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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바 Oct 21. 2024

이거 한번 잡숴 봐

손에 MSG를 장착한 사람들이 있다. 그냥 가볍게 뚝딱 만드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의 손길만 닿으면 웬만한 맛집 음식이 바로 탄생한다. 은바가 딱 그랬다.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볶음밥이든, 올리브유만 대충 두른 파스타든, 시판 된장 하나만 넣은 찌개든 이상하게도 은바의 손길만 닿으면 맛이 기가 막혔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 요리사는 항상 은바였다. 평소에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인데, 제대로 각 잡고 캠핑을 나가면 그야말로 에드워드 리 셰프님 저리 가라 할 정도. 은바 역시 집에서 하기 힘든 BBQ나 생선 요리, 나아가 튀김 음식까지 맘껏 할 수 있으니 캠핑만 가면 마치 날개를 단 듯 훨훨 날았다. 



언젠가부터 영상의 댓글도 차박에 대한 것보다, 은바가 만든 요리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서 용기를 얻은 모양인지 어느 날 은바가 불쑥 의견을 던졌다.


"캠핑 요리 하는 걸 아예 코너로 만들어보는 건 어때?"


"오홍. 나쁘지 않은데?"


구독자들이 우리가 뭘 먹는지, 어떤 걸 만드는지에 관심이 많으니 아예 차박 브이로그의 일정 분량을 캠핑 요리에 대한 것으로 채우자는 말이었다. 물론 나 역시 은바가 키워낸 '미식 장학생'이므로 당연히 그 의견에 적극 찬성했다.


"들어 봐. 일단 내가 생각한 코너 명은 <이거 한번 잡숴 봐>야."


그러나 도저히 <이거 한번 잡숴 봐>라는 코너 명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잡숴 봐'라니. 너무 유치한 워딩 아닌가? 장구는 잘 치는지 몰라도 작명 센스는 영 아니네. 나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만큼은 은바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단 한번 해보자'라는 은바의 설득 1단계가 발동됐다. 이쯤 되면 어쩔 수 없다. 싫은 티 한 번 내주고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그리고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거 한번 잡숴 봐>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바바TV의 대표 콘텐츠가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잡숴 봐'라는 코너 명에는 박수를 쳐줄 수 없지만, 적어도 은바가 매주 만들어주는 캠핑 요리에는 물개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짝.


당연히 요리도 장비발이다.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미래의 셰프에게 투자하는 느낌으로 은바에게 장비를 사줬다. 늘어가는 장비 수만큼이나 요리의 종류도 점점 다양해졌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는 은바가 주로 사용하는 캠핑 요리 장비를 소개하고, 그걸로 할 수 있는 캠핑요리까지 보여드리면 어떨까 싶다. (공복 주의)


1. 코팅 그리들


그리들(Griddle)은 구이나 전골 등의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커다랗고 두꺼운 철판이다. 흡사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보통 캠핑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구입하는 건 '주물 그리들'이다. 열 보존율이 좋고 스크래치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꽤 무겁고 팬을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 역시 처음엔 주물로 구입했다. 그러나 다루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다음 알아본 것은 '코팅 그리들'. 알루미늄 코팅인데 주물에 비해 열 보존율이 낮긴 하지만, 많이 가볍고 세척까지 용이해 가지고 다니기 편했다. 버너 위에 올려놓으면 제법 캠핑 분위기도 나서 좋았다. 당연히 그리들로 자주 해 먹은 요리는 구이다. 



은바는 고기를 고를 때 '두께'를 중요시한다. 너무 얇은 것보다는 좀 두툼해서 씹는 맛이 있는 걸 선호하는 편.

아예 벌크 통고기를 사서 소분한 적도 많다. 이렇게 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고기를 다 구운 다음에는 버섯이나 통마늘을 구워 가니쉬를 만든다. 특히 은바가 추천하는 건 '꽈리고추'인데 소고기와 함께 먹으면 느끼한 맛도 잡아주고 향도 좋아 자주 먹는다.


tip. 새송이 버섯은 '어슷썰기'로 썰은 다음 구우면 식감이 한층 더 배가 된다. 야들야들한 것이 마치 관자를 먹는 것 같다. 소고기 위에 버섯을 싸서 기름소금에 찍어 먹으면 바로 극락. 



코팅 그리들을 쓰면 이 정도 미나리 삼겹살쯤은 일도 아니다. 그냥 프라이팬에 하는 것보다 보기도 좋고 굽기도 편하다. 게다가 그리들에 고기를 올려놓으면 은은하게 감도는 열 때문에 계속 따뜻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2. 그릴


아무리 생각해도 캠핑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BBQ. 우리 역시 처음에는 고기를 더 맛있게 구워 먹기 위해 차박을 시작했다. 당연히 그릴을 산 이후 삼겹살이나 목살, 돈마호크, 소고기, LA갈비, 양고기 등등.... 웬만한 고기는 다 구워 먹어봤다. 어쩐지 고기는 좀 식상하니, 여기서는 우리가 먹었던 조금 색다른 BBQ를 소개해볼까 한다. 



- 추운 날씨에는 조개 구이


우리는 주로 차박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특산품을 사서 요리해 먹는 편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아묻따 '태안'으로 쏜다. 우리가 자주 해산물을 구입하는 곳은 태안의 '모항항'이다. 


다른 직판장에 비해 규모가 작다. 딱 있을 것만 있는 느낌. 게다가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하니 말해 뭐 해. 손질까지 다 해주시기에 캠핑장에 도착해서 가볍게 세척만 한 뒤, 바로 그릴 위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을왕리에서 사 먹는 돈의 반의 반 가격으로 질 좋은 조개구이를 실컷 먹을 수 있다. 


tip1. 조개를 구울 때는 숯을 사용하지 않고 번개탄만 쓴다. 물이 떨어지기에 불이 자주 꺼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그을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tip2. 직판장 주변의 편의점에서는 웬만하면 다 번개탄을 팔고 있다. 



-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 쉬운 훈제 고기


그릴로 웬만한 것들은 다 구워 먹어 봤기에 '훈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데.... 3시간 동안 조리했는데 망하면 우리 뭐 먹어야 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일단 통돼지고기에 시즈닝을 발랐다. 시즈닝이라고 해봤자 거창한 아니라 시판 양념갈비 소스에 후추 정도다. 


은박 접시에 맥주를 넣고 그 옆으로 차콜을 넣었다. 석쇠 위에 통고기를 올린 뒤 3시간 동안 뚜껑을 덮고 기다리면 끝! 보통 훈제를 생각하면 비프립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의외로 돼지고기 훈제도 맛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훈제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돼지고기를 추천한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보다 씹는 맛이 있는 퍽퍽 부위면 더 좋을 것 같다. 우리 같은 경우 등심과 삼겹이 붙어 있는 돈마호크를 사용했다.)


그리고 3시간 후....


처음으로 도전한 돼지고기 훈제


대성공!


그날로 훈제의 매력에 단단히 빠져버린 우리는 아예 훈제를 위한 차박을 계획했다. 훈제하면 뭐니 뭐니 해도 비프립!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날, 우리는 비프립과 그릴을 챙겨 캠핑장으로 향했다. 점심은 가볍게 삼각김밥 하나 까먹고, 저녁에 있을 대만찬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시즈닝은 간단하게 소금, 후추만 뿌려줬다. (이렇게만 해도 맛있다) 그다음 사과나무 칩을 30분 정도 물에 불렸다. 차콜 사이에 넣어 은은하게 사과향이 배도록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훈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불이다. 차콜 온도를 잘 맞춰야지 두꺼운 고기가 타지 않고 은은하게 안까지 잘 익을 수 있다. 처음엔 170도로 시작해서 서서히 온도가 내려갈 때마다 차콜을 하나씩 더 넣어 줬다. 


참고로 비프립 훈제에는 6시간이 걸린다.....


tip. 2시간마다 한 번씩 고기에 사과주스를 뿌려줬다. 은은한 사과 향이 배어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기를 촉촉하게 만들어준다. 



美味! 


6시간이 아니라, 60시간이 걸려도 하고 싶은 맛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쭉 나오는 육즙, 거기에 은은하게 배어 있는 사과향. 부드럽지만 씹는 질감도 있는 최상의 고기 맛! 흡사 파인다이닝에서 메인 메뉴로 나올 법한 대단한 요리였다. 



- 가성비 최고인 숯불 닭갈비


그릴이 있다면 꼭 숯불 닭구이를 해보기를 권한다. 일단 가격이 저렴하다. 마트에 가면 닭다리 정육해 놓은 것을 팩으로 파는데 비싸봤자 만 원이 안 된다. 두 팩 정도 사면 두 사람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 


요리도 딱히 할 게 없다.... 그릴이 알아서 다 해준다. 


우리는 보통 소금구이, 양념구이 이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해 먹는데 소금구이는 말 그대로 소금과 후추만 간단하게 뿌리고, 양념구이 같은 경우에는 시판 양념통닭 소스를 발라주기만 했다. (소스가 없다면 고추장 + 물엿 + 케첩 정도만 넣고 섞으면 끝)



궁극의 닭고기 맛.....


닭갈비에 질렸다면 꼭 숯불에 구워서 먹어보시길. 진정한 닭고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한 것이 무한대로 들어가는 맛이다. 국물이 필요하다면 계란 두세 개 정도 풀어서 물 넣고 계란찜을 만들어도 좋다. 그야말로 그날은 닭으로 시작해 닭으로 끝나는 꼬꼬데이.


tip. 껍질 때문에 잘 타기 때문에 자주자주 뒤집어 줘야 한다. 불도 최대한 약불로 만든다. 못 살게 굴듯 여러 번 뒤집어가며 굽는다.


그릴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아서 좋다.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고, 훈제를 할 수도 있고, 불멍을 위한 화로대로도 쓸 수 있다. 


3. 거북선 화로대


캠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제품으로, 화구를 통해 불을 뿜어내는 모습이 마치 거북선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화로대다. 



남들은 주로 불멍을 위한 화로대로 쓴다지만, 우리는 꼬치구이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걸로 꼬치를 구우면 바로 캠핑장이 이자카야가 된다. 


꼬치구이의 경우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편이다. 제법 종류도 많고 퀄리티도 괜찮은데 가격까지 저렴하다. 삼겹살에 질렸다면 가끔 이렇게 꼬치구이를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보기에도 좋고 굽는 재미도 있다. 맛도 당연히!




쉽고 간단한 접이식 조립에, 연통을 연결하면 화목 난로의 감성까지 낼 수 있어 좋다. 이 화로대는 가끔 들고 다닌다. 가격도 저렴하고 무게도 가벼운 데다 파우치 안에 쏙 넣으면 수납부피도 그렇게 많이 차지하지 않아서 괜찮다. 


그 밖에....


추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캠핑 요리를 위해 이런 것까지 만들고 구입해 봤다> 시리즈. 


- 솔로 스토브


캠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불멍이다. 그런 이유로 시중에 많은 화로대가 출시되어 있지만, 특히 솔로 스토브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점들 때문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제일 큰 장점은 이중 연소가 된다는 것이다. 내통과 외통으로 구성되어 있어 나무가 연소하며 발생하는 연기를 다시 한번 더 태워준다나? 덕분에 더 오래 타고, 연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남는 재가 거의 없다. 불이 가운데로 싹 모이기에 보기에도 멋스럽다. 


단점은 역시 비싼 가격이다.... 게다가 무겁고 수납부피까지 크다. 


차박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은바 역시 당연히 솔로 스토브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비싼 가격 탓에 쉽게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유튜버 선생님이 솔로 스토브를 DIY 해서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방법은?



주로 급식에 쓰는 이중국통....


은바는 그날로 솔로스토브 DIY 작업에 착수했다. 드릴로 구멍을 40개나 뚫었단다. (온종일 스테인리스 국통에 구멍을 뚫느라 지친 은바는 밤새 몸살을 앓았다. 이래서 DIY가 어렵구나를 제대로 실감. 그냥 돈을 많이 벌어서 완제품을 사는 게 제일 편한 방법 같기도.)


어쨌든 직접 만든 이중국통 솔로 스토브를 들고 차박지로 향했다. 일단 화로대로 먼저 사용해 봤다. 안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다. 



정말 빠르게 잘 탄다. 신기한 게 그을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워낙 타는 속도가 빨라서 거의 장작 한 상자를 두 시간도 안 되어 다 태웠다. 



또 다른 좋은 점은 안에 잔불이 오래도록 남아 있어 서서히 익혀야 하는 요리에 제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불멍을 실컷 즐긴 후에, 그 위에 석쇠를 올렸다. 닭꼬치를 올린 다음 앞뒤로 번갈아 돌려가며 열심히 구웠다. 



그러나 만든 노고가 무색하게도 우리는 그 이후 솔로 스토브를 생각보다 자주 쓰진 않았다. 장작이 너무 빠르게 타서 여유롭게 불멍을 즐기기엔 좀 무리가 있었고, 무엇보다 수납부피가 컸던 탓에 의외로 손이 잘 가질 않았다. 어차피 그릴을 들고 다니니 좀 부차적인 느낌도 있었고. (이럴 거면 왜 만들었냐고....)


- IGT


요즘 캠퍼들 사이에서 IGT가 유행이다. IGT는 Iron Grill Table의 약자이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철제 그릴 테이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쉽게 설명하면 테이블에 그릴을 매립하여 사용이 가능한 조립식 테이블을 말한다.


대충 이렇게 생겼다.



사진으로 알 수 있듯이 IGT의 가장 큰 장점은 '나만의 캠핑 테이블 세팅이 가능하다는 것.' 자신의 취향에 맞춰 여러 유닛을 넣고 조립하여 사용할 수 있다. 설치도 생각보다 쉽고 간편하다. 무엇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딱 갖고 싶게 생겼다. (이 정도면 거의 고깃집 테이블 아니냐....?)


우리는 서브 테이블 하나를 옆에 붙여 길이를 연장했고, 바스켓 유닛을 구입해 그 안에 맥주와 나무 그릇을 놓았다. (나중에 설거지 한 그릇도 여기에 놓으면 식기 건조대처럼 쓸 수 있다.) 


이렇게 차콜 그릴, 심지어 화로까지 올려서 사용할 수 있다. 날씨 좋을 때 텐트 밖에다 설치하면 여기가 바로 XX진사갈비다.


역시 단점은 가격.... 그리고 생각보다 번잡하다.


가뜩이나 챙겨야 할 게 많은데 테이블에 넣을 유닛들까지 챙기기란 쉽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랑 함께 가는 캠핑에서는 유용하게 쓸 것 같지만, 우린 보통 둘이서 다니기에 이 정도 스펙은 좀 과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정말 그동안 많이도 먹었다 싶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즐기기 위한 캠핑에서 먹을거리는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사실 캠핑에서는 뭘 먹어도 맛있지만, 그래도 갈 때마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할까?' 고민하는 것이 퍽 재밌다. 어쨌든 캠핑에선 좀 더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럴 때는 새로운 시도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물론 장비는 처음부터 좋은 걸 사는 것보다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일단 찾은 다음 서서히 늘려가는 게 좋다. 실제로 우리가 처음 차박을 떠났을 땐, 버너 하나와 다이소에서 산 5천 원짜리 프라이팬 하나 겨우 들고 갔었다. 솔직히 이 정도만 돼도 웬만한 요리는 거뜬하게 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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