌓여있는 쑥을 일일이 씻어서 밥을 하고 떡을 만드는 일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뒷산에 다녀온 날 저녁메뉴는 무조건 쑥을 한껏 올린 쑥밥에 쑥된장국이다.


쌉싸레한 밥에 쌉싸레한 국을 함께 먹자니 혀가 얼얼해지는 기분이지만 우리집 식탁에 편식이란 없다. 엄마가 나에게 준 할당량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숨을 멈추고 밥을 우겨넣으면 된장국 위에 동동 떠있는 쑥이 날 쳐다보며 말한다. 너, 나도 먹어야 돼.


온종일 뒷산에서 쑥을 캐고 밥을 지은 엄마가 할 일은 더 있다. 한쪽에 쌓여있는 쑥으로 떡을 만드는 일.


저녁을 손수 차리고, 치운 엄마는 이제 떡을 만들고 있다. 쌀가루에 적당히 삶은 쑥을 넣고 반죽을 시작한다. ‘단짠’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소금과 설탕도 잊지 않고 넣는다. 반죽은 가래떡 모양으로 길게 늘어뜨린 뒤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툭, 툭 떼어 납작하게 눌러준다.


특별한 토핑은 없다. 쑥과 쌀가루, 그리고 약간의 조미료만 있으면 된다. 동글동글 연두빛 반죽은 찜통에 15분 정도 들어갔다 오면 완연한 초록색으로 변해있다. 쑥 향은 더 진해지고 쫀득쫀득한 식감은 살아있다.


이마저도 귀찮으면 떡은 털털이가 됐다. 밀가루와 쑥을 한 데 버무려서 시루에 찌는 건 같은데 예쁘게 모양을 내는 게 아니라 대충 재료가 서로 엉길 정도만 버무리는 게 포인트다.


그렇게 완성된 떡을 그날 저녁 야식으로, 그리고 그 다음날 간식으로 먹고 나면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쑥밥이나 쑥된장국은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쑥떡은 조청이나 꿀 없이도 앉은자리에서 몇 개씩 해치웠다.


그러고보니 쑥을 못 본지도 꽤 된 것 같다. 주로 마트나 편의점만 가다보니 쑥을 볼 수가 없다. 하도 오래되서 산나물들 사이에 섞여있으면 쑥을 찾을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삐죽빼죽 자라있는 잎을 찾으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때는 그렇게 싫었던 쑥이 먹고 싶은 걸 보면 입맛이 꽤 어른이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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