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을 둘이서 운영하다 보니 때때로 힘에 부칠 때가 많다. 특히 본업이 바쁠 때 그렇다. 은바의 경우, 전국적으로 축제가 많이 열리는 시기가 되면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올까 말 까다. 그 즈음이면 우린 졸지에 삼 대가 덕을 쌓아야만 할 수 있다는 주말 부부가 된다.
어쨌든 유튜브 영상은 올려야 하기에 나 역시 은바의 투어 스케줄에 동행할 때가 많았다. 극장 근처의 캠핑장을 예약해서 촬영을 하고, 주변에 있는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편집을 하고, 공연이 끝난 은바와 함께 돌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나도 정신없이 바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마감 일정이 있거나 갑자기 대본 수정 요청이라도 들어오면 그마저도 함께 하기 어려웠다. 그럴 때면 염치없게도 나는 친구 '백자까'에게 카메라와 삼각대를 넘겼다.
'백자까'는 바바TV 최다 출연자다. 썸네일에 백자까 얼굴이 떠 있으면 우리 구독자들 역시 기대감을 담아 댓글부터 쓰신다.
[오늘은 또 무슨 가시밭길일까?]
[두 분 고생하는 재미로 봅니다]
[장소가 실미유원지네? 왠지 실미도 찍고 오셨을 듯]
(이런 걸 보면 우리 구독자들도 보통 아닌 분들) 뭐 어쨌든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두 사람이 차박만 떠나면 이상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잔잔하던 바다에서 갑자기 쓰나미가 밀려온다거나,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차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거나, 주변 밥집이 모두 문을 닫아 쫄쫄 굶어야 한다거나.
워낙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 탓인지 아예 백자까는 달관한 눈치다. 그래도 두 사람이 고생을 하면 할수록 영상은 재미있게 나오는 법이니, 편집자인 나로서는 백자까라는 치트키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은바랑 워낙 케미가 좋은 탓에 두 사람이 오래된 친구 사이인 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백자까는 실은 내 지인이다. 그것도 꼬꼬마 스무 살 시절부터 봐 왔으니 벌써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지고 볶고 함께 산전수전 다 겪은 지기다.
나는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여기에 깊은 사연이 하나 있다.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인문학부였는데, 1학년 말쯤 과를 하나 선택해야 했다. 1 지망부터 7 지망까지 써서 냈지만 성적이 바닥이었던 관계로, 결국 7 지망으로 쓴 철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충 쓱 훑어보니 나와 비슷한 사정인 동기들이 많아 보였다. 다들 전과를 한다느니, 복수전공을 한다느니 하며 철학과 수업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철학엔 관심이 없었지만 술 마시며 개똥철학 논하는 건 좋아하는 예비 꼰대였기 때문에 종종 철학과 방에는 마실 가듯 놀러 갔다.
그곳에서 나처럼 어중이떠중이 부유하는 철학과 사람들과 친해졌다. 우리는 과방에서 짬뽕에 빼갈을 시켜 먹기도 하고, 같이 만화책을 나눠 읽기도 하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번갈아들으며 춤도 췄다. 그렇게 모두의 공용 공간을 우리가 접수하다 보니 어느 날 과방에 대자보가 붙었다.
면학 분위기 해치는 불순분자들, 대충 뭐 이런 내용이었지만 그냥 대놓고 나가라는 소리였다. 결국 우리는 사물함에 넣어놨던 짐을 챙길 새도 없이 바로 쫓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갈 곳을 찾아 헤매던 우리는 빈 동아리 방을 하나 발견했다.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풍물패 동아리 '소리사랑' 방이었다. (풍물패라니. 훗날 장구잽이와 결혼해서 살게 될 것이라는 운명의 암시였나?) 어쨌든 풍물도 모르고 전통에도 영 관심이 없었지만, 빈 방에는 관심이 매우 많았다.
빙고. 우리는 '소리사랑' 동방을 바로 접수했다. 나름 '소랑팸'이란 유치한 이름도 만들면서 전보다 더 빡세게, 다른 말로 하면 징글징글하게 놀았다.
신나게 맥주를 따서 마시고 있는데 어느새 뒤통수에 찌릿한 시선이 꽂혔다. 방 한켠에서 열심히 철학서를 읽고 있던 1년 선배 홍솔이었다. 입시 학원 원장님의 둘째 딸로 어렸을 때부터 내내 공부로는 탑을 놓치지 않던 그녀는 철학과를 '선택'해서 들어온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그녀가 어쩌다 소랑팸에 끼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동방에서 시시덕대며 놀고 있을 때마다 홍 선배는 레이저 포인터처럼 우리를 쏘아보며 다그쳤다. 도대체 언제까지 허송세월 보낼 거야? 놀더라도 공부는 하고 놀아야지, 학생이.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녀는 우리 중 유일하게 학점이 3점을 넘었고, 차가 있었으며, 심지어 남자친구까지 있었다. 나는 뭐든 똑 부러지게 잘하는 그녀를 속으로 부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깍쟁이 중의 깍쟁이라며 투덜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깍쟁이 홍 선배가 누군가와 은밀하게 접선하듯 조용히 통화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 것도 같았다. 로봇 같은 얼굴에 표정이 생겼다. 당연히 다들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통화 속 상대를 궁금해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알았다.
아, 홍 선배 남친 휴가 나왔구나.
며칠 전. 홍 선배가 이거라도 보라며 넘겨줬던 필기 노트 사이에 껴 있었던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까까머리에 군복을 입고 있는 남자와 평소에 쓰지도 않는 귀여운 모자를 쓴 채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바로 떠올랐다. 나는 주변에 앉아 있는 애들을 향해 복화술로 '남친'이라 꼭꼭 씹어 말했다. 그러자 다들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기 시작했다.
슬슬 눈치를 살피며 동방을 나가는 홍솔의 뒤를 바로 따라붙었다.
"허허, 홍 선배 남친 패기가 좋네."
"진짜 정문 앞 커피숍에 군복을 입고 앉아 있다고?"
"그 좋은 광경을 우리가 놓칠 수는 없지."
다들 숨을 헥헥거리며 뛰어가면서도 한 마디씩 던졌다. 것도 그럴 것이 우리는 정문 앞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로 여친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 애들을 보며 끌끌 혀를 찬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다니. 실로 패기가 대단했다.
커피숍에 들어가자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우리는 주변 테이블을 하나씩 접수하며 힐끔 홍 선배의 남친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제법 쑥스러웠던 모양인지 양쪽 귀가 새빨개져 있으면서도 수줍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꽤 순수해 보였다.
소머즈가 되어 온 신경을 두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다들 그냥 이쪽으로 와서 앉아."
허허, 그럴까? 그럼? 나를 필두로 주변에 앉아 있던 애들이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테이블 두 개를 이어 붙여 다섯 명의 여자애들과 한 명의 군인이 마주 보고 앉았다. 이제는 볼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군인이 어색한 지 머리를 긁적이며 겨우 말을 꺼냈다.
"다들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도를 아십니까야? 뭐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입에서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게 백자까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백자까와 커피도 마시고 떡볶이도 먹고 곱창에 소주도 마시며 노래방도 함께 갔다. 옆에서 표정이 점점 썩어가는 홍 선배와는 달리 백자까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우리와 함께 어울려줬다. 패기만 좋은 게 아니라 넉살도 좋았다. 그렇다면 인정. 그날 이후 백자까는 소랑팸의 유일한 남자 멤버가 되었다.
백자까가 제대를 하고 난 이후에는 그의 선임인 밍구까지 우리의 멤버가 되어 한층 더 재미나게 놀았다. 게다가 백자까는 세기말 힙스터들의 성지인 홍대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신촌과 홍대를 오가며 부지런히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착실하게 허비했다.
아지트도 참 많았다. 홍대 이리카페와 신촌의 칵테일 바 거품. 연대 뒤에 있는 동촌이라는 전통 술집. 동교동에 있는 하이델베르크라는 맥줏집 등. 이렇게 여러 번 서식지를 바꾸는 동안 누구는 졸업을 했고, 누구는 회사에 취직을 했고, 누구는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소랑팸은 서서히 와해됐지만.... 홍 선배와 백자까만큼은 꾸준하게 10년 간 연애를 이어가더니 결국 결혼을 선언했다.
두 사람은 내게 청첩장 문구를 부탁했다. 나는 당장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서 질 좋은 종이부터 구입했다. 물론 워드 파일로 전달해줘야 했지만, 어쩐지 문구 하나하나 정성 들여 쓰고 싶었다. 만년필로 꾹꾹 문장을 눌러쓰며 나는 휘황찬란했던 나의 이십 대가 드디어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얼마 뒤. 청첩장을 미리 받는 자리에 나는 당시 한 달 정도 연애 중이던 은바를 데리고 나갔다. 당연히 십 년 동안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인지라, 두 사람은 내 연애 흑역사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남자와 헤어질 때마다 두 사람과 함께 마신 술병만 따져도 한 트럭은 됐을 거다. 그때마다 두 사람은 '힘내라. 더 좋은 사람 만나면 되지.'라고 위로를 해준 게 아니라 회초리를 들었다.
"너는 인마, 없는 게 참 많은데 그중 제일 없는 게 남자 보는 눈이야."
"그래. 이제 라식 좀 하자. 응?"
아니나 다를까. 청첩장을 채 내밀기도 전에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본 은바를 속속들이 스캔할 기세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뒤.
"우리 은영이가 부족한 게 참 많은데... 특히 성격이 좀 이기적이고 억세요. 그래도 속은 참 여리답니다."
"절대 헤어지기 없기."
갑자기 두 사람은 은바의 손을 덥석 잡으며 정말 친정 부모들처럼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참 나.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났다. 심지어 두 사람은 아예 근처 모텔에 차를 세워두고 작정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말인즉슨 은바가 두 사람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청첩장은 보지도 못한 채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마지막 차수인 노래방에서 백자까와 은바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안재욱의 <친구>를 듀엣으로 열창했다. (그나저나 오늘 처음 만난 사이 아니냐....?) 한 달 뒤, 두 사람은 무사히 결혼식을 올렸고 그새 두 사람과 찐친이 된 은바는 식장에서 식권의 개수를 세는 주요 업무를 맡았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두 사람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은바는 내게 청혼을 했고 우리는 식장을 알아보게 되었다. 원래 비혼주의자였던 내가 결혼을 하게 된 것도 놀라웠는데, 고작 식 하나 올리는데 뭐 이렇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은지 두 번 놀랐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이었던 나는 전통혼례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드레스? 고를 필요 없음. 어차피 한복임. 빨간색과 초록색 중에 하나 선택하면 됨.
축가? 은바 팀원들의 연희 공연으로 대체.
대행업체? 은바가 대학 다닐 때부터 혼례 연주 알바 했던 곳에 의뢰.
모든 것이 한 큐에 진행됐다. 다만 생각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은바의 활동 비수기인 1월에 식을 올려야 했는데 날씨가 춥다 보니 야외에서는 못하고 무조건 실내 예식장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타고 입장할 '꽃가마'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식장이 서울에 몇 없었던 것이다.
며칠 동안 수소문해서 알아본 결과 괜찮은 곳을 하나 찾았다. 바로 어린이회관 결혼식장. 마치 극장처럼 공간이 넓었고 전통 혼례에 웬일로 호의적이었다. 옳다구나, 하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지만 한편 우리의 하객들에게 닥칠 민망한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당시는 탄핵 정국으로 나라가 꽤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그런데 결혼식장 1층에 이 회관을 만든 전 대통령 어머니의 동상이 있었고, 곳곳마다 그 일가의 업적을 칭송하는 상징물이 놓여 있었다. 애석하게도 결혼식 하객의 대부분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라는 사실.....(이만 말 줄임)
여러 웃픈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결혼식을 올리게 됐고, 그날 백자까는 우리의 '기럭아범'이 되어주었다. 전통 혼례에서 기럭아범이라는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식에 제일 먼저 입장하는 인물로서, 주례 선생님이 기럭아범이 들고 있는 기러기를 전달받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혼례가 시작된다.
그런 의미로 기럭아범은 보통 주변 사람들 중에서 제일 모범적으로 잘 살고 있는 선배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백자까는 그런 선배였으므로 당연히 제일 먼저 부탁을 했다. 처음엔 흔쾌히 해주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기럭아범에 대한 의미를 듣고 난 이후 부담스러워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뚱하게 서 있는 백자까에게 다짜고짜 한복부터 입혔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백자까는 기러기를 양손 위에 겨우 올렸다.
어찌나 긴장을 한 건지 백자까는 혼례 내내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숙청 1분 전' 표정이라며 놀려댔다.
어쨌든 기럭아범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일곱 명에서 네 명으로 줄긴 했지만, 구 소랑팸 역시 부족한 서로를 옆에서 잘 보필해 가며 지내고 있다. 그 사이 새로운 멤버가 되어버린 은바는 리더 백자까와 서로 죽고 못 사는 절친이 됐다.
게다가 얼마 전 우리는 백자까와 솔 부부가 터를 잡은 영종도로 이사까지 온 탓에, 지금은 거의 두 지붕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김장 때면 함께 김치를 담고, 가을이면 삼목항에서 꽃게를 사 와 찜을 해 먹고, 서로의 건강검진 일정을 챙겨주며, 효과 좋은 영양제가 있다면 제일 먼저 추천해 주는 사이로.
백자까 부부는 우리의 바바TV 일도 함께 공동 육아를 하는 느낌으로 살뜰히 케어해 주고 도와준다. 출연도 해주고 촬영도 해주고 바쁠 때는 편집도 도와준다. 어쨌든 이렇게 친구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에 5년 동안 꾸준하게 일주일 1 영상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가끔 맥주를 마시며 친구들과 함께 지난 영상을 보곤 한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싶다가도 그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다 같이 무사히 보냈다는 것에 안도한다. 아직도 예전처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 웃곤 하는데, 그럴때면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행복하다.
바바TV의 구독자들 역시 우리에겐 친구들과 마찬가지인 존재다.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그들도 우리의 온갖 산전수전을 옆에서 지켜본 목격자가 되었다.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느긋하게 지켜보며 서로 끈끈한 우정을 다지게 되었는데, 그게 참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 의미로 은바의 꿈 중 하나는 우리를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친구들과, 바바TV의 구독자들을 모시고 함께 차박을 하는 것이다. 원대한 계획도 이미 세웠다. 캠핑장을 하나 빌려 우리끼리 느긋하게 2박 3일 정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낮에는 간단한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놀다가, 저녁에는 은바가 구워준 특제 바비큐를 나눠 먹으며, 은바 팀원들이 준비한 전통 연희 공연을 함께 보는 것. 그야말로 바바TV와 함께 하는 연희대잔치 캠핑축제가 되지 않을까. 그럼 촬영은 백자까가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