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에 완성되는 음식 중에 이렇게 완벽한 음식이 있을까. (나트륨이 많긴 하지만) 나름 균형 잡힌 탄단지를 자랑한다. 매일 먹으면야 안 좋겠지만, 그건 뭐든 안 그러랴. 1000원 정도면 간단하게 한 끼가 해결되는 훌륭한 메뉴다.
자고로 뭐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니, 라면도 그냥 내버려두면 적당히 먹고 치울 것을 엄마가 먹지 말라니 더 당기는 마력이 있는 음식이다. 삼시 세끼 흰 쌀밥을 꼭 챙겨먹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엄마가 라면을 줄 리 없다. 엄마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 저녁으로 정성스러운 한 상을 차려주신다. 평일 점심은 학교나 회사에서 때우다시피 하지만 이마저도 라면을 먹을 가능성은 낮다.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최적의 시간대는 일요일 점심이다. 주말 오후의 나른함이 집안 곳곳에 부유하는 중이다. 일요일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인지 엄마도 평소보다 부드럽다. 이때를 잘 공략해야 한다. 엄마의 피곤함과 나의 간절함을 적극 어필하면 엄마는 비상식으로 창고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라면을 못이기는 척 꺼내 끓여준다. 이 와중에도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엄마는 ‘파송송 계란탁’을 잊지 않는다.
엄마와 있었을 때는 라면 먹는 일이 거의 연례행사였다. 25년 넘는 시간 동안 라면 먹은 게 30번이 될까 싶다. 같은 면 요리라도 엄마는 라면보단 채소가 잔뜩 들어간 비빔국수나 손칼국수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결혼 후에는 하루 걸러 하루 라면을 먹고 있다. 남편이 지독한 라면성애자다. 맵고 짜고 단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데 여기에 최적화된 음식이 라면이다. 조금이라도 나트륨 함량을 낮추고픈 엄마는 스프 반은 버리고 파와 양파, 마늘은 넣었는데 이 사람은 오히려 치즈를 얹는 대범함을 보인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하루에 한끼만 먹어도 크게 배고프지 않아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인데 그마저도 라면으로 채우는 걸 좋아한다. 와이프로서는 아주 편한 남편이지만, 식구로서는 건강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최근 라면을 싸게 살 기회가 생겨 몇 개는 엄마네 집에 가져다줬는데 며칠 만에 라면이 ‘순삭’됐다. 다시 몇 개 갖다두니 또 금세 사라졌다. 철옹성처럼 부엌을 지키던 엄마의 부재가 이렇게 크다. 견고했던 성이 무너지니 라면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아빠든 동생이든 라면 한 끼로 배부른 식사를 했으면 그걸로 됐다, 싶은데 한편으로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왜일까. 여기서도 어김없이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 튀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