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다크템플러 온다.”
학교 건물 앞에 서 있던 은바가 나를 발견하곤 씩 웃으며 말했다.
“그게 도대체 뭔데?”
“스타크래프트 캐릭터.”
바로 핸드폰으로 검색부터 했다. 이상한 괴물 그림이 떠 있었다. 이게 나라고? 등짝이라도 한 대 때리려는데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어쩐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났다.
잔뜩 굳어 있는 표정, 세상 짐을 혼자 다 짊어진 듯 축 처진 어깨, 매일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검은색 재킷까지. 대학원 시절의 나는 마치 등 뒤로 검은 연기가 폴폴 피어오르는 것처럼 다크한 기운이 물씬했다.
그땐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뭘 좀 써보겠다고 회사까지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막상 대학원에 들어가니 맨날 교수님들한테 혼만 났다. 밤을 새워 겨우 글을 고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수업을 들었다. 끝나자마자 숨 돌릴 새도 없이 바로 돈을 벌러 어디론가 가야 했다.
뮤지컬 극작에 대해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한 주제에 중학교에 나가 뮤지컬을 가르쳤고, 논술 과외를 했으며, 강남 입시학원으로 넘어가 하루에 천 장 넘게 복사를 하고 제본을 뜨고 채점을 했다.
방학 때는 다음 학기에 올릴 공연 대본을 쓰다 가도 콜센터로 넘어가 하루에 백 통 넘게 전화를 받았으며, 번화가에 있는 커리집에서 서빙을 하고 라씨를 만들었다. 겨우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커서가 깜빡이는 채로 멈춰 있는 시놉시스가 보였다.
빨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작가로 입봉 해야지. 커다란 극장 한쪽에 내 작품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보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긋지긋한 알바도 이젠 끝. 글만 써서 돈 벌고 싶다. 의미 없는 혼잣말을 주억거리며 뭔가에 쫓기듯 열심히 글을 썼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에 나는 작가가 됐다.
그래, 분명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다 이뤘다.
그렇게 원하던 작가가 되었고, 첫 작품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지긋지긋했던 알바도 다 관뒀으며 심지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남편까지 만났는데 나는 때때로 불행했다.
네가 원하던 걸 다 이뤘으면 이제 행복해야지. 근데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언젠가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뭔가에 쫓기면서 사는 느낌은 계속 들었고, 오히려 감정의 파고는 더 깊어졌다. 골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다 보면 가끔 내가 하는 일이 ‘삽질’을 넘어 마치 ‘공구리 친 바닥을 삽질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온종일 뻘짓만 했다는 소리다.
맨날 뭔가를 쓰긴 쓰는데 완성을 하진 못했다.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못했으니 당연히 돈도 못 벌었다. 집에서 혼자 작업만 하느라 요즘 뭐가 유행이고 화제인지 알지 못했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대체 뭔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정신이 멍해졌다. 통장 잔고 제로, 사회성 제로, 자존감 제로, 그냥 다 제로.
일도 엉망진창이었고 삶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몇몇 사람들이 황망하게 죽는 것을 보게 되면서 비로소 완벽한 번아웃이 왔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대체 이게 뭐라고.
그런 내 상태를 유심히 살피던 남편이 불쑥 말을 던졌다.
“우리 잠깐 일 그만두고 뭐라도 할래? 여행이라도 갈까?”
“글쎄. 뭐가 있을까?”
딱히 가본 곳도, 해본 것도 없다 보니 생각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외곽으로 나가 드라이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겨우 돈가스 하나 먹고 왔던 것 같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남편과 나는 차박을 시작했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으며 여전히 예술가 부부로 살고 있다. 남편은 부지런히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연희자로 활동 중이고, 나 역시 그대로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달라진 점도 있다. 만약 남편이 그때처럼 번아웃이 온 내게 “뭘 하고 싶어?”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냥 남애항 가서 차 문 열어 놓고 낮잠이나 자고 싶어.”
아니면,
“한탄강 가서 단풍 구경 좀 하다 오자.” 라든지.
하고 싶은 게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해서 나도 놀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과연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모르는 무색무취의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차박을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을은 부안에 있고, 내가 좋아하는 윤슬은 을왕리에 있다. 최고로 치는 바다는 남애항이고, 최고로 치는 숲은 충주에 있다.
봄에는 한탄강 가는 것을 좋아하고, 여름에는 평창을 좋아한다. 가을에는 태안에 꼭 가고, 겨울에는 인제의 숲을 꼭 걷는다. 계절을 느끼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편과 차박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동안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됐던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조급함이 없어지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의 희끄무레한 햇빛, 가만히 이쪽을 향해 출렁이며 다가오는 파도, 서서히 엷어져 가는 윤슬, 그 위로 느긋하게 날아오르는 새들.
느릿하게 백사장을 걸을 때, 숲에서 불어오는 고요한 바람을 느낄 때, 비로소 나는 생각한다. 나란 사람은 이 우주의 먼지 한 줌 정도 될까. 아니 한 톨 정도? 근데 왜 그렇게 매일 나를 증명하려고 아등바등했을까. 그게 대체 뭐라고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매번 놓치고 살았을까. 내 삶은 딱 이 정도 햇볕과 바람이면 충분한데.
이처럼 가끔 훌쩍 차박을 떠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는 것, 때론 고요하고 느릿한 몰입의 순간을 만드는 것,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자연을 산책하고 여유를 만끽하는 것. 그리하여 매일 “기쁘게 가볍고 행복하게 평범한”(메리 올리버) 삶을 깨닫게 되는 것. 모두 차박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다.
덧붙여, 유튜브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이렇게 많은 곳을, 이렇게 집약적으로 가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끔 남편과 지난 영상을 돌려볼 때가 있는데,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외모도 생각도 참 많이 변했다 싶다. 어쨌든 우리가 보낸 모든 계절과 우리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영상으로 간직되어 있다는 건 생각보다 꽤 좋은 일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린 차박을 떠난다. 손에 카메라를 꼭 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