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온 엄마는 식은밥이 남아도 저녁에는 새로 쌀을 씻어 새하얗고 뜨끈한 밥을 지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밥이 모자랄까 엄마는 항상 밥을 넉넉하게 했다.
그렇다 보니 밥이 늘 한 덩이씩 남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밥을 한 데 모아놓고 한가한 주말 오후가 되면 천천히 누룽지탑을 쌓아갔다.
누룽지를 만들 때 포인트는 마른 프라이팬과 약불이다. 기름을 두르면 튀김이 되고 물기가 있으면 죽이 돼버린다. 물기를 날린 프라이팬에 밥을 꾹꾹 펴놓으면 그다음엔 불 조절을 해야 한다.
너무 센 불은 밥만 타고 누룽지 식감을 살릴 수가 없다. 약불에 오래 굽다 보면 적당히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그야말로 ‘겉바속촉’ 누룽지가 완성된다. 시골 가마솥에서 박박 긁어먹는 누룽지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막 만든 누룽지는 그런대로 고소하고 맛있다.
한껏 쌓인 누룽지는 때론 간식이, 때론 비상식이 됐다. 엄마가 누룽지를 식탁에 올려놓으면 오며 가며 과자를 주워 먹듯 뜯어먹었고 입맛이 없는 아침엔 누룽지에 물을 부어 5분만 끓이면 누룽지와 숭늉이 완성된다. 특별한 반찬 없이 김치만 있어도 후루룩 한 그릇 먹기 좋다.
누룽지를 볼 때마다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고등학교 때 식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으면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한 햇살이 부엌을 비춘다. 햇살을 맞은 먼지는 제 모습을 드러내며 둥둥 떠다니고, 엄마는 그 가운데서 뜨거운 누룽지를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뒤집고 있다. 눈길을 느낀 엄마는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지금 막 만든 가장 맛있는 누룽지를 반으로 잘라 나에게 건넨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 엄마는 계속 누룽지를 만들고 나는 식탁 한쪽에 걸터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새처럼 재잘댄다.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엄마는 큰일인 것처럼 호응해준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부엌을 가득 채운다.
집을 나온 뒤 가끔씩 누룽지가 생각날 때가 있다. 요즘엔 엄마가 누룽지를 만들지 않지만 동네 마트에서도 누룽지가 워낙 잘 나와서 먹기 힘든 음식은 아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컵라면처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엄마가 해준 음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마트에서 파는 건 '겉바속바'여서 끓여먹을 때는 금방 풀어져 좋아도 과자처럼 먹기엔 오히려 까슬거리는 식감이 불편하다. 초코하임을 한입 깨물었는데 초코 대신 과자가 와그작 씹히는 느낌이랄까.
직접 만들어먹으려고 해도 우리 집에서는 불가능이다.(햇반만 먹는다) 이번주에는 누룽지를 핑계로 엄마네 살짝 들려봐야겠다. 식은밥을 최대한 얇게 펴 대여섯장 누룽지로 만들고 나면 엄마네와 우리집 한 달 비상식량으로는 충분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