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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바 Oct 26. 2024

전통 요정으로 만들어 준 직업 공개 영상

언젠가부터 영상을 올릴 때마다 아래와 같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은바 형은 월요일에 왜 놀아?]


[평일에 차박 가는 게 제일 부럽네요]


[그래서 도대체 하시는 일이?]


나 역시 좋아하는 유튜버들을 볼 때마다 궁금하긴 했다. 과연 이게 전업일까? 아니면 다른 직업이 있을까? 


우리 채널의 구독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끔 퇴근박 영상을 찍고, 본업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흘린 적도 있으나 어쨌든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었다. 어쩐지 좀 쑥스럽기도 했고. 


은바는 중학교 때부터 장구를 쳤고, 예고에 들어갔고, 한예종 연희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전통 예술을 기반으로 한 창작 작업을 주로 하는 공연자다. 그런 이력을 가졌기에 '직업이 좀 독특한 편이다', 라고 대충 이야기를 흘렸더니 그때부터 더 많은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 구독자들은 은바를 알아보고 이런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아니, 은바가 국악한마당에 왜 나오죠?]


[오늘 리조트 상설 무대에서 장구 치는 거 봄]


[영화 흥부에 나오지 않았나요? 풍물패로?]


이런 목격담이 올라올 때마다 '흐린 눈 부탁합니다. 공개하기 전까지 부디 모른 척해주세요'라고 대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런데 몇 번 그러다 보니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시원하게 직업 공개를 해버려?


본업에 대한 이야기를 더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도 있고, 구독자들을 공연에 초대할 수도 있고, 나아가 은바라는 캐릭터의 확장성?을 보건대 그쪽이 더 나을 듯싶었다. 당시 구독자가 4만 5천 명에서 계속 정체 중이기도 했고. 


그렇게 우리는 라이브에서 공약을 하나 걸었다. 구독자 5만을 넘으면 시원하게 본업을 공개하기로. 


딱 5천 명만 더 채우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1년이 지나도 구독자의 수는 그대로였고, 우리는 결국 그냥 먼저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한편으로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한껏 올라가 있는 상황인데 괜히 허탈감만 주는 거 아닐까? 연희자라는 직업이 뭐가 그렇게 특이하다고. 그냥 어렸을 때부터 장구를 배웠고, 어쩌다 보니 계속 이 일을 해왔던 것뿐인데. 그리고 혹시나 우리의 영상을 보고 연희자들은 다 이렇게 사나? 이런 생각을 하나?라고 오해를 살지도 모를 일이었다. 


괜히 영상을 편집하는 내가 다 떨렸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남편의 인생을 영상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최대한 진솔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5년 동안 영상을 꾸준히 봐주신 구독자 분들에게 좀 더 솔직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바바TV 은바가 아니라 연희자 민현기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는 평소와 달리 비장한 마음으로 편집에 임했다. 



은바가 오랫동안 배우고 익혔던 특기는 바로 '김오채류 설장고'였다. 설장고는 앉아서 치는 게 아니라 서서 치는 방식인데, 특히 김오채류 설장고는 장단 사이마다 들어가 있는 기예가 멋스러운 게 특징이다. 한예종 실기 시험을 볼 때도 은바는 설장고를 선보였고 당당히 합격했다. 


언젠가부터 창작극을 주로 하느라 장구 연주만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때마침 딱 기회 좋게 은바가 속한 팀에서 <홀로>라는 공연을 기획 중이었다. 팀원들 개개인마다 각자 잘하는 장기 하나씩 선보이는 갈라쇼 느낌의 공연이었다. 당연히 은바는 '김오채류 설장고'를 선보였다. 


쉴 새 없이 바뀌며 몰아치는 장단이 기가 막혔고, 쓰고 있는 고깔만큼이나 화려한 몸짓과 연주가 돋보였다. 지금은 비록 창작극을 하느라 춤과 연기에 더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나의 본령은 '장구잽이' 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남편이어서가 아니라 은바는 확실히 팩 망치를 잡고 있는 것보다 장구채를 잡고 있는 모습이 더 멋있다.  



은바는 현재 <the 광대>라는 팀에 소속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창작 연희팀 중 제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팀이다. 재담, 탈춤, 버나, 죽방울, 판굿 등 연희의 모든 종류를 망라하여 창작극을 만드는 팀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the 광대는 가끔 이렇게 '쇼'의 느낌으로 가볍게 만든 전통 공연도 선보인다. 기예를 넘어, 전통의 영역을 좀 더 확장해, 이렇게 대중적인 형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때로는 어린이 극을 만들기도 하고 출연도 한다. 주로 '덜미'라는 전통 인형을 가지고 연행을 할 때가 많은데 이럴 때면 두 배로 바쁘다. 연습해야 할 것도 많고 익혀야 하는 기술도 많기에. 어쨌든 수많은 축제와 행사를 다니지만, 은바가 유독 많이 하는 공연 역시 어린이 극이다. 


특히 올해는 '신나는 예술여행'이라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사업에 선정되어 전국에 있는 문화 소외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연하는 프로젝트도 펼쳤다. 한적한 시골에 있는 작은 분교나 어린이집에서 주로 공연을 하는데,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할 때면 오히려 본인들이 더 기운을 받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한다.  



아이들의 반응은 훨씬 뜨겁고 즉각적이다. 실제로 처음 보는 사자탈이 신기하다는 듯 넋을 놓고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고, 입으로 구음을 내뱉으며 함께 사물 장단 배우는 시간을 유독 즐기는 아이들도 있다. 



분에 넘치는 호응을 받으니 연희자들 역시 절로 흥이 나서 평소보다 에너지를 더 쓰고 나오는 것 같단다. 무엇보다 뿌듯한 마음은 덤이라고. 평소 공연을 접하기 힘들었던 아이들이니만큼 '이게 애들 인생 첫 공연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두 배는 더 뛰어다닌다고 한다. 


나는 이번 영상을 위해 은바에게 특별 임무를 하나 부여했다.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 최초이지 않을까 싶은데.... 바로 '사자탈 속 영상'이다.


사자춤은 연희자 두 명이 사자 가면을 착용하고 등장하여 온갖 재주를 부리는 연희다. 앞다리 한 명, 뒷다리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사람이 마치 한 몸처럼 합체하여 춤을 추는게 특징이다. 몸무게가 세 자리인 은바는 당연히 뒷다리 담당이다. (앞사람의 몸을 뒤에 있는 사람이 받쳐서 추는 춤이기에 앞사자 담당은 무거우면 절대 안 된다. 흠흠.)


그리고 은바는 사자춤을 추는 와중에도 충실하게 영상까지 찍어 왔다. 




털옷도 무거운 데다 앞다리 맡은 친구를 목으로 받치고 계속 춤을 춰야 하기에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때문에 여러모로 힘이 들고 위험한 기예이기도 하다. 


앞다리 - 은바의 후배 / 뒷다리 - 은바


편집을 하기 위해 영상을 보는데 괜히 내가 눈물이 찔끔 다 났다. 물론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했지만, 탈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는 은바를 보자 새삼 '내 남편이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었었지' 하는 생각이 다 들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은바는 사자춤을 추다 허리 디스크가 터진 적이 있다. 한 여름에 털옷 입고 야외에서 사자춤을 추다 탈진한 적도 있다. 그런 탓에 웬만하면 '사자 의뢰는 받지 말아라' 하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니 뭐 어쩌겠어. 


어쨌든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을 들여 편집했고, 결국 [차박 유튜버 5년 - 이제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말이죠]가 업로드됐다. (제목에 어그로 좀 끌었습니다, 헤헤) 두 근 반, 세근 반, 떨리는 마음으로 은바와 실시간으로 반응을 체크했다.


결과는?


여태까지 업로드 한 영상 중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뜨거운 관심과 사랑의 댓글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더 놀랐다. 특히 구독자 분들이 전통 공연에 이렇게나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줄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 은바의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곧잘 했었다.


전통 공연 재밌는데.... 이렇게 젊은 연희자들이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만들고 있는데..... 아직도 전통 예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쩐지 다른 예술 분야보다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하는 느낌에 서운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연희자들은 오늘도 대중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어쩐지 전통 예술은 아직까지 진입 장벽이 높아 보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그랬다. 은바를 만나기 전까지 전통 공연은 내게 '민속촌에서나 있는 것' 혹은 '국악한마당?' 정도였다. (나의 무지함을 용서해주세요 은바 씨)


그러나 어쨌든 남편의 본업이 이쪽인 관계로 수많은 전통 공연을 보게 기회를 얻었는데, 보면서 매번 느끼는 점은 오히려 전통 연희야 말로 대중친화적인 장르라는 것이다. 


해학과 풍자의 메시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딱 보면 알 수 있는 화려한 기예들, 나아가 현실의 이야기를 담은 다양한 창작극까지. 전통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정말 재밌다. 


어쨌든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나아가 전통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뿌듯했다. 그 마음을 구독자 분들이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바바TV 은바는, 연희자 민현기는, 이렇게 '국민문화요정'이라는 거창하지만 귀여운 별명까지 하나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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