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M May 24.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밥 말리①

자메이카의 화합을 이끈 레게 음악의 대부

  2018년 11월, 유네스코는 자메이카 레게 음악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불의, 저항, 사랑, 인류문제 등 국제담론에 기여한 덕이다. 레게는 유네스코에서 인정할 정도로 자메이카를 상징하는 음악 장르지만 의외로 역사가 긴 편은 아니다. 

  1960년대 자메이카의 음악은 스카와 록스테디로 대표됐다. 스카는 미국의 재즈 형식을 따랐지만 중간 비트를 강조하고, 베이스 비중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이후 스카에서 관악기 대신 기타의 비중을 높이고, 템포를 낮춘 록스테디라는 장르가 탄생하며 자메이카 대중음악을 이끌었다. 자메이카는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었고, 스카 역시 희망찬 내일을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독립 후에도 자메이카의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높은 범죄율에 심각한 빈부격차 등 사회적 혼란은 여전했다. 당시 자메이카는 자본주의를 내세운 보수 성향의 노동당과 사회주의 성향의 인민국가당이 극심하게 대립했고(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때로는 폭력과 암살 시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독립 후에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자메이카 사람들은 좌절했고, 한편으로는 음악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태동한 레게는 스카 리듬에 기반을 두면서도 느린 템포와 관악기·타악기 위주의 연주, 반복된 리듬을 보여준다. 레게의 다른 특징은 밝은 내일을 노래했던 스카와 달리 사회비판에 주력한 것이다. 혼란한 자메이카 사회에서 레게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고, 훗날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음악가들이 레게를 시도하는 등 음악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평가들이 레게를 논할 때 밥 말리를 빼놓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리가 최초의 레게 음악가는 아니지만 레게를 전세계에 알린 일등공신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말리는 자메이카라는 변방 출신임에도 영국 차트나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차지했고, 각종 매체에서 위대한 음악가를 선정할 때도 말리가 순위에서 빠지는 일은 많지 않다. 

  1945년생인 말리는 영국군 장교 출신인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시대가 시대다보니 말리는 어린 시절 흑인 친구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았고, 그렇다고 백인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데다가 말리의 아버지 노발 말리마저 사망하자 말리의 가족은 1957년 세인트 앤에서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으로 이사했다. 1960년대 먹고 살기 어려웠던 한국인들이 뭐라도 해보고자 무작정 상경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꿈과 현실은 차이가 있듯 말리 가족이 킹스턴으로 이사한 후에도 가계에 큰 변화는 없었고, 말리의 어머니 세델라 말리가 가정부 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말리는 지역 노래자랑 대회 출전을 계기로 음악에 전념했다. 그는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조 힉스 밑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 말리가 만난 버니 웨일러와 피터 토시는 음악적으로 잘 통하는 친구들이었다. 말리는 이들과 함께 기타 연주, 작곡 등 음악을 기초부터 배우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1963년에는 말리, 웨일러, 토시 등이 모여 웨일러즈라는 그룹을 조직했고, 당당히 오디션에 합격해 첫 싱글 <Simmer Down>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Simmer Down>은 대성공을 거둬 웨일러즈도 자메이카 내에서 순식간에 유명 그룹 반열에 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항의 대중음악가] 데이비드 보위④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