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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May 09. 2021

들깨미역국 말고 뜰깨미역국

미역국


엄마, 아빠는 경상도 출신인데, 그래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내 말투에도 사투리가 묻어있다. 평소 억양이 특이하다며 어느 지역 출신이냐는 질문을 진짜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유독 도도한 표정으로 “아닌데? 나 완전 서울 사람인데?”라고 답한다.


‘새그랍다’, ‘정구지’ 같은 표현은 아예 그들이 못 알아들으니 뜻을 물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내가 ‘엄마’, ‘언니’를 말하면 단번에 사투리인걸 알아챘다. ‘이응’ 발음이 이상하다나 뭐라나. 그리고 발음에 약한 단어가 또 있다. 들깨미역국. 말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뜰깨미역국’이라고 말한다.


주변사람들이 말해주기 전까지만 해도 들깨미역국은 들깨미역국이라고 쓰고 ‘뜰깨미역국’이라고 읽는 건 줄 알았다. 한참 뒤에야 사투리 억양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엄마나 내 동생들도 들깨를 된소리로 발음한다는 걸 알았다. 우리 가족은 왜 들깨를 들깨라고 부르지 못하는 거니.


일단 내가 ‘뜰깨미역국’을 말하면 친구들은 그게 뭐냐고 묻는다. 미역국에 ‘뜰깨’를 넣은 거라고 하면 ‘뜰깨’가 뭐기에 미역국에 넣냐고 다시 묻는다. 한참 얘기하다보면 들깨를 ‘뜰깨’라고 발음하는 집도 우리집뿐이고, 미역국에 들깨를 넣는 집도 우리집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른이 되고 들었는데 고기 없이 들깨를 넣고 미역국을 끓이는 건 경상도식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많이들 넣어 먹지만 그때만 해도 대부분 지역은 맑은 미역국을 주로 먹었단다.


엄마가 해준 국 중에 가장 많이 먹은 건 미역국이 콩나물국, 된장국 다음쯤 될 거다. 재료도 금방 구할 수 있고, 쉽게 만드는 데다가 영양도 좋다. 엄마가 해준 미역국에는 들깨도 왕창 들어가니 구수한 맛이 특히 진하다.


요즘엔 상황이 바뀌어 내가 엄마네 음식을 갖다주는 상황이 되다보니 엄마가 왜 미역국을 자주 했는지 알 것 같다. 무슨 국을 할지 고민이 될 때 만만한 게 미역국이다. 하부장 한 켠에 무조건 미역이 오도카니 자리잡고 있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보다 미역국에 들어가는 부재료가 다양한 것도 장점이다. 소고기를 넣으면 고소한 소고기미역국이 되고, 황태를 넣으면 시원한 황태미역국이 된다. 매번 메뉴를 고민하는 주부들에게 변주가 쉬운 메뉴는 사랑받기도 쉽다.


최근에는 미역국 전문점에서 가자미미역국을 먹고 따라 했는데 식당과 꽤 비슷한 맛이 났다. 어렵지도 않다. 가자미를 데쳐 살을 발라내 미역국에 넣으면 끝이다. 가자미 데친 물은 육수로 활용하면 뱃속까지 뜨끈해지는 게 가벼운 보양식을 먹은 기분이다.


그래도 최고는 들깨미역국이다. 집에 있는 가장 큰 냄비에 오랜시간 푹 끓여야 맛이 좋다. 잘린미역 대신 두툼한 통미역을 넣으면 고기나 생선 같은 굵직한 재료 없어도 끓이면 끓일수록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 완성된 맑은 미역국에 들깨를 크게 두세숟갈 넣으면 살짝 걸쭉한 것이 취향에 가까워진다. 


이쯤에서 몸을 일으켜 미역국이나 끓여야겠다. 한가득 끓여 절반은 우리 부부가 먹고 절반은 엄마네 가져다주면 두 집 모두 3일은 국 걱정 없이 뜨뜻한 식사가 가능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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