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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May 23.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데이비드 보위④

화려한 음악의 종합 예술가, 독일 통일의 일등공신

  보위의 진심이 통한 것인지 공산권 국가에서도 보위의 음악은 큰 인기를 끌었다. 1987년 5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Glass Spider』 투어는 보위의 인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때만 해도 공산권 국가에서의 공연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동유럽 국가들은 투어 장소에 포함되지 못했다. 동독 공연을 원했을 법한 보위는 베를린 공화국 광장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보위를 향한 동독 국민들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침 공연이 열린 공화국 광장은 베를린 장벽과 가까운 곳에 있었고, 동독 국민들은 보위의 음악을 듣고자 베를린 장벽 반대편에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관심을 보이다가 어느새 그 숫자는 수천 명으로 늘었고 결국 경찰이 최루 가스까지 뿌려가며 관중을 해산시켰다. 이 공연은 독일 분단 후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Heroes"가 절정에 달하자 독일 관객들은 소리지르고 노래하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밀어댔다. 그들은 ‘장벽을 반대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인민 경찰을 향해 병을 던지거나 욕설을 뱉었다. 시위도 순간적으로 같이 벌어졌다. 무대에서는 보위가 반대편의 응원을 들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 2014년 2월 1일『The Financial Times』  

 
 

  보위의 공연이 있고 2년 후인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은 마침내 붕괴됐다. 보위 덕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보위는 독일에서 엄청난 평가를 받고 있다. 2016년 6월 보위가 1970년대 거주하던 베를린 주택에 보위 기념 명판이 들어섰고, 미하엘 뮐러 당시 베를린 시장은 “보위는 베를린에 속해있고, 보위는 우리에게 속해있다”라고 말했다. 


  1990년대 이후에도 보위의 음악적 실험은 계속됐다. 1993년 앨범 《Black Tie White Noise》에서 아트 록과 애시드 재즈 음악을 보여줬고, 1995년 앨범 《Outside》는 인더스트리얼 록을 도입했다. 1997년 앨범 《Earthling》에서는 일렉트로니카의 한 종류인 드럼 앤 베이스 사운드까지 들을 수 있다. 최신 트렌드에 맞춰가려는 보위의 노력이 돋보였지만 아무래도 젊은 음악가와의 경쟁에서 이기긴 어려웠기에 상업적 대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보위의 2000년대는 조용한 편이었다. 2003년 앨범 《Reality》 이후 오랜 기간 신작을 발표하지 않았고, 공연도 월드 투어 대신 자선공연이나 지역 축제에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였다. 《Reality》 수록곡 <New Killer Star>와 <Fall Dog Bombs the Moon>에서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등 사회 참여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워낙 난해한 가사라 이해하기 어려웠던 탓인지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보위의 공식적인 공연도 2007년 5월 1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하이 라인 페스티벌 무대가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2013년 1월 보위는 뜬금없이 싱글 <Where Are We Now?>를 발매했고, 같은 해 3월에는 앨범 《The Next Day》를 발매했다. 앨범 발매만 했을 뿐 투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팬들에게는 충분히 기쁜 소식이었다. 보위가 따로 홍보한 적도 없었음에도 《The Next Day》는 영국 차트 1위, 빌보드 차트 2위를 차지하는 등 나이 60이 넘어서도 보위의 인기는 여전했다. 2016년 1월 8일에는 또 다른 신작 《Blackstar》를 선보였다. 《Blackstar》는 재즈 스타일이 묻어나는 앨범으로 여전히 새로운 장르 개척을 꿈꾸는 보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틀 후인 2016년 1월 10일, 팬들은 보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보위는 간암 투병 중이었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Blackstar》 발매 이틀 후인 2016년 1월 10일 보위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뜻에 따라 장례식은 치루지 않았고, 유해는 화장 후 인도네시아 발리에 뿌려졌다. 

  보위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상징 같은 존재였기에 당연하게도 각국의 정치인들이 보위를 추모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는 “난 데이비드 보위를 듣고 보면서 자랐다. 그는 재발명의 달인이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독일은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보위는 영웅 반열에 올랐다. 베를린 장벽을 부수는 데 도움을 줘 감사하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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