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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바 Oct 18. 2024

그래서 절필했다면서?

"요즘 바빠? 무슨 작업해?"    

 

간혹 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이다. 별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냥 가볍게 던지는 안부 인사 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러나 언제부터 나는 이 질문에 편하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하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요즘 유튜브 하는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할 때마다 외려 실실 웃으며 장난스레 대꾸했다. 상대는 내 말이 실로 의외라는 듯 다시 물었다.     


“네가? 진짜? 유튜브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다. 나 역시 내가 진짜 유튜버가 될 줄 몰랐으니까.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유튜버는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고, 세상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많으며,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고, 주변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참고로 나의 MBTI는 INFJ다. 주목받는 걸 쑥스러워 하다못해 힘들어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주로 밖이 아닌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쪽이다. 실제로 나는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적어도 1시간은 소파에 누워 있어야 한다. 잠깐 나갔다 왔을 뿐인데도 기가 쭉쭉 빨리기 때문에. 


그런 내가 유튜버라니. 그것도 차박 유튜버라니. 나 조차도 이런 내가 생소하다. 그러니 상대의 반응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어쨌든 정말 의외긴 했나 보다. 어느새 내가 유튜브를 한다는 소문이 주변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우연히 다른 공연장에서 만난 K 선생님이 대뜸 이렇게 묻기 전까지,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 작가. 요즘 유튜브 하느라 바쁘다며?”     


(어떻게 아셨지? 과연 누구한테 들었을까?)


“아, 그냥 취미로 소소하게 하고 있어요. 선생님.”     


“그래서 절필했다면서?”     


다짜고짜 들리는 절필이라는 말에 나는 심히 당황했다.      


“아이고 쌤, 무슨 절필이에요. 그냥 못 쓰니까 안 쓰고 있는 것뿐인데.”     


부러 농담하듯 씩 웃어 보였지만 속은 제법 쓰렸다.     


나는 2017년 봄에 뮤지컬 <판>이라는 작품으로 입봉 했다. 그 후 몇 개의 트라이아웃과 리딩 공연의 대본을 썼다. 뮤지컬보다 규모가 좀 작긴 했지만 전통 연희극 대본도 썼고,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축제 대본이나 인형극 대본도 부지런히 썼다.      


그 사이 대학원도 졸업했다.      


열심히 대본을 썼지만 제작사의 사정으로 개발이 중단된 작품도 있었고, 계약 단계까지 가서 엎어진 작품도 있었다.      


솔직히 한 번도 펜을 꺾은 적은 없었다. 단지 이렇다 할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유튜브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작가라는 직업을 진즉 관뒀다며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면서 처음 1년 동안은 거의 이 일에만 올인하다시피 했다. 내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가볍게 한번 해보자’라고 장난처럼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 채널이 쑥쑥 성장하는 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행운 같은 일이었지만, 우리는 처음 올린 영상부터 꽤 많은 주목을 받았다. 조회수도 잘 나왔고, 구독자 수도 빠르게 증가했다. 재생 수익을 낼 수 있는 채널이 되면서부터는 협찬도 받게 되었다. 비즈니스 메일에 답을 하고, 업체와 미팅을 하고, 촬영과 편집을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뭐랄까,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반응에 마음이 들뜨기도 했지만 한편 두려움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말을 타는 법도 모르는데 덜컥 경주마에 올라타 고삐를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허둥지둥 대며 당황할 시간조차 없었다. 어떻게든 손에 힘을 꽉 주고 차분하게 상황을 컨트롤해야 했다. 그렇게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유튜브에만 쏟다 보니 글을 쓰는 일에 대한 리듬을 잃어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허울 좋은 핑계다. 채널이 안정화되고 나서부터는 다시 현업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언젠가부터 대본을 쓰는 일이, 사람들과 협업을 하는 일이, 꽤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덜컥 상업 무대 작가로 입봉 한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생각했다. 


내가 졸업한 한예종 음악극창작과는 뮤지컬 제작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 해에 극작 4명, 작곡 4명을 선발한다. 서로 돌아가면서 페어를 이뤄 뮤지컬을 만드는 커리큘럼으로도 유명하다.

      

1학년 – 10분 뮤지컬

2학년 – 20분 뮤지컬, 45분 뮤지컬

3학년 – 졸업 작품     


이런 식으로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며 뮤지컬에 대해 익히고 작품을 만든다. 


보통 선배들의 경우, 졸업 작품을 가지고 상업 시장에 진출하는 편이었다. 선생님들 역시 우리를 볼 때마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준비가 다 된 다음에 입봉 해도 늦지 않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러나 회사까지 때려치우고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에 대학원에 온 나는 무척 조급했다. 하루라도 빨리 상업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었다.      


못 먹어도 고.      


주저하는 작곡가를 어떻게든 설득해 가며 2학년 1학기에 발표한 20분 뮤지컬을 2시간 분량으로 늘렸다. 곰팡이 냄새 폴폴 풍기는 지하 연습실에서 매일 밤을 새 가며 대본을 고치고 음악을 다듬고 배우들과 함께 녹음을 했다. 그렇게 세 달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작품 하나에 다 바치니 어쨌든 결과물이 나오긴 했다.      


당시 뮤지컬 공모전 중 가장 규모가 컸던 CJ creative minds에 지원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자마자 우리 작품이 그 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날 작곡가와 부둥켜안고 어찌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지.


그러나 행복한 순간도 잠시. 


배우들과 연출부와 음악팀과 제작사 직원들이 모두 모인 첫 리딩 자리. 나는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가시밭길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모두가 내 어설픈 대본만 놓고 의견을 주고 받기 시작하는데, 그만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대로 연습실 중간에 커다란 싱크홀이 생겨, 나만 쏙 그 안으로 빠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주변을 쭉 둘러봤다. 이 많은 사람 중에 아마추어는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꼬고 있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모두 익숙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했다. 아주 프로답게.


이거 대본이 너무 엉망진창이라 못할 거 같은데요? 당선 취소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된다면 좀만 시간을 주세요. 다시 제대로 고쳐보겠습니다!라고 말할 시간조차 없었다. 어쨌든 정해진 일정이 있었고, 내 징징거림을 받아 줄 사람들도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어. 뭐가 됐든 일단 해보는 수밖에. 


그러나 한편으로 좋은 점도 있었다. 일단 프로들과 작업을 하다 보면 일을 정말 빨리 배우게 된다. 책에서 볼 수 없는, 강의 내용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바로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속성으로 익히게 된다.      


물론 스스로 추가 학습도 하게 된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내 부족한 자질과 낮은 수준을 여실히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걸 들키지 않으려면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 노력이라는 걸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점은 거기까지.     


와장창 깨져가며 뭔가를 배운다는 것이 매 순간 고달팠다. 빨리 제대로 된 완성물을 내놓고 싶은데 도무지 방법은 모르겠고, 그렇다고 어설픈 모습은 보여주기 싫고. 심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순간에도 스스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배우들과 연출님과 음악감독님과 작곡가와 PD님은 연습이 막힐 때마다 나를 찾아와 물었다.      


"얘는 왜 이런 말을 해?"

     

글쎄요....     


"도대체 달수의 전사는 뭐야?"

   

글쎄요....     


"그래서 이 작품이 하고자 하는 말은 뭔데?"     


글쎄요....     


바짝 주눅이 들어 있는 상태이니 명쾌하게 대답할 기운도 여력도 없었다. 뭐랄까, 온종일 말로 두드려 맞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연습실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진짜 매를 맞은 것처럼 몸이 다 아팠다. 그런 상황에서도 뭔가를 계속 써야 하고, 쉴 새 없이 수정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왼손으로 눈물을 닦는 와중에도 오른손으로는 키보드를 쳐야 했다.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래봤자 공연 하나 올리는 건데. 나 왜 이렇게 힘드냐. 아니, 나만 이렇게 힘든 거야?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덜컥 공모에 지원했던 당시의 나를 찾아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앞으로 너 X 된다고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든 시간이 약이다. 모두의 노력으로 공연은 무사히 올라갔고, 대학로 한복판에 걸린 포스터를 보며 작곡가와 얼싸안고 방방 뛰었던 기분 좋은 순간도 있었지만..... 한편 뼈저리게 중요한 사실 하나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쓸 운은 처음 당선될 때 다 썼구나. 다음은 무조건 실력이구나. 

    

혹독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후에야 다시 동네 공터로 돌아가 볼 차기 연습부터 하는 기분이긴 했지만. 어쨌든 다시 작법서를 앞에 두고 생각했다. 정말 무모했지. 그러나 장렬하게 잘 싸웠다! 비장한 마음으로 다음 판을 도모하자.


그러나 한편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 지독한 전쟁을 이토록 심약한 내가 다시 치를 수나 있을까? 이미 난 이렇게 만신창이가 됐는 걸? 


다 끝나고 나서야, 내가 무모하게 도전했던 무대가 얼마나 큰 무대인지 여실히 직감했다. 그러다 보니 다음 대본을 쓰는 일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첫 끗발이 개끗발이었다. 가지고 있는 패가 없으니 당연하게도 다음 판은 주어지지 않았다.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유튜브를 하는 마음으로 작가 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힘들었을 텐데. 

     

바야흐로 2019년, 첫 영상을 올렸을 때. 마치 첫 공연을 올렸을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다. 다른 건 하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다음 영상을 또 올렸다는 것. 구독자들과 약속했기 때문에. 영상을 못 올리면 은바와 또 부부싸움을 할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올릴 수밖에 없다, 뭐 그런 마음으로 편집을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적어도 지난주에 올린 것보다얀 낫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매주 영상을 만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 5년이 흘렀고, 어느덧 편집이 손에 익어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주 영상을 올려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들 때마다 속으로 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냥 대충 해서 올리자.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근데 또 어느 순간 몰입해서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어느새 압박감은 사라지고, 어설플지라도 완성된 영상을 인코딩하고 있었다.


5년 동안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어느 날엔 너무 잘 되고, 어느 날은 유독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땐 또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어떻게 매번 재밌는 영상만 올릴 수 있나. 에라 모르겠다. 이번 주 영상은 구려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길.'

     

웃기지만 이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 어쨌든 매주 영상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쪽팔림과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꾸준하게 뭔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결코 비장한 마음은 없었다. 그냥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했다. 


그러니 결과 역시 가뿐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영상은 공들여 작업했는데 조회수가 바닥인 적도 있었고, 어떤 영상은 꾸역꾸역 시간에만 맞춰 올렸는데 대박이 났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계속할 건데 매사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어. 그냥 꾸준히, 성실하게 영상을 편집하는 것뿐.


그러나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자못 비장해졌다. 혼자만의 고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생각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다른 작가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고통스럽게 글을 쓴다. 


남 모르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은 늘 두렵고 비장하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일이 재밌기는커녕 늘 힘들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졌다. 만약 그럴 때마다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대했다면? 아마 나는 이런 혼잣말을 또 주억거렸겠지. 


"대본 너무 별로다. 이번에도 망했네. 근데 뭐 어쩌겠어? 해야 하는 일인데."  


"어라? 쓰다 보니 써지네? 그럼 좀만 더 해볼까?"    


"잘 쓰려고 하지 마. 그냥 계속 써. 꾸준하게."


그냥 의미 없는 혼잣말을 뱉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생각해 보니 늘 그랬다. 시도해 보는 과정 자체가 재밌고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한테 의미 있는 여정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냥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걸었다. 방법을 진짜 모르겠는데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으니까, 창피함을 무릅쓰고 올렸던 것들이 늘 내게 다음을 만들어주었다.     


그 과정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하면서 얻게 되는 충만함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저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좋은 것. 내 것을 완성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 만들어냈다는 자신감. 그냥 행복하니까 하는 거지,라는 가뿐한 마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제는 글을 쓰면서도 이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내게 주어진 도전에 씩씩하게 응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열심히 굴려가며 즐겁게 공상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오늘도 신나게 뚜벅뚜벅 걸어가야지. 


끝에 뭐가 있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뭐가 있긴 있을 거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막막함을 느끼기보다, 느리지만 한 문장씩 채워지고 있다는 기대감을 먼저 떠올리자. 그 언젠가 혼자 사부작거리며 썼던 글을 읽으며 재밌다고 키득키득거렸던 지난날의 나처럼. 


오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워드 창을 다시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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